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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일 토요일

[오늘의 역사] 1923년 8월 2일, '정상으로의 복귀'를 외쳤던 스캔들의 제왕 – 미국 제29대 대통령 워런 G. 하딩 서거

정치인의 평가는 그가 살아 숨 쉬는 동안과 무덤에 묻힌 이후가 극명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어떤 이는 생전에 온갖 비난을 받다가 사후에 위대한 지도자로 재평가되지만, 반대로 생전에는 성인(聖人)처럼 추앙받다가 사후에 온갖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며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로 추락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정치사에서 후자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꼽으라면 단연 제29대 대통령 워런 G. 하딩(Warren G. Harding)일 것이다.

워런 거메일리얼 하딩(Warren Gamaliel Harding, 1865년 11월 2일 ~ 1923년 8월 2일)
워런 거메일리얼 하딩(Warren Gamaliel Harding, 1865년 11월 2일 ~ 1923년 8월 2일)

1923년 8월 2일, 미국 서부와 알래스카 순방에 나섰던 하딩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의 팰리스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돌연 서거했다. 당시 미국 국민들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 이후 가장 큰 슬픔에 빠져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하지만 그 슬픔이 분노와 경멸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능한 지도자와 부패한 측근들이 만들어낸 참담한 비극, 하딩의 죽음은 미국 정치사에 뼈아픈 교훈을 남긴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1. 제1차 세계대전의 피로감과 '정상으로의 복귀(Return to Normalcy)'

워런 G. 하딩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시대적 타이밍과 대중의 심리를 정확히 파고든 슬로건이었다. 1920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미국 사회는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이 주도한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쉴 새 없이 몰아친 진보주의적 개혁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국민들은 거창한 이상주의나 세계 평화보다는 그저 조용하고 안정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오하이오주 출신의 상원의원이었던 하딩은 훤칠한 키와 중후한 외모, 그리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복잡한 정책 대신 "정상으로의 복귀(Return to Normalcy)"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여기서 '정상'이란 전쟁 이전의 평화, 정부의 개입이 적은 자유방임주의 경제로의 회귀를 의미했다. 이 전략은 완벽하게 적중했고, 하딩은 1920년 대선에서 무려 60.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제2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 오하이오 갱(Ohio Gang): 끔찍한 정실 인사와 부패의 싹

하딩 본인은 성품이 온화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호인이었으나, 국가를 이끌어갈 지적 역량이나 도덕적 결단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가 저지른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자신의 고향인 오하이오주 시절의 친구들과 정치적 후원자들을 대거 정부 요직에 앉힌 이른바 '오하이오 갱(Ohio Gang)'의 결성이었다.

그는 선거 책임자였던 해리 도허티를 법무부 장관에, 포커 친구였던 앨버트 폴을 내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등 철저한 보은 인사를 단행했다.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였음에도 하딩은 일주일에 두 번씩 백악관에 오하이오 갱을 불러들여 밀수입한 위스키를 마시며 시가를 피우고 밤새 포커판을 벌였다. 대통령이 국정을 방관하는 사이, 정부 요직을 꿰찬 측근들은 권력을 이용해 뇌물을 받고 국가 예산을 횡령하며 전례 없는 부정부패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적들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나를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게 만드는 것은 내 빌어먹을 친구들이다." — 워런 G. 하딩, 말년에 측근들의 부패를 직감하며 남긴 탄식

3. 도피성 순방 '이해의 항해(Voyage of Understanding)'

1923년에 접어들면서, 측근들의 기막힌 비리 행각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보훈처장 찰스 포브스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병원 건립 예산을 착복한 혐의로 사임했고, 또 다른 측근이 뇌물 수사 압박에 시달리다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자신이 믿었던 친구들의 배신과 서서히 다가오는 스캔들의 압박에 하딩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그는 국면을 전환하고 워싱턴의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해의 항해(Voyage of Understanding)'라는 이름의 대규모 서부 순방을 기획했다. 기차를 타고 미 대륙을 횡단하며 국민들을 직접 만나 지지율을 회복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이 순방 과정에서 그는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알래스카를 방문하기도 했다.

4. 1923년 8월 2일, 샌프란시스코 팰리스 호텔에서의 급사

그러나 무리한 일정은 가뜩이나 심장 질환을 앓고 있던 그의 건강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알래스카에서 돌아오던 중 시애틀에서 식중독과 유사한 증세(당시에는 상한 게를 먹은 탓으로 알려졌으나 심장 발작의 전조였음)로 쓰러진 하딩은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샌프란시스코의 팰리스 호텔로 이송되어 휴식을 취했다.

며칠 뒤 병세가 호전되는 듯 보였으나, 1923년 8월 2일 저녁 7시 30분경, 영부인 플로렌스 하딩이 그에게 주간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실린 남편에 대한 호의적인 기사를 읽어주던 중, 하딩은 갑자기 몸을 떨며 침대 위로 쓰러졌다. 사인은 뇌졸중 또는 심장마비였다. 향년 57세, 취임한 지 불과 2년 5개월 만의 일이었다.

미국 전역은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하딩의 시신을 실은 장의 열차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 D.C.로 이동하는 동안, 무려 900만 명의 시민들이 철로 변으로 쏟아져 나와 눈물을 흘리며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순직한 위대한 대통령'이었다.

영부인의 부검 거부와 독살설

한편, 영부인 플로렌스 하딩이 남편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사후에 엄청난 음모론이 일기도 했다. 다가올 부패 스캔들로부터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영부인이 직접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수십 년간 끊이지 않았으나, 현대 의학계는 하딩이 오래전부터 심각한 심부전과 고혈압을 앓고 있었음을 근거로 자연사(심장마비)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5. 사후에 터진 최악의 뇌물 스캔들: 티폿 돔(Teapot Dome) 사건

대통령이 사망하고 부통령이었던 캘빈 쿨리지가 직을 승계한 뒤, 무덤 속에 묻혀 있던 '오하이오 갱'의 끔찍한 비리들이 봇물 터지듯 세상에 폭로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미국 정치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꼽히는 것이 바로 '티폿 돔 스캔들(Teapot Dome Scandal)'이다.

내무부 장관 앨버트 폴이 해군 관할이었던 와이오밍주 티폿 돔의 국가 전략 비축 유전 지대를 민간 석유업자들에게 헐값에 불법 임대해 주고, 그 대가로 40만 달러(현재 가치로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뇌물을 챙긴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앨버트 폴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재임 중의 비리로 감옥에 간 내각 각료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여기에 더해, 낸 브리튼(Nan Britton)이라는 여성이 하딩과 백악관 옷장 등에서 오랜 기간 혼외 정사를 가졌고 사생아까지 낳았다는 폭로 책(《대통령의 딸》)을 출간하면서 그의 도덕성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추락했다. 생전에는 링컨 버금가는 애도를 받았던 하딩은, 불과 몇 년 만에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에서 만년 꼴찌를 다투는 최악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맺음말

1923년 8월 2일 워런 G. 하딩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단순히 대중을 미소 짓게 만드는 '호감'이나 '친화력'이 전부가 아님을 뼈저리게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그는 결코 악의적인 폭군이나 독재자가 아니었다. 다만 권력의 무게를 감당할 지적 능력이 부재했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채 자격 미달의 친구들에게 국가의 중대사를 맡긴 무능한 방관자였을 뿐이다. 하딩의 비극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의 '선의를 가장한 무능'과 '측근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국가 시스템을 얼마나 끔찍하게 붕괴시킬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강력한 반면교사로 오늘날까지 뚜렷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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