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301-400년) 주요 사건
[394년 9월 5일] 프리기두스 전투 첫날 서로마 군대의 방어 성공
- 프리기두스 전투(Battle of Frigidus) 첫째 날, 프랑크족 출신의 서로마 제국(Western Roman Empire) 군사령관 아르보가스트(Arbogast, ?~394)와 참칭 황제 에우게니우스(Eugenius, 345년경~394)의 군대가 동로마 제국(Eastern Roman Empire)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 347~395)의 맹공을 격퇴하고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사수하였다.
- 테오도시우스 1세는 알라리크 1세(Alaric I, 370년경~410) 휘하의 서고트족 등 야만족 포이데라티(연합군)를 선봉에 세워 율리안 알프스(Julian Alps) 협곡의 진지를 돌파하려 했으나, 험준한 지형과 서로마 군대의 견고한 방어진에 가로막혀 막대한 전사자를 내고 패퇴하였다.
- 비록 첫날 전투는 전통 신앙(이교) 부흥을 표방하던 서로마 진영의 승리로 끝났으나, 이튿날 거센 모래바람(보라풍)과 서로마 장수들의 전향으로 전세가 역전되며 테오도시우스 1세가 제국 전역을 단독 통치하고 기독교를 국가의 유일한 종교적 정통으로 굳히는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10세기(901-1000년) 주요 사건
[917년 9월 5일] 유암의 황제 즉위와 남한(南漢) 건국
- 오대십국 시대(Five Dynasties and Ten Kingdoms period)의 군벌이자 청해군 절도사였던 유암(Liu Yan, 889~942)이 광둥 지역의 중심 도시인 번우(Panyu, 현 광저우)에서 황제에 즉위하고 초기 국호를 대월(Dayue)로 칭하며 남한(Southern Han) 정권을 공식 수립하였다.
- 당나라 멸망 후 남령 이남의 영남(Lingnan) 일대를 장악한 유암은 중앙 왕조의 혼란을 틈타 독자적인 관료 기구와 과거제를 마련하고, 남중국해 해상 무역을 장악하여 막대한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 유암은 이듬해 국호를 대월에서 한(Han)으로 변경하고 54년간 광둥과 광시 일대를 지배하는 독자적인 왕조를 유지하였으며, 해상 실크로드를 통한 대외 교역 확장을 이끌어 남방 경제와 문화 성장에 중요한 이정표를 남겼다.
13세기(1201-1300년) 주요 사건
[1234년 9월 5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의 교령집 반포
-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 그레고리오 9세(Pope Gregory IX, 1170년경~1241)가 저명한 도미니코회 교회법학자 페냐포르트의 성 레이문도(Raymond of Peñafort, 1175년경~1275)에게 명해 편찬한 새로운 공식 교회법전인 《그레고리오 9세 교령집(Decretals of Gregory IX)》(통칭 《리베르 엑스트라(Liber Extra)》)을 교황 칙서 《평화의 왕(Rex pacificus)》을 통해 공식 반포하였다.
- 이 법전은 1140년경 출판된 《그라티아누스 교령집(Decretum Gratiani)》 이후 축적된 교황청의 수많은 교령과 보편공의회 결의문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모순된 조항들을 정리하여 재판, 성직, 혼인, 범죄 등 5개 권역으로 완벽히 분류하였다.
- 공포 직후 볼로냐 대학교(University of Bologna)와 파리 대학교(University of Paris) 등 주요 대학에 전파되어 표준 교육 및 재판 지침으로 채택되었으며, 1917년 현대적 교회법전이 제정될 때까지 약 7세기 동안 가톨릭 교회의 중심 법전으로 기능하였다.
14세기(1301-1400년) 주요 사건
[1367년 9월 5일] 스와소케의 버마 아바 왕국 국왕 즉위
- 버마 중부 평원의 신흥 세력이던 아바 왕국(Kingdom of Ava)에서 대신들과 불교 승단의 추대를 받은 스와소케(Swa Saw Ke, 1330~1400)가 천연두로 급서한 창건자 타도민비아(Thado Minbya, 1345~1367)의 뒤를 이어 새로운 국왕으로 공식 즉위하였다.
