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1-100년) 주요 사건
[70년 9월 7일] 로마 제국 군대의 예루살렘 완전 함락
- 로마 제국 황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9년~79년)의 아들이자 군사령관인 티투스(Titus, 39년~81년) 장군이 이끄는 4개 로마 군단이 제1차 유대-로마 전쟁(First Jewish-Roman War) 도중 예루살렘(Jerusalem)을 포위 공격한 끝에 완전 함락하였다.
- 앞서 헤롯 성전(Herod's Temple)이 불탄 데 이어, 이날 도시의 상층부가 로마군에 돌파당하며 저항군 진압과 대규모 학살 및 약탈이 자행되었다.
- 이 사건으로 유대 왕국의 중심지가 파괴되었으며, 전 세계로 유대인이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가 가속화되는 세계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9세기(801-900년) 주요 사건
[878년 9월 7일] 루이 2세의 교황 대관식 거행
- 트루아 공의회(Council of Troyes)에서 교황 요한 8세(Pope John VIII, ?~882년)가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인 루이 2세 말더듬이왕(Louis the Stammerer, 846~879년)의 머리에 직접 왕관을 씌우는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 앞서 루이 2세는 877년 콩피에뉴(Compiègne)에서 대주교 힝크마르(Hincmar, 806~882년)에게 첫 대관을 받았으나, 정치적 위기를 겪던 교황 요한 8세와의 상호 지지 속에서 교황 주관의 두 번째 대관식을 올리며 왕권의 정통성을 대내외에 확고히 다졌다.
- 이는 카롤링거 제국 분할 이후 약화되던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 중세 서유럽에서 교황권과 세속 왕권 간의 긴밀한 상호 승인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12세기(1101-1200년) 주요 사건
[1159년 9월 7일] 알렉산데르 3세의 교황 선출과 서임권 갈등
- 교황 하드리아노 4세(Pope Adrian IV, 1100경~1159년)가 서거하자, 추기경단 다수가 롤란도 반디넬리(Rolando Bandinelli, 1100경~1181년) 추기경을 교황 알렉산데르 3세(Pope Alexander III)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친황제파 소수 추기경단은 같은 날 옥타비아노 몬티첼리(Octaviano Monticelli, 1095~1164년) 추기경을 대립교황 빅토르 4세(Antipope Victor IV)로 옹립하였다.
-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Frederick I Barbarossa, 1122~1190년)의 간섭과 맞물려 발발한 이 분열은 이후 20년 가까이 이어진 교황청과 제국 사이의 치열한 대립의 서막이 되었다.
- 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롬바르디아 동맹(Lombard League)과 연대하여 황제권의 간섭에 맞섰으며, 훗날 1177년 베네치아 조약(Treaty of Venice)을 통해 교황권의 절대적 자립성을 확립하는 초석을 놓았다.
[1191년 9월 7일] 아르수프 전투에서 리처드 1세의 승리
- 제3차 십자군 원정(Third Crusade) 도중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1세(Richard I of England, 1157~1199년)가 이끄는 십자군 연합군이 팔레스타인 해안의 아르수프(Arsuf) 평원에서 아이유브 왕조(Ayyubid Dynasty)의 술탄 살라딘(Saladin, 1137~1193년)의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하였다.
- 살라딘 군대의 지속적인 기습 공격에도 불구하고 리처드 1세는 병력 대형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기회를 노렸고, 적절한 순간에 단행한 전면적인 기병 돌격으로 살라딘의 방어선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 이 승리는 1187년 하틴 전투(Battle of Hattin) 이후 무적처럼 보였던 살라딘의 명성을 꺾고 예루살렘 왕국의 주요 거점인 야파(Jaffa)를 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군사적 전기를 마련하였다.
13세기(1201-1300년) 주요 사건
[1228년 9월 7일] 프리드리히 2세의 아크레 상륙과 제6차 십자군 개시
-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 1194~1250년)가 교황 그레고리오 9세(Pope Gregory IX, 1145경~1241년)에게 파문당한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의 주요 항구 도시 아크레(Acre)에 상륙하여 제6차 십자군(Sixth Crusade)을 개시하였다.
- 대규모 무력 충돌 대신 고도의 외교 협상을 선택한 프리드리히 2세는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알카밀(Al-Kamil, 1177경~1238년)과 1229년 야파 협약(Treaty of Jaffa)을 체결하였다.
- 이로써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예루살렘, 베들레헴, 나자렛 등 기독교 성지를 평화적으로 반환받아 예루살렘 왕국(Kingdom of Jerusalem)을 성공적으로 복원하는 독보적인 외교적 결실을 맺었다.
14세기(1301-1400년) 주요 사건
[1303년 9월 7일] 아나니 사건과 보니파시오 8세의 체포
-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Philip IV of France, 1268~1314년)의 전권 대사인 기욤 드 노가레(Guillaume de Nogaret, 1260경~1313년)가 로마 귀족 샤라 콜론나(Sciarra Colonna, 1270~1329년)와 함께 이탈리아 아나니(Anagni)의 궁전을 기습하여 교황 보니파시오 8세(Pope Boniface VIII, 1235경~1303년)를 포로로 붙잡았다.
- 필리프 4세는 성직자 과세 문제와 교황의 우위권을 선언한 교서 우남 상탐(Unam Sanctam)에 반발하여 교황을 강제로 폐위하고 프랑스로 압송하려 하였다.
- 아나니 주민들의 반발로 보니파시오 8세는 며칠 만에 풀려났으나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 달 뒤 서거하였으며, 이는 중세 보편 교황권이 몰락하고 근대적 절대 왕정이 대두되는 전환점이자 이후 아비뇽 유수(Avignon Papacy)로 이어지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16세기(1501-1600년) 주요 사건
[1565년 9월 7일] 몰타 공방전 구원군의 도착
-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군대에 포위되어 파멸 직전에 놓여 있던 몰타 기사단(Knights Hospitaller)을 돕기 위해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Philip II of Spain, 1527~1598년)가 파견한 '대구원군(Grande Soccorso)'이 마침내 몰타의 멜리하 만(Mellieħa Bay)에 상륙하였다.
- 시칠리아 부왕 돈 가르시아 데 톨레도(Don García de Toledo, 1514~1577년)가 지휘한 약 8,000명의 정예 구원군은 오스만군의 후방을 위협하며 지친 방어군에게 결정적인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 이 구원군의 도달로 전황은 완전히 뒤집혔으며, 수개월간 몰타를 압박하던 무스타파 파샤(Mustafa Pasha, 1495~1580년)의 오스만 대군은 포위를 풀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오스만 제국의 서지중해 팽창 야욕을 꺾는 중대한 분수령이 되었다.
[1571년 9월 7일] 리돌피 음모 연루로 노퍽 공작 체포
- 잉글랜드의 유력 귀족인 제4대 노퍽 공작 토머스 하워드(Thomas Howard, 4th Duke of Norfolk, 1536~1572년)가 국왕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of England, 1533~1603년)를 암살하려 한 '리돌피 음모(Ridolfi Plot)'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Tower of London)에 투옥되었다.
- 이탈리아 은행가 로베르토 리돌피(Roberto Ridolfi, 1531~1612년)가 주도한 이 반역 사건은 스페인군의 침공을 유도하여 엘리자베스 1세를 폐위하고 가톨릭 교도인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Mary, Queen of Scots, 1542~1587년)를 왕위에 올린 뒤 노퍽 공작과 혼인시키려는 계획이었다.
- 엘리자베스 1세의 국무장관 윌리엄 세실(William Cecil, 1520~1598년)의 정보망에 덜미를 잡힌 노퍽 공작은 대역죄로 재판을 받고 이듬해 처형되었으며, 이는 잉글랜드 내 가톨릭 세력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하고 메리 1세의 정치적 입지를 치명적으로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17세기(1601-1700년) 주요 사건
[1620년 9월 7일] 코콜라(카를레뷔) 시의 창설
-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Gustav II Adolf, 1594~1632년)가 보트니아만 연안의 무역과 경제적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핀란드 오스트로보트니아 지역에 코콜라(Kokkola, 스웨덴명 카를레뷔 Karleby) 시를 공식적으로 창설하고 도시 특허장을 부여하였다.
-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당시 발트해 일대에서 스웨덴 제국의 상업적 지배력을 강화하고 타르(tar)와 목재 등 주요 임산물의 수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무역 거점 조성을 적극 추진하였다.
- 이 도시의 설립은 핀란드 서해안 무역망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훗날 18세기와 19세기 북유럽 조선업과 타르 무역의 핵심 요충지로 발전하는 역사적 시발점이 되었다.
[1625년 9월 7일] 사우샘프턴 조약 체결
- 잉글랜드 국왕 찰스 1세(Charles I, 1600~1649년)의 정부와 네덜란드 공화국(Dutch Republic) 지도부가 잉글랜드 남부 사우샘프턴에서 스페인 제국에 대항하는 상호 군사 동맹인 사우샘프턴 조약(Treaty of Southampton)을 체결하였다.
- 30년 전쟁(Thirty Years' War)과 네덜란드 독립전쟁(80년 전쟁)이 격화되던 국면에서 양국은 스페인의 팽창주의를 저지하고 해상 무역로를 보호하기 위해 함대 지원 및 대규모 합동 군사 작전에 합의하였다.
- 이 조약은 잉글랜드가 대륙의 반(反)합스부르크 전선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만든 군사적 계기였으며, 동인도 무역 경쟁으로 마찰을 빚던 양국이 공동의 적인 가톨릭 스페인에 맞서 전략적 연대를 맺었다는 외교사적 의의를 지닌다.
[1652년 9월 7일] 대만 궈화이이의 반(反)네덜란드 봉기
-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가 지배하던 타이완 남부에서 농민 지도자 궈화이이(Guo Huaiyi, 郭懷一, 1603~1652년)가 이끄는 약 1만 5,000명의 한족 농민과 민병대가 가혹한 인두세 징수와 억압에 맞서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 네덜란드 당국은 한족 농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토지 개발을 강제 통제하였으며, 이에 분노한 농민들은 프로빈샤 요새(Fort Provintia) 주변의 네덜란드 정착촌을 기습 공격하였다.