- 바간 왕조(Pagan Dynasty)의 왕통과 북방 샨족(Shan states) 군주의 혈통을 겸비했던 스와소케는 국경 지대 산악 족장들의 침입을 외교와 무력으로 억제하고, 차우세(Kyaukse) 일대의 관개 수로를 복구하여 왕국의 식량 기반과 내정을 안정시켰다.
- 그의 즉위는 혼란에 빠졌던 아바 왕조의 붕괴를 막고 왕권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으며, 이후 남방 몬족의 한타와디 왕국(Hanthawaddy Kingdom)과 40년에 걸친 패권 쟁탈전인 '40년 전쟁(Forty Years' War)'을 전개하는 토대가 되었다.
16세기(1501-1600년) 주요 사건
[1590년 9월 5일] 파르마 공작의 파리 포위전 해제
- 프랑스 종교전쟁(French Wars of Religion) 중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인 파르마 공작 알렉산드로 파르네세(Alexander Farnese, Duke of Parma, 1545~1592)가 이끄는 스페인 정예 구원군이 마른강변의 요충지 라니쉬르마른(Lagny-sur-Marne)을 기습 점령하여 프랑스 국왕 앙리 4세(Henry IV of France, 1553~1610)로 하여금 파리 포위전(Siege of Paris)을 전격 해제하도록 강제하였다.
-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Philip II of Spain, 1527~1598)의 명을 받고 개입한 파르네세 공작은 탁월한 기동전술로 위그노 진영의 보급망을 차단하고 기아로 함락 직전에 놓여 있던 가톨릭 동맹(Catholic League)의 파리 시가지에 대규모 식량을 투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 이 사건은 스페인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지닌 위력을 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파리 시민들의 완강한 가톨릭 저항 의식을 실감한 앙리 4세가 훗날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낭트 칙령(Edict of Nantes)을 반포하여 프랑스를 통합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7세기(1601-1700년) 주요 사건
[1661년 9월 5일] 재무총감 니콜라 푸케의 체포와 실각
-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의 친위 총사대장 다르타냥(D'Artagnan, 1611년경~1673)이 낭트(Nantes)에서 재무총감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 1615~1680)를 국고 횡령과 반역 혐의로 전격 체포하였다.
- 푸케는 자신의 저택인 보르비콩트 성(Château de Vaux-le-Vicomte)에서 왕실을 능가하는 호화로운 축하연을 열어 젊은 국왕의 경계심을 샀으며, 중앙집권적 재정 개혁을 추진하던 장바티스트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 1619~1683)의 정치적 탄핵을 받았다.
- 루이 14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재무총감직을 전격 폐지하고 자신이 직접 재정을 총괄하는 친정 체제를 확립하였으며, 체포된 푸케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피네롤로 요새(Fortress of Pinerolo)에 수감되어 생을 마감하였다.
[1697년 9월 5일] 허드슨만 해전과 피에르 르 무안 디베르빌의 승리
- 9년 전쟁(Nine Years' War) 중 북미 전선에서 피에르 르 무안 디베르빌(Pierre Le Moyne d'Iberville, 1661~1706) 함장이 지휘하는 프랑스 해군의 44문 함선 펠리칸호(Pélican)가 허드슨만(Hudson's Bay) 해역에서 잉글랜드 함대 3척을 단독으로 격파하였다.
- 펠리칸호는 심각한 수적 열세 속에서도 잉글랜드의 56문 주력 전열함 햄프셔호(HMS Hampshire)를 교전 끝에 침몰시키고 상선 허드슨스베이호(Hudson's Bay)를 나포하였으며, 생존 함선 디어링호(Dering)를 패주시켰다.