- 네덜란드 총독 니콜라스 페르뷔르흐(Nicolas Verburg, 1600경~1676년)는 정규군과 네덜란드에 협력하던 원주민 전사들을 동원해 며칠 만에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주동자들을 처형하였으나, 이는 네덜란드의 타이완 통치 기반이 근본적으로 취약함을 드러내고 훗날 정성공(Zheng Chenggong, 1624~1662년)이 타이완을 수복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1695년 9월 7일] 헨리 에브리의 무굴 제국 선박 간지사와이호 나포
- 잉글랜드 출신의 악명 높은 해적선장 헨리 에브리(Henry Every, 1659경~1699년 이후)가 이끄는 해적선 팬시호(Fancy)가 홍해 입구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인근에서 무굴 제국 황제 아우랑제브(Aurangzeb, 1618~1707년)의 기함인 간지사와이호(Ganj-i-Sawai)를 기습 나포하였다.
- 메카 순례를 마치고 귀항하던 이 선박에는 막대한 금은보화와 왕실 귀족들이 타고 있었으며, 에브리는 치열한 총격전 끝에 배를 점령하고 역사상 단일 해적 약탈로는 최대 규모에 달하는 전리품을 탈취하였다.
- 이에 격노한 아우랑제브 황제는 인도 전역에서 영국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의 무역 거점을 폐쇄하고 상인들을 투옥하겠다고 위협하였으며, 영국 정부가 역사상 최초의 범지구적 해적 소탕령을 내리게 만든 대사건이 되었다.
18세기(1701-1800년) 주요 사건
[1706년 9월 7일] 토리노 공방전 종결과 프랑스군의 철수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중 사보이아 공국의 수도 토리노를 수개월간 포위하고 있던 프랑스 대군을 사보이아의 외젠 공(Prince Eugene of Savoy, 1663~1736년)과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마데오 2세(Vittorio Amedeo II, 1666~1732년)가 이끄는 제국 연합군이 궤멸시켰다.
- 연합군은 프랑스 군대의 방어 참호를 뚫고 배후를 기습하여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으며, 프랑스군 사령관 마르생 원수(Ferdinand de Marsin, 1656~1706년)는 치명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다.
- 이 대승으로 장기간의 토리노 공방전(Siege of Turin)이 완전히 종결되었고, 프랑스군은 북부 이탈리아 전역에서 총퇴각을 감행하게 됨으로써 이탈리아 전선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완전히 축출되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1714년 9월 7일] 바덴 조약 비준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완전히 마무리 짓기 위해 프랑스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6세(Charles VI, 1685~1740년) 대표단이 스위스 바덴에서 협상한 바덴 조약(Treaty of Baden)이 공식 비준되었다.
- 이 조약은 앞서 체결된 위트레흐트 조약(Treaty of Utrecht)과 라슈타트 조약(Treaty of Rastatt)을 보완하여 제국과 프랑스 사이의 남은 분쟁 지역과 국경선을 확정 짓는 역할을 하였다.
-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는 남네덜란드(벨기에)와 밀라노, 나폴리, 사르데냐 등 이탈리아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확고히 인정받았으며, 유럽 열강 간의 세력 균형을 재편하고 십수 년간 이어진 대규모 전쟁에 최종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1736년 9월 7일] 포티어스 폭동과 에든버러 린치 사건
-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민중 봉기인 '포티어스 폭동(Porteous Riots)'이 절정에 달하며, 격분한 군중이 톨부스 감옥(Tolbooth Prison)을 습격하여 도시 경비대장 존 포티어스(John Porteous, 1695경~1736년)를 끌어내 사형(린치)시켰다.
- 앞서 1736년 4월 밀수꾼의 처형식 도중 발생한 소요에서 포티어스가 군중을 향해 발포를 명령하여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하자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국왕 조지 2세(George II, 1683~1760년)의 정부가 집행을 유예하자 군중이 폭발하였다.
- 수천 명의 군중은 감옥 문을 불태우고 포티어스를 그래스마켓(Grassmarket)으로 끌고 가 교수형에 처했으며, 이 사건은 스코틀랜드 민중의 런던 하노버 왕조에 대한 깊은 반감과 자치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다.
[1764년 9월 7일]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의 국왕 선출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Polish–Lithuanian Commonwealth)의 국회(Sejm)에서 러시아 제국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Catherine II, 1729~1796년)의 군사적·정치적 전폭 지원을 받은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Stanisław August Poniatowski, 1732~1798년)가 마지막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 포니아토프스키는 계몽주의적 이상을 바탕으로 부패하고 무기력해진 연방의 정치 제도를 개혁하고 국력을 회복하려 시도하였다.
- 그러나 주변 강대국인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끊임없는 내정 간섭과 귀족들의 반발에 부딪혔으며, 결국 그의 치세는 1791년 5월 3일 헌법 제정이라는 역사적 결실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의 세 차례 분할과 연방의 소멸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되었다.
[1776년 9월 7일] 터틀호의 세계 최초 잠수함 공격 시도
- 미국 독립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 당시 대륙군 병사인 에즈라 리(Ezra Lee, 1749~1821년) 하사가 발명가 데이비드 부슈널(David Bushnell, 1740~1824년)이 제작한 잠수정 터틀(Turtle)호를 몰고 뉴욕항에서 영국 기함 이글호(HMS Eagle)를 공격하는 작전을 펼쳤다.
- 목재로 제작된 1인승 인력 추진 잠수정인 터틀호는 야간에 은밀히 영국 해군 제독 리처드 하우(Richard Howe, 1726~1799년)의 기함 밑으로 잠항하여 선체에 시한폭탄을 부착하려 시도하였다.
- 배 밑바닥의 구리 판과 철제 구조물로 인해 드릴이 선체를 뚫지 못해 폭파 임무는 실패로 끝났고 영국 측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인류 역사상 실전에서 잠수정을 이용하여 적 함선을 공격한 최초의 해전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1778년 9월 7일] 프랑스의 도미니카섬 기습 침공
- 미국 독립 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되던 시기, 마르티니크의 프랑스 총독 프랑수아 클로드 아모르 뒤 부이예(François Claude Amour du Bouillé, 1739~1800년) 후작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영국령 서인도 제도의 도미니카(Dominica)섬을 전격 침공하였다.
- 당시 영국 수비대는 프랑스가 대미(對美) 동맹을 맺고 공식적으로 참전했다는 사실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프랑스군은 기습 상륙 작전을 감행하여 섬의 주요 거점을 빠르게 압박하였다.
- 영국 총독 윌리엄 스튜어트(William Stuart, 생몰년 미상)는 저항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당일 항복 문서에 서명하였으며, 프랑스는 서인도 제도에서 귀중한 해상 요충지를 확보하고 카리브해 제해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였다.
19세기(1801-1900년) 주요 사건
1811-1820년 주요 사건
[1812년 9월 7일] 나폴레옹 전쟁 최대의 격전 보로디노 전투
- 나폴레옹 1세(Napoleon I, 1769~1821년)의 러시아 원정군(Grande Armée)과 미하일 쿠투조프(Mikhail Kutuzov, 1745~1813년)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 제국 육군이 모스크바 서쪽 보로디노(Borodino) 평원에서 정면 충돌하였다.
- 양군은 종일 처절한 포격전과 육탄 돌격을 주고받으며 25만 명이 넘는 병력이 격돌하였고, 하룻밤 사이에 양측 합쳐 7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는 나폴레옹 전쟁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단일 전투를 치렀다.
- 프랑스군이 전술적으로 전장을 장악하고 모스크바로 입성하는 길을 열었으나, 러시아군의 주력을 완전히 분쇄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 파멸적인 실패로 끝나는 결정적 서곡이 되었다.
[1818년 9월 7일] 칼 14세 요한의 노르웨이 국왕 대관식
- 스웨덴-노르웨이 동군연합의 국왕이자 과거 프랑스 나폴레옹의 원수 출신인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Jean-Baptiste Bernadotte), 즉 칼 14세 요한(Carl XIV Johan, 1763~1844년)이 트론헤임(Trondheim)의 니다로스 대성당(Nidaros Cathedral)에서 노르웨이 국왕 칼 3세로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 그는 1814년 킬 조약(Treaty of Kiel)을 통해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분리하여 스웨덴과의 동군연합을 성립시킨 실질적 통치자였으며, 칼 13세의 승하 이후 왕위를 계승하였다.
- 노르웨이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마친 뒤 거행된 이 의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스웨덴-노르웨이 베르나도트 왕조(House of Bernadotte)의 통치적 정통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821-1830년 주요 사건
[1822년 9월 7일] 브라질 독립 선언 (이피랑가의 외침)
- 포르투갈 왕국의 섭정 왕자 돔 페드루(Dom Pedro I, 1798~1834년)가 상파울루의 이피랑가 강변(Ipiranga Brook)에서 포르투갈 본국 의회의 식민지화 복귀 요구를 거부하고 "독립이냐 죽음이냐(Independência ou Morte)"를 외치며 독립을 선언하였다.
- 나폴레옹 전쟁으로 브라질로 피신했던 포르투갈 왕실이 본국으로 돌아간 후, 리스본 의회가 브라질의 자치권을 박탈하려 하자 현지 정착민들과 페드루 왕자가 강력히 반발하였다.
- 이 역사적인 선언으로 브라질은 유혈 혁명을 최소화하며 포르투갈로부터 공식 분리 독립하였고, 페드루 왕자는 같은 해 브라질 제국의 초대 황제 페드루 1세로 즉위하며 남아메리카 유일의 근대 입헌군주국을 출범시켰다.
1851-1860년 주요 사건
[1856년 9월 7일] 사이마 운하의 개통
- 핀란드 내륙의 거대한 담수호인 사이마호(Lake Saimaa)와 핀란드만(Gulf of Finland) 연안의 비보르크(Vyborg)를 연결하는 대규모 수로인 사이마 운하(Saimaa Canal)가 공식 개통되었다.
- 핀란드 대공국을 통치하던 러시아 제국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 1818~1881년)의 대관식 시점에 맞추어 완공된 이 운하는 총연장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19세기 북유럽 토목 공학의 걸작이었다.
- 고립되어 있던 핀란드 동부 내륙의 목재와 임산물을 유럽 시장으로 직접 대량 수송할 수 있는 직통 해상 운송로가 열림으로써 핀란드 근대 산업과 무역 발전에 획기적인 도약을 가져왔다.
[1857년 9월 7일] 마운틴 메도우스 학살의 발발
- 유타주 남부 마운틴 메도우스(Mountain Meadows)에서 아칸소주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무방비 상태의 평화로운 이주민 마차 행렬이 모르몬교(Mormon) 민병대의 기습 포위 공격을 받았다.
- 당시 유타 준주와 미국 연방 정부 사이의 긴장(유타 전쟁)이 극에 달해 있던 상황에서 존 D. 리(John D. Lee, 1812~1877년) 등 현지 민병대 지도자들은 원주민 파이우트족(Paiute)을 사주하고 스스로도 변장하여 이주민들을 습격하였다.
- 며칠간의 대치 끝에 백기를 들고 안전 통행을 약속하며 무장 해제된 이주민들을 기만하여 남녀와 어린아이를 포함한 120여 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미국 서부 개척사상 가장 어두운 참극으로 번졌다.
[1860년 9월 7일] 주세페 가리발디의 나폴리 무혈 입성
-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07~1882년)가 이끄는 붉은 셔츠단(천인대 원정)이 시칠리아를 장악한 뒤 본토로 진격하여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 나폴리(Naples)에 무혈 입성하였다.
- 나폴리 국왕 프란체스코 2세(Francis II, 1836~1894년)는 저항을 포기하고 북부 요새로 도주하였으며, 가리발디는 열광적인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열차를 타고 도시 중심가로 진입하였다.
- 이 사건은 수백 년간 분열되어 있던 남부 이탈리아의 부르봉 왕조 통치를 붕괴시키고, 가리발디가 정복한 영토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 1820~1878년)에게 헌납함으로써 통일 이탈리아 왕국(Kingdom of Italy) 탄생의 결정적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1861-1870년 주요 사건
[1863년 9월 7일] 배터리 와그너 요새의 함락
- 미국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 중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항구를 방어하던 전략 요충지 모리스섬의 배터리 와그너 요새(Battery Wagner, 혹은 Fort Wagner)를 퀸시 A. 길모어(Quincy A. Gillmore, 1825~1888년) 장군이 이끄는 북군이 7주간의 포위 끝에 점령하였다.
- 앞서 7월 18일 제54 매사추세츠 흑인 보병연대의 영웅적인 정면 돌격에도 불구하고 요새를 공략하지 못했던 북군은, 혹독한 해상 및 지상 포격과 참호 공병전을 전개하며 요새를 압박하였다.
- 지속적인 포격과 식수 고갈로 버틸 수 없게 된 남군 지휘부가 9월 6일 밤 요새를 포기하고 비밀리에 전원 철수함에 따라 북군이 무혈 점령하였으며, 이는 남군의 보루 찰스턴 항구를 봉쇄하는 데 결정적인 군사적 전과가 되었다.
[1864년 9월 7일] 셔먼 장군의 애틀랜타 민간인 소개령
- 남북 전쟁 당시 조지아주 전략 요충지 애틀랜타를 점령한 북군 서부 전선 총사령관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 1820~1891년) 장군이 군사적 목적을 위해 시내의 모든 민간인에 대한 전면 강제 퇴거 명령을 발표하였다.
- 셔먼은 남부 연합군과의 전쟁을 신속히 종식시키기 위해 애틀랜타를 민간 거주지가 아닌 순수 군사 병참 기지로 전환하려 하였으며, 남군 사령관 존 벨 후드(John Bell Hood, 1831~1879년)의 강력한 비인도적 항의에도 퇴거 방침을 강행하였다.
- 이 소개령은 도시를 완전히 군사 통제하에 두고 시설을 철거한 뒤 훗날 남부의 후방을 초토화하며 대서양 연안으로 진격한 유명한 '바다로의 행군(March to the Sea)'을 시작하는 직접적인 전략적 전단계가 되었다.
1871-1880년 주요 사건
[1876년 9월 7일] 노스필드 은행 강도 사건과 제임스-영거 갱단의 몰락
-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악명 높은 무법자 제시 제임스(Jesse James, 1847~1882년)와 콜 영거(Cole Younger, 1844~1916년)가 이끄는 '제임스-영거 갱단(James–Younger Gang)'이 미네소타주 노스필드의 퍼스트 내셔널 은행(First National Bank)을 습격하였다.
- 은행원 조지프 리 헤이우드(Joseph Lee Heywood, 1837~1876년)가 총구 앞에서도 금고 문을 열기를 거부하며 시간을 끌자, 거리에 모여든 무장 시민들이 라이플과 권총을 들고 갱단을 향해 맹렬한 총격전을 벌였다.
- 격렬한 총격전 끝에 갱단원 2명이 사살되고 다수가 중상을 입은 채 패주하였으며, 이후 대대적인 추격전 속에서 핵심 조직원들이 사로잡히거나 사살됨으로써 서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전설적인 갱단이 완전히 와해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세기(1901-2000년) 주요 사건
1901-1910년 주요 사건
[1901년 9월 7일] 고종 탄신 축하 행사 및 최초의 대한제국 애국가 연주
- 대한제국 고종(Gojong, 1852년~1919년) 황제의 탄신 50세를 기념하는 망오(望五) 축하연에서 독일 제국 출신 궁정 군악대장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년~1916년)가 작곡한 '대한제국 애국가'가 최초로 공식 연주되었다.
- 이 곡은 서양식 관악 오케스트라 편제로 작곡되었으며, 황실의 번영과 국가의 자주독립 의지를 담은 공식 국가(National Anthem)의 성격을 띠었다.
- 비록 1910년 국권 피탈로 공식 수명이 단축되었으나, 근대식 서양 음악 체계를 도입하여 국가 상징물을 확립하려 했던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1901년 9월 7일] 신축조약 체결과 의화단 운동 공식 종결
- 청나라 베이징에서 청 정부의 전권대신 이홍장(Li Hongzhang, 李鴻章, 1823~1901년)과 8개국 연합군(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및 벨기에, 스페인, 네덜란드 대표단 사이에 신축조약(Boxer Protocol, 辛丑條約)이 공식 체결되었다.
- 1899년 외세 배척과 '부청멸양(扶淸滅洋)'을 기치로 내걸고 일어난 의화단 운동(Boxer Rebellion)이 서구 열강의 연합군에 의해 무력 진압된 뒤, 열강은 청 왕조에 막대한 배상금 4억 5천만 냥 분할 상환과 베이징 공관 구역 내 외국 군대 주둔권을 강요하였다.
- 이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청나라는 재정이 완전히 파탄에 이르고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였으며, 왕조의 권위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으면서 훗날 1911년 신해혁명(Xinhai Revolution)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03년 9월 7일] 오스만 제국의 스트란자 코뮌 무력 진압
-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군대가 일린덴-프레오브라제니에 봉기(Ilinden–Preobrazhenie Uprising) 도중 트라키아 지역에서 선포되었던 혁명적 자치 정부인 스트란자 코뮌(Strandzha Commune)에 대해 대대적인 총반격을 개시하였다.
- 오스만 통치에 맞서 불가리아인과 마케도니아인 혁명가들이 주도한 내부 마케도니아-아드리아노플 혁명 기구(IMARO)는 약 3주 동안 자치 정부를 유지하며 이상적인 평등 공동체를 운영하였다.
- 그러나 슈크리 파샤(Shukri Pasha, 1857~1916년)가 지휘하는 오스만 정규 대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코뮌은 완전히 와해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마을이 불타고 주민 수천 명이 학살되거나 난민으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1906년 9월 7일] 산투스두몽의 14-비스 항공기 최초 단거리 비행
- 브라질 출신의 전설적인 항공 개척자 알베르토 산투스두몽(Alberto Santos-Dumont, 1873~1932년)이 프랑스 파리 바가텔(Bagatelle) 공원에서 자신이 독자 설계하고 제작한 복엽 비행기 14-비스(14-bis)로 시험 비행을 성공시켰다.
- 라이트 형제의 투석기 활주 방식과 달리 자체 가솔린 엔진 동력과 바퀴식 착륙 장치만을 이용하여 외부 보조 없이 스스로 지면에서 떠오르는 데 성공한 역사적 시도였다.
- 이 짧은 도약은 같은 해 10월과 11월에 국제항공연맹(FAI)이 공식 공인한 유럽 최초의 동력 비행 기록으로 이어졌으며, 초기 인류 항공 역사 발전에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1907년 9월 7일] 큐나드 라인 여객선 루시타니아호의 처녀항해
- 영국의 유수한 해운 기업 큐나드 라인(Cunard Line)의 초호화 대형 증기 여객선 RMS 루시타니아(RMS Lusitania)호가 잉글랜드 리버풀(Liverpool) 항구를 출항하여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처녀항해를 시작하였다.
- 당시 세계 최대이자 최첨단 증기 터빈 기관을 장착한 최속 여객선으로 건조되었으며, 대서양 횡단 속도 기록의 상징인 블루리본(Blue Riband)을 즉시 탈환하며 영국 조선 공학의 정점을 과시하였다.
- 그러나 루시타니아호는 운항 개시 8년 뒤인 1915년 5월, 제1차 세계 대전 중 아일랜드 남단 해역에서 독일 잠수함 U-20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함으로써 미국의 참전을 촉발하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1909년 9월 7일] 외젠 르페브르의 비행 사고와 동력기 조종사 최초 순직
- 프랑스의 초기 비행사이자 항공기 시험 조종사인 외젠 르페브르(Eugène Lefebvre, 1878~1909년)가 파리 남쪽 비리샤티용(Viry-Châtillon)의 포르아비아시옹(Port-Aviation) 비행장에서 신형 라이트 복엽기를 시험 비행하던 중 추락 사고로 사망하였다.
- 르페브르는 항공 역학 제어 장치의 결함으로 인해 고도 수십 미터 상공에서 기체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뒤 지면으로 급강하하여 치명상을 입었다.