- 이 대승을 발판으로 프랑스군은 모피 무역의 핵심 요충지이던 요크 팩토리(York Factory) 요새를 탈환하여 북방 교역로를 장악하였으며, 디베르빌은 누벨프랑스 최고의 군사 영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698년 9월 5일] 표트르 1세의 서구화 개혁과 턱수염세 부과
- 서유럽 대사절단(Grand Embassy) 순방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복귀한 러시아 차르국의 표트르 1세(Peter I, 1672~1725)가 봉건적 사회 구조를 개혁하고 서구화를 촉진하기 위해 성직자와 농민을 제외한 전 계층에 턱수염세(Beard tax)를 공식 부과하였다.
- 동방 정교회 전통에 따라 수염을 신성시하던 전통 귀족 보야르(Boyar)와 상인들의 완강한 저항에 맞서, 세금을 납부한 자에게만 영수증 역할을 하는 동전 형태의 '턱수염 토큰(Beard token)'을 지니도록 강제하였다.
- 이 파격적인 조세 정책은 러시아 사회의 오랜 관습을 타파하고 유럽식 복식과 생활 문화를 이식시킴으로써, 러시아 제국이 근대 열강으로 도약하는 상징적 계기가 되었다.
18세기(1701-1800년) 주요 사건
[1725년 9월 5일]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의 혼례
-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국왕 루이 15세(Louis XV, 1710~1774)와 폐위된 폴란드 국왕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Stanisław Leszczyński, 1677~1766)의 딸 마리 레슈친스카(Maria Leszczyńska, 1703~1768)가 퐁텐블로 궁전(Palace of Fontainebleau)에서 정식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 당시 15세였던 어린 국왕의 왕위 계승자를 조속히 확보하려던 섭정 세력 부르봉 공작 루이 앙리(Louis Henri, Duke of Bourbon, 1692~1740)의 정략적 판단에 따라, 강대국과의 복잡한 외교 분쟁을 피할 수 있는 온건한 성품의 왕비가 간택되었다.
- 이 국혼을 통해 왕실 직계 후계자인 도팽 루이(Louis, Dauphin of France, 1729~1765)를 비롯한 여러 자녀가 태어났으며, 훗날 장인 스타니스와프의 복위를 둘러싼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War of the Polish Succession)의 직접적인 외교적 배경이 되었다.
[1774년 9월 5일] 필라델피아 제1차 대륙회의 개막
- 영국 의회가 보스턴 차 사건에 대응하여 제정한 강압법(Coercive Acts, 식민지 측 명칭 '참을 수 없는 법')에 맞서기 위해 북미 13개 식민지 중 조지아를 제외한 12개 식민지 대표 56명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카펜터스 홀(Carpenters' Hall)에 집결하였다.
- 버지니아의 지도자 페이턴 랜돌프(Peyton Randolph, 1721~1775)가 초대 의장으로 추대되었으며,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존 애덤스(John Adams, 1735~1826),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 대륙회의는 영국산 물품에 대한 전면적인 통상 거부와 권리 선언을 채택하여 식민지 간의 단결된 저항 체제를 공고히 하였으며, 이는 미국 독립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으로 향하는 범식민지 연합정부 형성의 출발점이 되었다.
[1781년 9월 5일] 체사피크만 해전과 연합군의 전략적 승리
- 미국 독립 전쟁의 분수령이 된 체사피크만(Chesapeake Bay) 해역에서 프랑수아 조제프 폴 드 그라스(François Joseph Paul de Grasse, 1722~1788)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해군 함대가 토머스 그레이브스(Thomas Graves, 1725~1802) 제독 휘하의 영국 해군 함대를 격퇴하였다.
- 수적 우위를 확보한 프랑스 함대는 맹렬한 함포 사격전으로 영국 해군에 막대한 손상을 입혔고, 영국 함대 테러블호(HMS Terrible)가 대파되어 자침되는 등 큰 타격을 입은 영국군은 뉴욕으로 철수하였다.
- 이 해전의 결과로 버지니아 요크타운에 고립되어 있던 찰스 콘월리스(Charles Cornwallis, 1738~1805) 장군의 영국 육군은 해상 보급 및 퇴로가 완전히 봉쇄되었으며, 이후 연합군이 요크타운 전투(Siege of Yorktown)에서 영국군의 최종 항복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784년 9월 5일] 윌리엄 허셜, 망상 성운 발견
- 독일 태생의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 1738~1822)이 자신이 직접 제작한 구경 18.7인치 반사망원경(Reflecting Telescope)을 통해 백조자리(Cygnus) 방향에서 거대한 가스 구름인 망상 성운(Veil Nebula)의 서쪽 부분을 최초로 관측하였다.
- 이 천체는 약 1만 년에서 2만 년 전 대질량 별이 폭발하면서 방출된 가스가 팽창하며 형성된 초신성 잔해(Supernova Remnant)로, 허셜은 희미하고 섬세한 필라멘트 구조의 가스 성운을 체계적으로 목록화하였다.
- 허셜의 관측은 인간의 시야를 태양계 너머 심우주(Deep Space)로 본격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항성의 진화와 소멸 과정에서 성간 물질이 순환한다는 현대 천체물리학 이론의 토대를 닦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1791년 9월 5일] 올랭프 드 구주의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공표
- 프랑스 혁명기의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문필가인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 1748~1793)가 남성 중심적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비판하며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Woman and of the Female Citizen)》을 작성해 세상에 발표하였다.
- 구주는 선언문 제1조에서 "여성은 자유롭게 태어나며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고 역설하였으며, 여성에게 참정권, 재산권, 공직 담임권 및 언론의 자유를 동등하게 부여할 것을 프랑스 국민의회와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 왕비에게 강력히 청원하였다.
- 당시의 가부장적 혁명 정부로부터 배척당하고 훗날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비운을 겪었으나, 이 선언은 근대 페미니즘 사상사에서 성평등과 보편적 기본권을 최초로 체계화한 기념비적인 문건으로 평가받는다.
[1793년 9월 5일] 프랑스 국민공회의 공포정치 공식 선포
- 프랑스 혁명기 국민공회(National Convention)는 식량 위기와 파리 민중 상퀼로트(Sans-culottes)의 격렬한 시위에 직면하여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공포정치를 오늘의 의제로 삼는다(Terror is the order of the day)"고 공식 선포하였다.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 1758~1794)와 베르트랑 바레르(Bertrand Barère, 1755~1841)가 주도하는 공안위원회(Committee of Public Safety)는 대내외적 위기를 진압한다는 명분하에 혁명 재판소의 사법 집행을 극단적으로 강화하였다.
- 이 조치로 인해 용의자법(Law of Suspects)이 통과되고 수만 명의 정적과 시민이 단두대에서 무차별 처형되는 극단적인 '공포정치(Reign of Terror)'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1798년 9월 5일] 주르당법 제정과 보편적 징병제 도입
- 프랑스 제1공화국 총재정부 시기 500인회(Council of Five Hundred) 의원이던 군인 장바티스트 주르당(Jean-Baptiste Jourdan, 1762~1833)과 피에르 델브렐(Pierre Delbrel, 1764~1846)이 공동 제안한 병역법(이른바 주르당-델브렐법, Jourdan Law)이 공식 통과되었다.
- "모든 프랑스인은 조국을 수호할 의무를 지닌 군인이다"라는 조항을 명문화하여 20세부터 25세까지의 신체 건강한 미혼 남성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징집하는 근대적 국민개병제(Conscription)의 법적 틀을 완성하였다.
- 과거의 모병제와 임시 징발 체제를 탈피하여 막대한 규모의 상비 병력을 안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이는 훗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 대육군(Grande Armée)의 핵심 군사적 원천이 되었다.
19세기(1801-1900년) 주요 사건
1811-1820년 주요 사건
[1812년 9월 5일] 1812년 전쟁과 포트웨인 포위전의 발발
- 1812년 전쟁(War of 1812) 중 현재의 미국 인디애나(Indiana)주 북동부 개척지에 위치한 포트웨인 요새(Fort Wayne)에서 위나맥(Winamac, ?~1812) 추장이 이끄는 포타와토미족(Potawatomi)과 마이애미족(Miami) 원주민 연합군이 미 육군을 공격하며 포위전에 돌입하였다.