- 이 참사는 자체 동력을 갖춘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heavier-than-air craft)를 조종하던 현역 조종사가 비행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 항공 안전 기준 마련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1911-1920년 주요 사건
[1911년 9월 7일] 기욤 아폴리네르의 모나리자 도난 혐의 체포
- 프랑스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자 문학 비평가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년)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Mona Lisa)'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전격 체포되어 상테 감옥(La Santé Prison)에 수감되었다.
- 그의 전 비서가 과거 루브르 박물관에서 고대 이베리아 조각상을 훔쳐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년) 등에게 전달했던 전력 때문에, 당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모나리자 실종 사건의 유력 배후로 오인을 받았다.
- 아폴리네르는 무죄를 호소하며 며칠 뒤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고, 실범은 이후 1913년에 붙잡힌 이탈리아 출신 기술자 빈첸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 1881~1925년)로 밝혀지며 예술계의 기막힌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다.
[1916년 9월 7일] 미 연방 노동자 보상법(FECA) 제정
- 미국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년)이 연방 공무원들의 업무상 상해와 질병에 대해 정부 보상을 의무화하는 '연방 공무원 재해 보상법(Federal Employees' Compensation Act, 39 Stat. 742)'에 최종 서명하였다.
- 이 법안은 직무 수행 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민간 연방 공무원 및 그 부양가족에게 장애 급여, 의료 치료비, 유족 연금 등을 지급하는 국가적 재정 안전망을 확립하였다.
- 이전까지 고용주의 과실을 노동자가 직접 입증해야 했던 불합리한 구조를 혁파하고 진보주의 시대 미국 노동 복지와 근로권 보호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제도적 금자탑으로 평가받는다.
[1920년 9월 7일] 핀란드 공군 사보이아 비행정 알프스 추락 사고
- 핀란드 공군이 이탈리아 제작사 SIAI로부터 도입하여 핀란드로 공수 비행 중이던 사보이아 S.9(Savoia S.9) 수상 비행정 2대가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체스트베르크(Tschingelhörner) 일대에서 잇따라 추락하였다.
- 안개와 험준한 기상 악화, 그리고 프로펠러 박리 현상으로 추정되는 기체 결함으로 인해 배를 몰던 핀란드 항공 장교 카를로 비르코넨(Kaarlo Virkkunen, 1898~1920년)을 포함한 양 기체 승무원 4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 이 참사는 창설 초기의 핀란드 공군에 막대한 인명 피해와 충격을 안겼으며, 핀란드 군 당국은 이 비극적인 희생을 기리기 위해 매년 9월 7일을 핀란드 '공군의 날(Ilmavoimien vainajien muistopäivä)' 추모일로 제정하였다.
1921-1930년 주요 사건
[1921년 9월 7일] 제1회 미스 아메리카 선발 대회 개막
-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Atlantic City) 해변 휴양지에서 상업 진흥과 가을철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기획된 제1회 '미스 아메리카(Miss America)' 선발 대회가 이틀간의 일정으로 화려하게 개막하였다.
- 현지 상인 협회와 언론이 협력하여 주최한 이 대회는 각 도시를 대표하여 출전한 수십 명의 여성들이 수영복과 이브닝드레스 심사를 거치며 미를 겨루었다.
- 당시 16세였던 워싱턴 D.C. 출신의 마거릿 고먼(Margaret Gorman, 1905~1995년)이 초대 우승을 차지하며 '골든 머메이드(The Golden Mermaid)' 트로피를 수상하였고, 이는 20세기 미국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쇼 산업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1921년 9월 7일]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 레지오 마리애 창설
- 아일랜드 더블린의 마이러스 하우스(Myra House)에서 빈민 구제 활동가 프랭크 더프(Frank Duff, 1889~1980년)와 마이클 토허(Michael Toher, 1888~1964년) 신부를 비롯한 평신도 모임이 모여 성모 마리아의 영성을 따르는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를 창설하였다.
- 로마 군단의 조직 체계를 모범 삼아 영적 군대로서 출발한 이 단체는 병자 방문, 소외 계층 돌봄, 선교 활동 등 평신도의 자발적 봉사를 기반으로 사도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 이후 레지오 마리애는 전 세계 수백 개 국가로 급속히 확장되어 수백만 명의 행동 단원을 거느린 가톨릭 교회 내 최대 규모의 국제 평신도 사도직 신심 단체로 성장하였다.
[1923년 9월 7일]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창립
-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 경찰 회의에서 빈 경찰청장 요한 쇠버(Johann Schober, 1874~1932년)의 주도하에 20개국 경찰 수뇌부들이 모여 국제형사경찰위원회(ICPC, 현 INTERPOL의 전신)를 공식 창설하였다.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 위조지폐 범죄, 인신매매, 마약 밀매 및 금융 사기 등 다국적 흉악 범죄에 각국 사법 당국이 유기적으로 공조할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였다.
- 빈에 본부를 두고 설립된 이 기구는 회원국 간 범죄 정보 교환과 수배자 공조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오늘날 전 세계 190여 개국이 가입한 세계 최대의 정부 간 국제 경찰 협력 기구로 발전하였다.
[1927년 9월 7일] 필로 판즈워스의 완전 전자식 텔레비전 송출 성공
- 미국의 천재적인 독학 발명가 필로 판즈워스(Philo Farnsworth, 1906~1971년)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실험실에서 회전 원판 등 기계적 장치를 완전히 배제한 역사상 최초의 '완전 전자식 텔레비전(all-electronic television)' 영상 송출에 성공하였다.
- 그는 진공관 내부에서 전자를 주사하는 이미지 디섹터(Image Dissector) 카메라 튜브를 사용하여 직선 형태의 단순한 광학 이미지를 수신 화면에 선명한 전자 신호로 변환해 띄웠다.
- 이는 기존 기계식 텔레비전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현대 브라운관 및 전자 영상 디스플레이 기술의 기초를 확립한 방송 기술사의 혁명적 쾌거였다.
[1929년 9월 7일] 핀란드 내륙 나시얘르비호 쿠루호 침몰 참사
- 핀란드 남서부 탐페레(Tampere) 인근 나시얘르비호(Lake Näsijärvi)에서 승객과 승무원 150여 명을 태우고 운항 중이던 증기선 쿠루(SS Kuru)호가 시속 80km가 넘는 강풍과 거센 돌풍을 만나 전복되어 침몰하였다.
- 높은 파도가 선체 갑판을 덮치며 기관실로 물이 급격히 유입되었고, 불과 몇 분 만에 배가 뒤집히며 미처 탈출하지 못한 승객 136명이 차가운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목숨을 잃었다.
- 이 참사는 핀란드 내륙 수운 역사상 최악의 수상 교통 참사로 기록되었으며, 참사 이후 핀란드 정부는 호수와 내륙 수로를 운항하는 모든 선박에 대한 복원성 검사 규정과 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하였다.
1931-1940년 주요 사건
[1932년 9월 7일] 차코 전쟁 최대 격전 보케론 전투 개막
-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간의 그란차코(Gran Chaco) 영유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차코 전쟁(Chaco War)에서 양국 지상군 정예가 격돌한 첫 번째 대규모 정규전인 보케론 전투(Battle of Boquerón)가 개막하였다.
- 호세 펠릭스 에스티가리비아(José Félix Estigarribia, 1888~1940년) 중령이 지휘하는 파라과이 육군 제1군단 병력 만 수천 명이 보케론 요새를 수비하던 마누엘 마르사나(Manuel Marzana, 1889~1980년) 중령의 볼리비아 수비대를 완전히 포위하였다.
- 3주간 이어진 치열한 공방전 끝에 수적으로 열세였던 볼리비아군이 항복하였으며, 이 전투의 승리는 파라과이 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키고 전쟁 초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1936년 9월 7일] 마지막 태즈메이니아늑대(틸라신)의 멸종
- 호주 태즈메이니아섬 호바트 동물원(Hobart Zoo)의 철창 우리에서 사육되던 지구상 마지막 공인 태즈메이니아늑대(Thylacine, 주머니늑대), 통칭 '벤저민(Benjamin)'이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홀로 숨을 거두었다.
- 육식성 유대류인 틸라신은 유럽 정착민들의 무분별한 목축지 개발, 양 떼를 해친다는 오명에 따른 정부의 현상금 수렵 정책, 서식지 파괴 및 전염병으로 인해 개체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 사육사의 관리 소홀로 혹한과 더위에 방치되어 발생한 벤저민의 죽음과 함께 한때 호주 대륙과 태즈메이니아를 누비던 독특한 최상위 포식자 종이 영원히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며, 인류에게 현대적 야생동물 보존의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1940년 9월 7일] 크라이오바 조약에 따른 남도브루자 반환
- 루마니아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 대표단이 루마니아 크라이오바에서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중재하에 남도브루자(Southern Dobruja) 영토를 불가리아에 공식 반환하는 크라이오바 조약(Treaty of Craiova)을 체결하였다.
- 루마니아의 국왕 카롤 2세(Carol II, 1893~1953년) 정권은 제2차 발칸 전쟁(1913년) 이후 획득했던 이 비옥한 흑해 연안 영토를 추축국의 강력한 영토 재조정 압력에 굴복하여 양도해야 했다.
- 이 조약은 수만 명에 이르는 주민 강제 교환을 수반하였으며, 루마니아는 이웃 국가들과의 영토 분쟁을 봉합하고 추축국 블록에 확고히 편입되는 외교적 결과를 낳았다.
[1940년 9월 7일] 독일 루프트바페의 런던 대공습(더 블리츠) 개시
- 제2차 세계 대전 중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 1893~1946년) 제국원수가 지휘하는 나치 독일 공군(Luftwaffe) 폭격기 수백 대가 영국 수도 런던에 무차별 야간 폭격을 가하며 '더 블리츠(The Blitz)'로 불리는 대공습의 서막을 열었다.
- '검은 토요일(Black Saturday)'로 불린 이날 공습으로 런던 템스강 도크랜드 항만 구역과 민간인 주거지가 불바다로 변하며 첫날에만 민간인 400여 명이 사망하고 천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 독일 공군은 이후 57일 동안 연속으로 런던을 맹폭하였으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영국 국민들의 불굴의 항전 의지를 꺾지 못하고 결국 제공권 장악에 실패하였다.