- 원주민 전사들이 요새 외곽 시설에서 복귀하던 미군 병사 2명을 사살하면서 전투가 촉발되었으며, 수비대장 제임스 레아(James Rhea, 1769년경~1832) 대위 휘하의 주둔 병력은 극심한 고립 속에서 완강한 방어전을 펼쳤다.
- 원주민들의 거듭된 방화와 기습 공격을 막아내던 요새는 인디애나 준주 주지사 윌리엄 헨리 해리슨(William Henry Harrison, 1773~1841) 장군이 이끄는 구원 병력이 당도하면서 포위가 풀렸고, 미군은 서북부 국경 전선의 교두보를 지켜냈다.
[1816년 9월 5일] 루이 18세의 초왕당파 하원(샹브르 앵트루바블) 해산
- 프랑스 부르봉 복고왕정의 국왕 루이 18세(Louis XVIII, 1755~1824)가 극단적인 보수 복벽주의를 고수하던 대의원 하원, 이른바 '유례없는 의회(Chambre introuvable)'를 전격 해산하였다.
- 1815년 워털루 전투 직후 선출된 이 의회는 국왕보다 더 강경한 왕당파 인사들이 다수를 점하여 혁명 세력과 보나파르트 지지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백색 테러(White Terror)를 조장하고 국정 안정을 저해하였다.
- 루이 18세는 총리 아르망 에마뉘엘 뒤 플레시 드 리슐리외(Armand-Emmanuel du Plessis de Richelieu, 1766~1822) 공작과 온건파 각료 엘리 드카즈(Élie Decazes, 1780~1860)의 건의를 받아들여 의회를 해산하고 입헌군주제의 온건 중도 노선을 정착시키고자 하였다.
1831-1840년 주요 사건
[1836년 9월 5일] 샘 휴스턴의 텍사스 공화국 초대 헌법 대통령 당선
-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텍사스 공화국(Republic of Texas)의 헌법에 따른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샌재신토 전투의 영웅 샘 휴스턴(Sam Houston, 1793~1863) 장군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 휴스턴은 '텍사스의 아버지'로 불리던 스티븐 F. 오스틴(Stephen F. Austin, 1793~1836)과 전 임시정부 수반 헨리 스미스(Henry Smith, 1788~1851)를 8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꺾었으며, 부통령에는 미라보 B. 라마(Mirabeau B. Lamar, 1798~1859)가 선출되었다.
- 휴스턴의 지도 아래 신생 공화국은 정부 조직 정비, 재정 확충, 원주민 정책을 본격 추진하였으며, 궁극적으로 멕시코의 재침략 위협을 극복하고 미국 연방의 정식 주로 병합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1839년 9월 5일] 영국과 청나라의 교전 확대와 제1차 아편전쟁 돌입
- 주룽 전투(Battle of Kowloon) 직후 영국 수석통상감독관 찰스 엘리엇(Charles Elliot, 1801~1875) 해군 대령이 청나라(Qing Dynasty) 관헌의 봉쇄에 맞서 해상 무력 대응을 공식화하며 교전 상태를 대폭 확대하였다.
- 흠차대신 임칙서(Lin Zexu, 1785~1850)의 엄격한 아편 몰수 조치와 영국 상선에 대한 보급 차단에 대응하여 영국 군함들이 광둥 연안의 해상 교통로를 차단하고 포격전을 이어갔다.
- 현지에서의 이러한 무력 충돌은 이듬해 영국 의회와 외무장관 헨리 존 템플 파머스턴(Henry John Temple, Lord Palmerston, 1784~1865) 자작의 공식 원정군 파견 결정으로 직결되었으며, 동아시아 전통 조공 질서를 붕괴시킨 제1차 아편전쟁(First Opium War)의 서막을 열었다.
1861-1870년 주요 사건
[1862년 9월 5일] 로버트 E. 리 장군의 포토맥강 도하와 메릴랜드 진격
-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중 남군 북버지니아군(Army of Northern Virginia)의 총사령관 로버트 E. 리(Robert E. Lee, 1807~1870) 장군이 버지니아주 리즈버그 인근의 화이츠 포드(White's Ford) 여울목을 통해 포토맥강(Potomac River)을 공식 도하하였다.
- 제2차 불런 전투의 승기를 바탕으로 감행된 이번 기동은 남군이 방어전을 벗어나 연방 북부 관할 영토인 메릴랜드(Maryland)주로 군대를 진격시킨 최초의 전략적 침공 작전이었다.
- 리 장군은 메릴랜드 주민들의 남부 연합 동참을 유도하고 북부의 반전 여론을 고조시키며 유럽 열강의 외교적 승인을 얻고자 하였으나, 이 행군은 남북전쟁 사상 단일 최악의 유혈전인 앤티텀 전투(Battle of Antietam)로 이어졌다.
1871-1880년 주요 사건
[1877년 9월 5일] 오글라라 라코타 지도자 크레이지 호스의 피살
- 대수족 전쟁(Great Sioux War)과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horn)에서 미군에 맞서 싸운 오글라라 라코타 수족(Oglala Lakota Sioux)의 전설적인 전쟁 지도자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 타슝카 위트코, 1840년경~1877)가 네브래스카주 로빈슨 요새(Fort Robinson) 영창에서 미군 병사의 총검에 찔려 사망하였다.
- 평화 회담을 위해 요새를 방문했다가 수감될 위기에 처하자 저항하던 중, 미군 사병 윌리엄 젠틀스(William Gentles, 1835~1878)의 총검에 찔려 치명상을 입고 당일 밤 숨을 거두었다.
- 원주민의 자유와 전통 터전을 지키려 했던 가장 용맹한 지도자의 죽음은 평원 원주민들의 조직적 군사 저항이 완전히 꺾였음을 의미하였으며, 이후 잔존 부족민들은 연방 정부의 보호구역에 영구 종속되었다.
1881-1890년 주요 사건
[1882년 9월 5일] 뉴욕시에서 열린 미국 최초의 노동절 퍼레이드
- 미국 뉴욕시 중앙노동조합(Central Labor Union)의 기획과 주도로 노동자의 사회적 기여와 연대를 알리기 위한 미국 역사상 최초의 '노동절 퍼레이드(Labor Day parade)'가 맨해튼에서 공식 개최되었다.
- 노동운동 지도자 피터 J. 맥과이어(Peter J. McGuire, 1852~1906) 또는 매슈 맥과이어(Matthew Maguire, 1850~1917) 등의 주도로 시작된 이 행진에는 벽돌공, 인쇄공, 보석공 등 1만여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하루 임금 삭감을 무릅쓰고 자발적으로 결집하였다.
- 참가자들은 시청에서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까지 행진하며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여가'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으며, 이 평화적 행진은 전국적 지지를 얻어 1894년 노동절(Labor Day)이 미국의 공식 연방 공휴일로 제정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1887년 9월 5일] 영국 엑서터 시어터 로열 극장 화재 참사
- 영국 잉글랜드 데번(Devon)주 엑서터의 시어터 로열(Theatre Royal, Exeter) 극장에서 연극 《로마니 라이(The Romany Rye)》 공연 도중 무대 뒤 가스 조명이 무대 배경 천에 인화되며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186명이 목숨을 잃었다.
- 극장 전문 건축가 C. J. 핍스(C. J. Phipps, 1835~1897)가 내화 설계를 적용해 재건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나, 무대와 객석을 분리하는 방화막이 없었고 상층 갤러리석의 비상구가 극도로 좁아 질식과 압사 피해가 극대화되었다.