1941-1950년 주요 사건
[1942년 9월 7일] 밀른만 전투 종결과 일본 해군육전대의 패주
- 태평양 전쟁 중 파푸아뉴기니 동쪽 끝 밀른만(Milne Bay) 비행장을 탈취하려 기습 상륙했던 일본 해군특별육전대(SNLF)가 연합군 수비대의 맹렬한 반격에 밀려 잔존 병력의 전면 해상 철수를 단행하였다.
- 시릴 클로위스(Cyril Clowes, 1892~1968년) 소장이 지휘하는 호주 육군 정예 민병 부대와 미 육군 공병대는 험준한 정글 늪지대와 폭우 속에서 일본군의 야간 육탄 공격을 완벽히 격퇴하였다.
- 이 전투는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연합군 지상군이 일본 제국 육해군 지상 전력을 상대로 거둔 '사상 최초의 확고한 지상전 승리'로 기록되어 연합군의 사기를 고취하고 포트모르즈비 방어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1943년 9월 7일] 텍사스 휴스턴 걸프 호텔 대형 화재 참사
-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도심 중심가에 위치한 저가 숙박시설 걸프 호텔(Gulf Hotel)에서 한밤중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투숙객 55명이 목숨을 잃었다.
- 목조 인테리어와 가연성 매트리스로 가득 찼던 저층부에서 시작된 불길은 유독 가스와 화염을 뿜어내며 계단과 복도를 순식간에 집어삼켰고, 대부분 노령층이나 빈곤층이었던 투숙객들은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변을 당했다.
- 이 사고는 휴스턴 소방 역사상 단일 사고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참극으로 남았으며, 이후 미국 전역의 도심 다중이용 숙박시설에 비상탈출구와 방화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3년 9월 7일] 독일 제17군의 쿠반 교두보 철수 작전 개시
- 독소전쟁 중 캅카스 북서부 타만반도(Taman Peninsula)를 방어하던 에르빈 예네케(Erwin Jaenecke, 1890~1960년) 상급대장의 독일 국방군 제17군이 소련 붉은 군대의 맹공을 피해 크림반도로 철수하는 '크림힐트 작전(Operation Brunhild)'을 개시하였다.
- 붉은 군대의 쿠반(Kuban) 총공세에 밀려 흑해 연안 교두보가 차단될 위기에 처하자, 독일 국방군은 케르치 해협(Strait of Kerch)을 건너 대규모 병력과 중장비를 후방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하였다.
- 한 달여에 걸친 철수 작전을 통해 수십만 명의 독일 및 루마니아군이 크림반도로 퇴각하였으나, 이로써 히틀러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코카서스 유전 지대 장악의 원대한 전략적 꿈은 완전히 소멸하였다.
[1945년 9월 7일] 웨이크섬 주둔 일본군의 미 해병대 항복
-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전략 요충지 웨이크섬(Wake Island)을 1941년 12월부터 점령하고 있던 일본 해군 수비대 사령관 사카이바라 시게마쓰(Sakaibara Shigematsu, 酒井原繁松, 1898~1947년) 해군 소장이 미 해병대 대표단에 무조건 항복하였다.
- 미 해군 호위구축함 레비호(USS Levy) 함상에서 열린 공식 항복 문서 서명식을 통해 로슨 H. M. 샌더슨(Lawson H. M. Sanderson, 1895~1973년) 미 해병 준장이 섬의 관할권을 공식 접수하였다.
- 수년간 연합군의 해상 봉쇄로 인한 극심한 기아 상태에서 버티던 일본군 생존 병력은 즉시 무장 해제되었으며, 사카이바라 소장은 점령 기간 저지른 미국 민간인 노동자 집단 학살 혐의로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전후 사형에 처해졌다.
[1945년 9월 7일] 연합군 승리의 베를린 연합 승전 열병식 거행
-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공식 기념하기 위해 독일 수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 인근 샤를로텐부르크 거리에서 연합군 4개국 합동 승전 열병식이 거행되었다.
- 소련의 게오르기 주코프(Georgy Zhukov, 1896~1974년) 원수와 미국의 조지 S. 패튼(George S. Patton, 1885~1945년) 장군, 영국과 프랑스의 최고 사령관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4개국 정예 지상군 및 기갑 부대 수천 명이 행진하였다.
- 특히 소련군이 최초로 대외 공개한 거대한 IS-3 중전차 부대의 위용은 서방 군사 관측통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제2차 대전의 공동 승리를 축하하는 동시에 냉전(Cold War)의 서막을 알리는 상징적 무대가 되었다.
[1945년 9월 7일] 미국 극동사령부의 38선 이남 군정 선포
-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 육군 대장이자 극동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년~1964년)가 극동사령부 포고령 제1호를 발표하여 북위 38도선 이남 한반도 지역에 대한 군정을 공식 선포하였다.
- 포고령은 38선 이남의 행정·사법·치안 권한을 미군이 접수하고 주민들의 복종을 요구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규정하였다.
- 이 조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건국준비위원회 등 자생적 기구의 정부 지위가 부인되었으며, 냉전 구도 속 남북 분단 체제가 본격적으로 고착화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1948년 9월 7일] 대한민국 제헌국회의 반민족행위처벌법 가결
- 대한민국 제헌국회가 일제강점기 일제에 적극 협력하여 민족에게 해악을 끼친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한 법안인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 김웅진(Kim Woong-jin, 1905년~미상) 의원 등이 주도하여 기초된 이 법률은 헌법 제101조에 근거를 둔 특별법으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구성의 법적 기반이 되었다.
- 민족정기 확립과 식민 잔재 청산을 위한 근대 법제사상 첫 제도적 시도였으나, 이후 이승만 정권의 비협조와 경찰력의 방해로 온전한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1949년 9월 7일] 독일연방공화국(서독) 연방의회 개원 및 국가 수립 개시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3개국 점령지에서 선출된 초대 독일 연방의회(Bundestag)와 연방상원(Bundesrat)이 본(Bonn)에서 첫 회의를 개최하며 독일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Germany)의 공식 가동을 알렸다.
- 에리히 쾰러(Erich Köhler, 1892년~1958년)가 초대 연방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며칠 뒤 테오도어 호이스(Theodor Heuss, 1884년~1963년) 초대 대통령과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년~1967년) 초대 총리가 취임하였다.
- 이로써 서방 진영의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서독 체제가 정식 출범하였고, 동독의 수립과 함께 전후 독일의 양극 분단 체제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
1951-1960년 주요 사건
[1953년 9월 7일] 니키타 흐루쇼프의 소련 공산당 제1서기 선출
-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년)의 서거 이후 권력 재편을 모색하던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ev, 1894~1971년)가 소련 공산당 제1서기(First Secretary of the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로 공식 선출되었다.
- 스탈린 사후 게오르기 말렌코프(Georgy Malenkov, 1902~1988년) 각료회의 의장, 라브렌티 베리야(Lavrentiy Beria, 1899~1953년) 내무인민위원 등과의 복잡한 집단 지도체제 및 치열한 암투 속에서 흐루쇼프는 당 기구를 확고히 장악하며 당내 최고 실권자로 부상하였다.
- 이로써 흐루쇼프 중심의 유일 영도 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훗날 1956년 제20차 당대회에서 스탈린 격하 운동을 촉발하고 동서 냉전기 이른바 '해빙(The Thaw)' 정국을 여는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1956년 9월 7일] 제네바 노예제도 및 유사관행 폐지 보충협약 조인
-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UN) 주최 전권회의를 통해 전통적 노예무역뿐 아니라 부채농노제, 농노제, 강제결혼 등 노예 유사 관행을 철폐하기 위한 보충협약(Supplementary Convention on the Abolition of Slavery)이 조인되었다.
- 이 조약은 1926년 국제연맹 시절 체결된 노예조약을 보완하고 강화하여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전근대적 착취 형태를 국제법적으로 금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 현대 국제인권법 체계에서 모든 형태의 비자발적 예속 상태를 종식하려는 국제사회의 공동 규범을 공고히 한 중요한 다자조약이다.
[1957년 9월 7일] 부산 국제시장 상인 강도 살해 사건 발생
-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소재 국제시장(Gukje Market)의 한 금은방 및 상점 골목에서 거액의 현금과 귀금속을 노린 흉악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 전후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이 지속되던 시기에 발생한 이 사건은 상인들을 극심한 불안에 빠뜨렸으며 관할 치안 당국의 대대적인 범인 검거 수사로 이어졌다.
- 1950년대 피난민 밀집 지역이자 경제 중심지였던 부산 국제시장의 열악한 방범 실태와 전후 사회 범죄 양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일화로 기록되었다.
1961-1970년 주요 사건
[1963년 9월 7일] 미국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 공식 개관
- 미국 오하이오주 캔턴(Canton)에서 미국 프로 미식축구의 유구한 역사와 전설적인 인물들을 기리는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Pro Football Hall of Fame)이 성대하게 공식 개관하였다.
- 캔턴은 1920년 오늘날의 NFL(National Football League)의 전신인 미국 프로 풋볼 협회(APFA)가 창립된 유서 깊은 발상지로, 개관과 함께 짐 소프(Jim Thorpe, 1887~1953년), 조지 할라스(George Halas, 1895~1983년), 레드 그레인지(Red Grange, 1903~1991년) 등 초창기 17명의 헌액자(Charter Members)가 초대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 이 명예의 전당의 건립은 미국 현대 스포츠 문화에서 미식축구가 최고의 인기 프로 종목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그 역사적 정체성을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상징적 구심점이 되었다.
[1965년 9월 7일]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중 중국의 국경 군대 증원 발표
- 카슈미르 분쟁으로 발발한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Second Indo-Pakistani War)의 교전이 격화되던 중,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인도와 맞닿은 시킴(Sikkim) 및 라다크(Ladakh) 국경 지대에 군대를 증원 배치하겠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 중국의 총리 저우언라이(Zhou Enlai, 周恩來, 1898~1976년)는 인도가 파키스탄을 침략하고 중국 영토에 도발적인 방어 시설을 설치했다고 강력히 비난하며 파키스탄에 대한 외교적·군사적 지지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 앞서 1962년 중인국경분쟁(Sino-Indian War)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이 경고는 분쟁이 대규모 다자간 국제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극도의 안보 위기감을 고조시켰으며, 결국 유엔의 적극적인 개입과 타슈켄트 선언(Tashkent Declaration) 체결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5년 9월 7일] 베트남 전쟁 피라냐 작전 개시
- 베트남 전쟁(Vietnam War) 중 미 해병대와 베트남 공화국 육군(남베트남군)이 꽝응아이(Quảng Ngãi)성 바탕간반도(Batangan Peninsula) 일대에서 베트콩(NLF) 거점을 소탕하기 위한 대규모 연합 수색 작전인 피라냐 작전(Operation Piranha)을 전격 개시하였다.
- 이번 작전은 1965년 8월 미 해병대가 큰 승리를 거둔 스타라이트 작전(Operation Starlite)의 후속 조치로, 해병대 수륙양용 부대의 해안 상륙과 헬리콥터 강습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공산군 요새를 압박하였다.
- 며칠간 이어진 격렬한 수색 교전 끝에 미 해병 연합군은 수백 명의 적군을 사살하고 거대한 지하 동굴 요새망을 무력화함으로써 남베트남 중부 해안 지대의 연합군 작전 거점 안전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였다.
[1969년 9월 7일] 브라질의 공식 국호 브라질연방공화국 개칭
- 군사독재 체제하의 브라질 과도군사평의회가 신헌법 개정 절차를 거치며 기존의 '브라질합중국(Estados Unidos do Brasil)'에서 '브라질연방공화국(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으로 국호를 변경하는 안을 확정·공포하였다.
- 당시 군사정권을 이끌던 아우구스투 라데마케르(Augusto Rademaker, 1905년~1985년) 해군 장관 등 군부 3인방은 헌법 수정조치를 통해 국가 기구 전반의 중앙집권적 통제를 강화하였다.
- 이 국호 개칭은 브라질의 연방제적 정체성을 유지하되 군부 주도의 강력한 국가주의적 행정 질서를 확립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결과였다.
[1970년 9월 7일] 요르단 정부군과 팔레스타인 게릴라의 무력 충돌
- 요르단 왕국의 수도 암만(Amman)과 주요 도시에서 후세인 1세(Hussein of Jordan, 1935~1999년) 국왕의 요르단 왕립군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산하 페다인(Fedayeen) 무장 게릴라 세력 간의 격렬한 총격전이 발발하였다.
- 요르단 영토 내에서 '국가 속의 국가'로 행세하며 왕정 전복을 위협하던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의 항공기 동시 공중 납치 사건 등 극단적 도발이 잇따르자 정부군과의 긴장이 마침내 폭발하였다.
- 이 국지적 유혈 교전은 요르단 왕실이 군사 계엄령을 선포하고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요르단 국경 밖으로 완전히 몰아내게 되는 현대 중동사의 대참극 '검은 9월 사건(Black September in Jordan)'의 서막이 되었다.
[1970년 9월 7일] 베트남 텔레비전(VTV)의 공식 개국
-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국영 방송국인 베트남 텔레비전(Vietnam Television, VTV)이 역사적인 첫 흑백 시험 방송을 성공적으로 송출하며 공식 출범하였다.
- 당시 베트남 전쟁의 포화 속에서 호찌민(Ho Chi Minh, 1890~1969년) 서거 1주기를 맞아 쿠바와 소련의 방송 기술 지원을 받아 임시 스튜디오에서 라디오 방송인 '베트남의 소리(Voice of Vietnam)' 전파를 타고 시작되었다.
- 이 방송망의 개설은 전시 북베트남 군민의 사기를 결집하고 정부 정책을 전파하는 결정적인 대중 매체 기반이 되었으며, 통일 이후 베트남 전역을 아우르는 전국 국영 텔레비전 네트워크로 발전하는 시초가 되었다.
1971-1980년 주요 사건
[1977년 9월 7일] 파나마 운하 주권 반환 토리호스-카터 조약 체결
- 미국 워싱턴 D.C.의 미주기구(OAS) 본부에서 미국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년~)와 파나마의 실권자 오마르 토리호스(Omar Torrijos, 1929~1981년) 장군이 역사적인 토리호스-카터 조약(Torrijos–Carter Treaties)에 공식 서명하였다.
- 1903년 건립 이래 미국이 영구적으로 독점 통제하던 파나마 운하 지대(Panama Canal Zone)의 관할권을 파나마 정부로 단계적으로 이양하고, 20세기 마지막 날인 1999년 12월 31일 정오를 기해 운하의 전면적인 주권을 파나마에 반환한다는 파격적인 합의였다.
- 이 조약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팽배했던 반미 감정을 크게 완화하고 국가 간 자주권 존중의 모범을 제시하였으며, 중남미 외교사에서 평화적 영토 반환을 이룩한 최대의 금자탑으로 기록되었다.
[1977년 9월 7일] 캐나다 배리 CKVR 송신탑 항공기 충돌 참사
- 캐나다 온타리오주 배리(Barrie) 인근에서 짙은 안개 속을 비행하던 경비행기 파이퍼 PA-23 아파치(Piper PA-23 Apache)가 높이 300미터에 달하는 CKVR-DT 방송국의 대형 송신탑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 강력한 충돌로 인해 거대한 철골 송신탑이 힘없이 꺾이며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던 일가족 5명 전원이 그 자리에서 안타깝게 사망하였다.
- 이 참사로 CKVR 방송 송출이 즉시 전면 중단되어 복구까지 수개월 동안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항공 운항 안전과 고층 철탑의 항공 장애등 및 경고 시스템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제도적 계기가 되었다.
[1978년 9월 7일] 게오르기 마르코프 우산 암살 사건
- 불가리아 출신의 반체제 작가이자 영국 BBC 방송 기자로 활동하던 게오르기 마르코프(Georgi Markov, 1929~1978년)가 런던 워털루 다리(Waterloo Bridge) 버스 정류장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공격을 받았다.
- 불가리아 공산 비밀경찰과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사주를 받은 요원 프란체스코 굴리노(Francesco Gullino, 1946~2021년)가 특수 제작된 우산 끝에서 치명적인 리신(Ricin) 독성 물질이 든 미세 금속 탄환을 마르코프의 허벅지에 발사하였다.
- 마르코프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과 다발성 장기 부전에 시달리다 나흘 뒤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이 사건은 냉전 시대 동구권 정보기관이 저지른 가장 잔혹하고 기괴한 정치 공작 암살의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1979년 9월 7일] 크라이슬러사의 미 연방 정부 15억 달러 구제금융 공식 요청
-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Chrysler Corporation)가 극심한 유동성 위기와 파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지미 카터 행정부와 미 의회에 15억 달러 규모의 연방 대출 보증을 공식 요청하였다.
- 석유 파동에 따른 소형 고효율 자동차 수요 변화 적응 실패와 경영 악화가 겹치며 수만 명의 노동자가 실직 위기에 몰리자, 당시 사장으로 갓 부임한 리 아이아코카(Lee Iacocca, 1924~2019년)가 국가적 지원을 호소하였다.
- 미 의회는 치열한 논쟁 끝에 연방 구제금융 법안을 승인하였으며, 이후 크라이슬러는 K-카 플랫폼 성공과 획기적인 자구 노력을 통해 전액 조기 상환에 성공함으로써 미국 기업 구조조정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회생 성공 신화를 기록하였다.
1981-1990년 주요 사건
[1984년 9월 7일] 몰타 고조섬 해상 순찰정 폭발 참사
- 지중해 몰타 공화국의 고조(Gozo)섬 인근 해상에서 불법 압수된 폭죽을 바다에 투기하여 폐기 처분하던 몰타군 소속 순찰정 C23호 내부에서 원인 미상의 거대한 폭발 사고가 발생하였다.
- 배에 적재되어 있던 대량의 화약류가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순찰정 선체가 산산조각 났고, 탑승하고 있던 몰타 군인 5명과 경찰관 2명 등 총 7명이 현장에서 순직하였다.
- 이 참사는 평화 시기 몰타 방위군이 겪은 최악의 인명 손실 사고로 기록되었으며, 몰타 정부는 국가적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폭발물 및 압수 위험물 취급 절차에 대한 안전 규정을 전면적으로 쇄신하였다.
[1985년 9월 7일]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김근태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
- 대한민국 경찰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김근태(Kim Geun-tae, 1947년~2011년)에 대해 국가보안법 및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정식 구속영장을 집행하였다.
- 김근태는 8월 말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강제 연행되어 고문기술자 이근안(Lee Geun-an, 1944년~ ) 등으로부터 극심한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으며 허위 자백을 강요당하였다.
- 이후 재판 과정에서 자행된 잔혹한 국가폭력 고문 실태가 법정 진술을 통해 폭로되면서 제5공화국 독재정권의 비인도성을 고발하고 1987년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을 당겼다.
[1986년 9월 7일] 데스몬드 투투 주교의 케이프타운 대주교 착좌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저명한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인권 운동가인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1931~2021년) 주교가 케이프타운 세인트조지 대성당에서 흑인 최초의 케이프타운 성공회 대주교로 공식 착좌하였다.
- 백인 소수 정권의 가혹한 인종차별 정책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남아프리카 성공회의 최고위 수장직에 흑인 성직자가 오른 것은 인종 분리 장벽을 무너뜨리는 상징적인 종교적 일대 사건이었다.
- 투투 대주교는 이 자리에서 비폭력 평화 시위와 남아공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강력히 촉구하였으며, 향후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년)와 함께 남아공 민주화와 인권 회복을 이끄는 도덕적 지도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1986년 9월 7일] 칠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자 암살 미수 사건
- 칠레의 군사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년) 대통령이 산티아고 근교 엘 카니소(El Canelo) 산악 도로를 통과하던 중 좌익 도시 게릴라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전선(FPMR)의 기습 매복 공격을 받았다.
- 게릴라 대원들은 로켓 추진 유탄(RPG)과 소총을 난사하며 대통령 호송 차량 행렬을 기습 폭파하였고, 치열한 총격전 끝에 피노체트의 경호원 5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상을 입었다.
- 그러나 방탄 처리된 리무진 덕분에 피노체트 본인은 손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고 구사일생으로 생환하였으며, 이후 군사 정권은 즉각 전국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당 인사와 민주화 운동 세력에 대해 피의 대숙청을 단행하였다.
[1986년 9월 7일] 해인사 불교악법철폐대회 및 대규모 승려 시위
-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Haeinsa)에서 전국의 조계종 승려 2천여 명이 결집하여 불교재산관리법 등 국가의 불교 통제 악법 철폐를 요구하는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하였다.
- 당시 송월주(Song Wol-ju, 1935년~2021년) 스님 등이 주도한 이 대회는 국가 권력의 종교 탄압과 불교 재산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가두시위로 이어졌다.
- 10·27 법난(1980년) 이후 침체되어 있던 불교계가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율성 회복, 나아가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자주적 정화 운동의 기치를 올린 일대 사건이었다.
[1987년 9월 7일] 동독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의 사상 최초 서독 공식 방문
- 독일민주공화국(동독) 국가원수이자 사회주의통일당(SED)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 1912년~1994년)가 1949년 독일 분단 이후 최초로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을 방문하여 헬무트 콜(Helmut Kohl, 1930년~2017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 본(Bonn)에서 거행된 공식 환영식에서는 동독 국가가 연주되고 국기가 게양되어 동독 정권이 사실상 서독으로부터 국가적 실체를 공식 인정받는 형태를 띠었다.
- 분단국가 간 긴장 완화와 동서 냉전 해빙 무드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사건이었으며, 이는 2년 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로 향하는 외교적 징검다리가 되었다.
[1990년 9월 7일] 세계적 일루셔니스트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내한
- 대형 마술과 일루전의 대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던 미국의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David Copperfield, 1956년~ )가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공연을 위해 처음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였다.
- 자유의 여신상 소멸 마술, 만리장성 벽 통과 마술 등으로 유명했던 그는 내한 기자회견을 통해 현대 일루전 아트의 예술성을 대중에게 역설하였다.
- 이번 방한 공연은 단순한 서커스형 마술에 머물러 있던 한국 공연계에 첨단 조명과 음향, 스케일이 결합된 블록버스터급 무대 마술 산업을 본격적으로 각인시켰다.
1991-2000년 주요 사건
[1991년 9월 7일] 서울 여의도 KBS홀 공식 개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방송공사(KBS) 본관 부지에 1,800여 석 규모의 다목적 종합 공연장인 KBS홀(KBS Hall)이 공식 개관하였다.
- 첨단 음향·조명 시설과 이동식 무대 설비를 갖춘 이 시설은 KBS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뿐 아니라 각종 방송 제작과 문화 예술 행사의 핵심 무대로 기획되었다.
- 공영방송의 대형 공개방송과 클래식 및 대중음악 공연의 중심 인프라로 자리 잡으며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 확산에 중대한 공간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1991년 9월 7일]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의 평양 77그룹 아시아 각료회의 참석
- 대한민국 외무부 차관 유종하(Yoo Chong-ha, 1936년~ )를 수석대표로 하는 정부 대표단 6명이 '77그룹(Group of 77) 아시아 각료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판문점을 거쳐 북한 평양에 도착하였다.
- 분단 이후 대한민국 외교부의 현직 차관급 공식 대표단이 북측 수도인 평양 땅을 합법적으로 밟은 것은 이번이 헌정 사상 최초였다.
-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1991년 9월 17일)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에 성사된 이 방문은 남북기본합의서 체결로 이어지는 남북 화해 협력 외교의 결정적 물꼬를 텄다.
[1992년 9월 7일] 안기부의 전 민중당 공동대표 김낙중 간첩 혐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현재의 국가정보원)는 전 민중당 공동대표 김낙중(Kim Nak-jung, 1931년~2020년) 등을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거액의 공작금을 수수한 간첩 혐의로 구속했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 안기부는 수사 발표를 통해 김낙중의 자택 지하 등에서 미화 100만 달러와 무전기, 독약 앰플 등을 압수했다고 밝히며 대대적인 대공 수사 성과로 홍보하였다.
- 이 사건은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수개월 앞둔 정국에서 진보 성향 야권 세력에게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혔으며 공안 정국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유발하였다.
[1993년 9월 7일] 문민정부의 제1급 이상 고위공직자 재산 일괄 공개 단행
- 김영삼(Kim Young-sam, 1927년~2015년)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 이후 공직자윤리법 개정에 따라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1급 이상 고위공직자 1,166명의 재산 내역이 관보를 통해 일제히 일반에 공개되었다.
- 국회의원, 고위 법관, 장·차관 및 정부투자기관 기관장 등이 대거 포함되었으며, 부동산 투기 및 차명 재산 보유 의혹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 사정(司正) 정국의 신호탄이 된 이 조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연쇄 사퇴와 구속을 불렀고, 공직 사회의 투명성과 청렴도를 제고하는 중대한 사법적 제도 개선책으로 기능하였다.
[1995년 9월 7일]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의 STS-69 미션 발사
-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엔데버(Space Shuttle Endeavour)호가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우주비행사 데이비드 워커(David M. Walker, 1944~2001년) 선장을 포함한 5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STS-69 임무를 위해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 이번 비행은 초고진공 상태를 활용해 반도체 및 첨단 박막 결정을 제조하는 웨이크 실드 시설(Wake Shield Facility, WSF)의 두 번째 전개 비행이자, 태양 관측 위성(SPARTAN)을 회수하는 등 복합적인 우주 과학 실험을 목표로 하였다.
- 승무원들은 약 열흘간의 궤도 체류 동안 정밀한 과학 연구와 선외 우주유영(EVA) 훈련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무사히 귀환함으로써 차세대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에 필요한 핵심 기술 기반을 다졌다.
[1996년 9월 7일] 내부고발 감사관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 대법원 무죄 확정
- 대법원 형사부는 재벌그룹의 비업무용 부동산 과다 보유 실태에 대한 감사원 특감 중단 외압 사실을 언론에 폭로했다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이문옥(Lee Mun-ok, 1940년~ ) 전 감사관에게 무죄를 확정판결하였다.
-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그가 언론에 공개한 내용은 이미 널리 알려졌거나 은폐되어서는 안 될 공익적 사안으로, 형법상 실질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비밀이 아니라고 명시하였다.
- 이 판결은 한국 사법사에서 국가 권력기관의 비리와 외압을 사회에 알린 공익제보자(내부고발자)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법적으로 보호한 선구적 판례가 되었다.
[1996년 9월 7일] 남성 5인조 아이돌 그룹 H.O.T.의 공식 데뷔
-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5인조 보이그룹 H.O.T.(문희준, 장우혁, 토니 안, 강타, 이재원)가 MBC 음악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통해 타이틀곡 〈전사의 후예(폭력시대)〉로 방송에 공식 데뷔하였다.
- 기획사 중심의 체계적인 트레이닝 시스템과 강렬한 힙합 댄스, 학교 폭력 비판 등 10대의 저항적 메시지를 담은 기획 전략은 청소년층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 H.O.T.의 등장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에서 기획형 아이돌 팬덤 문화와 K-pop 산업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고 지배적 주류로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7년 9월 7일] 록히드 마틴 F-22 랩터 전투기의 첫 비행
- 미국 조지아주 도빈스 항공예비군 기지(Dobbins ARB)에서 록히드 마틴사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5세대 스텔스 공중우세 전투기 F-22 랩터(F-22 Raptor) 시제기가 역사적인 처녀비행(Maiden flight)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 수석 시험 비행 조종사 알프레드 노먼(Alfred Norman, 생몰년 미상)이 조종간을 잡은 F-22는 약 1시간 동안 상공을 비행하며 탁월한 공기역학적 안정성과 첨단 플라이 바이 와이어 제어 계통의 성능을 완벽히 입증하였다.
- 레이더 반사 면적을 극소화한 스텔스 설계와 애프터버너 없이 초음속 순항이 가능한 슈퍼크루즈(Supercruise) 기능을 갖춘 F-22의 첫 비행은 21세기 현대 공중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항공 군사 기술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1999년 9월 7일] 그리스 아테네 대지진 발생
- 그리스 수도 아테네 북서쪽 17km 지점에서 모멘트 규모 6.0(Mw), 최대 수정 메르칼리 진도 IX(파괴적)에 달하는 강력한 얕은 지진이 발생하여 대도시 일대를 강타하였다.
- 수십 년간 활성화되지 않았던 단층이 갑작스럽게 파열되면서 발생한 강력한 지반 진동으로 노후 공장과 주거용 아파트 건물이 붕괴하여 143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 이 참사는 그리스 현대사에서 수십 년 만에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자연재해였으나, 지진 직후 역사적 숙적이었던 터키가 즉시 구조대를 급파하고 상호 구호에 나서면서 양국 관계가 해빙을 맞는 이른바 '지진 외교(Earthquake Diplomacy)'의 출발점이 되었다.
21세기(2001-2100년) 주요 사건
2001-2010년 주요 사건
[2005년 9월 7일]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다당제 직선제 대통령 선거 실시
- 이집트에서 1952년 공화국 수립 이래 단일 후보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 형식이 아닌, 복수 후보가 출마하여 경쟁하는 역사상 최초의 다당제 직접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 1981년 집권 이후 장기 철권통치를 이어오던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1928~2020년) 대통령이 미국의 민주화 개혁 압박과 국내 반정부 시위에 직면하여 헌법을 개정하고 도입한 선거였다.
- 야당 지도자 아이만 누르(Ayman Nour, 1964년~) 등이 출마한 가운데 선거 결과 무바라크가 약 88%의 득표율로 5선 연임에 성공하였으나, 관권 개입과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훗날 2011년 '아랍의 봄(Arab Spring)' 시민 혁명의 도화선으로 이어졌다.
[2007년 9월 7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북미 평화조약 체결 용의 천명
-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도중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1946년~ )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검증 가능하게 핵을 포기하면 평화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하였다.
- 부시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할 경우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항구적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용의가 있음을 공식 석상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였다.
- 이는 9·19 공동성명의 이행 동력을 되살리고 대북 적대시 정책 종식 의사를 전달하여 북핵 6자회담의 외교적 진전을 견인하기 위한 유화적 제스처로 평가받았다.
[2008년 9월 7일] 미 연방정부의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국유화 조치
-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고조로 치닫던 상황에서 헨리 폴슨(Henry Paulson, 1946년~) 미국 재무장관이 미국 주택 담보대출 시장의 절반 이상을 떠받치던 양대 모기지 금융 공기업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을 정부 관리 체제로 전격 인수(국유화)한다고 발표하였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인해 천문학적인 부실 채권을 떠안은 두 거대 금융기관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금융 시스템 전면 붕괴를 막기 위해 연방주택금융청(FHFA)을 통한 법정관리가 단행되었다.
- 미국 정부가 최대 2,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이 조치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국면에서 단행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부 구제 개입으로 남아 국제 금융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2009년 9월 7일] 경상북도 군위군 세계 최대 익룡 발자국 화석 발견 보고
- 한국조류학회 및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진은 경상북도 군위군 약 1억 년 전 백악기 퇴적층에서 보존 상태가 완벽한 초대형 익룡(Pterosaur)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공식 확인하였다.
- 발견된 앞발자국 화석은 길이 35.4cm, 폭 17.3cm로 세계에서 보고된 익룡 발자국 중 가장 거대하였으며 양 날개를 폈을 때 너비가 10m에 달하는 개체로 추정되었다.
- 이 발견은 한반도가 중생대 백악기 거대 척추동물 및 익룡류의 주요 서식처이자 이동 경로였음을 입증하는 고생물학적 세계 정상급 학술 자료로 등재되었다.
[2010년 9월 7일]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어선 충돌 사건
- 동중국해의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저인망 어선 민진위 5179호가 단속에 나선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미즈키호 및 요나쿠니호와 잇따라 충돌하였다.
- 일본 당국이 어선의 중국인 선장 잔치슝(Zhan Qixiong, 詹其雄, 1969년~)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긴급 체포하고 구속 수사를 진행하자, 중국 정부는 외교관 초치, 고위급 교류 중단, 희토류 대일 수출 사실상 중단 등 전방위적인 보복 조치를 가하였다.
- 결국 일본이 선장을 무조건 석방하며 사태가 수습되었으나, 이 사건은 중일 관계를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대립 국면으로 몰아넣고 동아시아 해양 영유권 갈등의 뇌관을 폭발시킨 중대한 외교 안보 충돌로 남았다.
2011-2020년 주요 사건
[2011년 9월 7일] 로코모티프 야로슬라블 하키팀 전세기 추락 참사
- 러시아 야로슬라블 툰노슈나 공항(Tunoshna Airport)을 이륙하던 Yak-42D 여객기가 활주로 끝 유도등 지주와 충돌한 뒤 볼가강 지류로 추락하여 폭발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였다.
- 탑승자 45명 중 43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으며, 탑승객 대부분은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리는 콘티넨탈 하키 리그(KHL) 개막전에 출전하려던 러시아 최고의 명문 아이스하키 구단 로코모티프 야로슬라블(Lokomotiv Yaroslavl)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전원이었다.
- 브래드 맥크리먼(Brad McCrimmon, 1959~2011년) 감독과 다수의 NHL 출신 스타 선수들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으면서 전 세계 스포츠계는 비통함에 빠졌고, 러시아 항공 당국의 노후 항공기 점검 및 조종사 훈련 규정에 일대 쇄신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9월 7일] 캐나다의 대(對)이란 공식 외교 관계 단절
-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Stephen Harper, 1959년~) 총리 정부의 존 베어드(John Baird, 1969년~) 외무장관이 이란 테헤란 주재 캐나다 대사관을 전격 폐쇄하고 오타와 주재 이란 외교관 전원에게 5일 이내 추방 명령을 내렸다.
- 캐나다 정부는 이란의 불법적인 우라늄 농축 등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 추진, 시리아 아사드 독재 정권에 대한 군사 지원, 이스라엘에 대한 노골적인 절멸 위협, 심각한 인권 침해를 공식 단교의 주된 이유로 발표하였다.
- 서방 선진국이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전면 차단하고 대사관을 철수한 이 강경한 조치는 이란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외교적·경제적 고립 압박을 한층 최고조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
[2013년 9월 7일] 서울 경전철 신림선 기공식 개최
- 서울특별시 관악구 보라매공원에서 영등포구 여의도 샛강역과 관악구 관악산역(서울대)을 연결하는 도시철도 노선인 '서울 경전철 신림선'의 공식 기공식이 개최되었다.
- 이 노선은 대중교통 소외 지역인 서울 서남권의 만성적인 도로 교통정체를 해소하고 동서축 환승망을 대폭 개선하기 위한 완전 무인자동운전 고무차륜 열차 시스템으로 설계되었다.
- 서울 남부권 광역교통 인프라의 다변화를 알린 신호탄이었으며, 2022년 정식 개통되어 관악·동작·영등포 구간의 통근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2014년 9월 7일] 경북 경주시 북군저수지 둑 누수로 인한 주민 긴급 대피
- 경상북도 경주시 북군동에 위치한 농업용 인공 저수지인 북군저수지의 제방 하부 수문 부근에서 흙과 물이 다량 유출되는 붕괴 조짐 현상이 발생하였다.
- 만수 면적에 달하는 저수지 둑 일부가 침식되자 경주시와 소방 당국은 하류에 위치한 펜션 단지와 마을 주민 등 100여 명을 안전지대로 긴급 대피시키고 방류 조치를 취했다.
- 노후화된 농업용 수리 시설의 안전 불감증과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 수자원 관리 취약성을 재확인시키며 전국 노후 저수지 전수점검의 계기가 되었다.
[2014년 9월 7일] 독도 근해 표류 북한 선박 발견 및 익일 송환 조치
- 대한민국 독도 동남방 약 1.5km 해역에서 기관 고장으로 조난되어 독도 방향으로 표류 중이던 1.5톤급 북한 상선 선적의 소형 목선 1척이 대한민국 해양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다.
- 해양경찰과 합동조사단은 선원 2명을 안전하게 구조한 후 북측 귀환 의사를 확인하였으며, 이들은 단순 기관 고장으로 표류했음을 진술하고 복귀를 강력히 희망하였다.
- 정부는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북측에 통보한 뒤 선박 수리를 지원하였고, 다음 날인 9월 8일 동해 공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선원과 선박을 안전하게 인계하였다.
[2015년 9월 7일] JYP 엔터테인먼트 남성 밴드 DAY6(데이식스) 데뷔
- 박진영(Park Jin-young, 1971년~ )이 이끄는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6인조(데뷔 당시 기준) 팝 록 밴드 DAY6(성진, Jae, Young K, 원필, 도운, 준혁)가 데뷔 미니 앨범 《The Day》를 발매하고 공식 데뷔하였다.
- 타이틀곡 〈Congratulations〉를 비롯해 멤버 전원이 전곡 작사·작곡 및 라이브 연주에 참여하는 싱어송라이팅 밴드 정체성을 표방하였다.
- 댄스 음악 위주의 K-pop 대형 기획사 시스템에서 보기 드문 정통 자작 밴드 형식으로 출발하여 실력파 라이브 밴드로서 독자적 음악 영역을 구축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2017년 9월 7일] 멕시코 치아파스 대지진 발생
-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Chiapas)주 피히히아판 남서쪽 87km 해역 태평양 밑바닥에서 모멘트 규모 8.2(Mw)의 초대형 해구형 지진이 발생하였다.
- 이 지진은 1932년 이후 멕시코 관측 역사상 85년 만에 발생한 가장 강력한 규모의 지진으로 기록되었으며, 코코스판이 북아메리카판 아래로 섭입하면서 발생한 지진파는 수도 멕시코시티까지 심하게 뒤흔들었다.
- 진앙과 인접한 오아하카(Oaxaca)주와 치아파스주를 중심으로 가옥과 역사적 건축물이 대거 붕괴하여 최소 98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는 심각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낳았다.
[2019년 9월 7일] 우크라이나-러시아 대규모 수감자 교환 단행
- 러시아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과 우크라이나 키이우 보리스필 공항 사이에서 양국 정부가 각각 35명씩 총 70명의 핵심 구금 인사를 맞교환하는 대규모 포로 교환(Prisoner exchange)이 성사되었다.
- 이번 석방 대상에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에 항의하다 러시아 법원에서 테러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던 우크라이나의 저명 영화감독 올레그 센초프(Oleg Sentsov, 1976년~)와 2018년 케르치 해협 나포 사건으로 억류되었던 우크라이나 해군 수병 24명이 전격 포함되었다.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y, 1978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취임 이후 달성된 이 합의는 양국 간 극한 대립 속에서 돈바스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대화의 일시적인 해빙 무드를 조성하였다.
2021-2030년 주요 사건
[2021년 9월 7일]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세계 최초 법정화폐 도입
-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에서 나이브 부케레(Nayib Bukele, 1981년~) 대통령의 주도하에 통과된 법률에 따라 가상자산인 비트코인(Bitcoin)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국가 공식 법정통화(Legal tender)의 효력을 갖게 되었다.
- 기존 법정화폐인 미국 달러화와 대등한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엘살바도르 정부는 국민들에게 디지털 지갑인 '치보(Chivo)' 앱을 보급하고 비트코인 거래 수수료 면제와 금융 포용 확대를 약속하였다.
-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가격 변동성과 금융 불안정에 대한 강력한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단행된 이 조치는 전 세계 금융계와 가상자산 시장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디지털 경제의 급진적인 실험대로 기록되었다.
[2021년 9월 7일]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의 대군부 대민 방어전 선포
- 미얀마에서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민주 진영 인사들이 결성한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의 두와 라시 라(Duwa Lashi La, 1950년~) 대통령 대행이 군사 정권에 맞서는 전면적인 '인민 방어전(People's Defensive War)'을 공식 선포하였다.
-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1956년~)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군부 독재 세력의 민간인 유혈 탄압에 맞서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민방위군(PDF)과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에게 군부 기지와 시설에 대한 총궐기 봉기를 촉구하였다.
- 이 선포는 평화적인 거리 시위 중심의 저항이 전국 규모의 무장 게릴라전과 전면적인 내전(Myanmar civil war)으로 본격 전환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되었으며,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향한 장기적이고 치열한 투쟁의 서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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