- 이 참사는 영국 역사상 단일 건축물 화재 가운데 최악의 인명 피해로 기록되었으며, 전 세계 극장에 불연성 무대 방화막(Safety curtain) 설치, 전용 비상 탈출구 확보, 비상 표지 규격화 등 현대적 화재 안전 기준을 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91-1900년 주요 사건
[1898년 9월 5일] 남궁억·장지연 등, 황성신문 창간
- 대한제국(Korean Empire) 시기 독립협회 계열의 지식인인 남궁억(Namgung Eok, 1863~1939), 장지연(Jang Ji-yeon, 1864~1921), 고유상(Ko Yu-sang, 1861~1934) 등이 민족의식 고취와 근대적 계몽을 목적으로 순수 민간 일간지인 황성신문(Hwangseong Sinmun)을 창간하였다.
- 황성신문은 전통 유학자 계층과 지식인층을 독자층으로 흡수하기 위해 순한글 신문이었던 독립신문과 달리 국한문혼용체(Korean-Chinese Mixed Script)를 도입하여 발행되었다.
- 이 신문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주권을 수호하고 근대적 지식을 전달하는 핵심 구국 언론으로 활약하였으며, 훗날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린 장지연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게재하는 등 항일 구국 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20세기(1901-2000년) 주요 사건
1901-1910년 주요 사건
[1901년 9월 5일]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 버펄로 범미 박람회 연설
-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1843~1901)가 뉴욕주 버펄로(Buffalo)에서 개최된 범미 박람회(Pan-American Exposition)에 참석하여 미국의 상업적 번영과 국제적 위상을 선포하는 공식 연설을 진행하였다.
- 매킨리는 이날 5만 명이 넘는 군중 앞에서 기존의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를 완화하고 국가 간 호혜적인 상호주의(Reciprocity) 통상 조약을 체결할 것을 강조하는 역사적 제언을 남겼다.
- 그러나 대통령은 연설 바로 다음 날인 9월 6일, 박람회장 내 템플 오브 뮤직(Temple of Music)에서 무정부주의자 레온 촐고츠(Leon Czolgosz, 1873~1901)의 총격을 받아 서거하였고, 이는 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가 집권하며 미국의 진보주의 시대가 개막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1905년 9월 5일] 인천 월미도와 광제호 간 최초의 무선전신 개통
- 대한제국 탁지부 관세국 소속의 근대식 세관 감시선이자 군함인 광제호(Gwangjeho, 광제환)와 인천 월미도(Wolmido) 무선전신소 사이에 한국 역사상 최초의 무선전신(Wireless Telegraphy) 송수신이 성공적으로 개시되었다.
- 당시 광제호는 이탈리아의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1937)가 발명한 전파 통신 기술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해상 선박과 육상 기지 간의 전파 교신을 완벽하게 입증하였다.
- 이는 한국 근대 통신사에서 전선에 의존하지 않는 무선 통신 기술이 도입된 결정적 전환점이었으며, 비록 직후 일제에 의해 통신권이 강탈되는 비운을 겪었으나 독자적 해양 통신망 구축을 위한 주권적 시도로 평가받는다.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 체결과 러일전쟁 종결
-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스 해군 조선소(Portsmouth Naval Shipyard)에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의 외교적 중재 아래 러시아 제국(Russian Empire)과 일본 제국(Empire of Japan) 대표단이 포츠머스 조약(Treaty of Portsmouth)에 공식 서명하였다.
- 러시아의 전권대사 세르게이 비테(Sergei Witte, 1849~1915) 백작과 일본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Komura Jutaro, 1855~1911)는 조약을 통해 1년 7개월간 이어진 러일전쟁(Russo-Japanese War)을 종결짓고, 사할린 남부의 할양과 랴오둥반도(Liaodong Peninsula) 조차권 및 남만주 철도(South Manchuria Railway) 부설권을 일본에 넘겨주기로 합의하였다.
- 러시아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독점적 정치·군사·경제적 지배권을 공식 승인함으로써 대한제국(Korean Empire)은 외교적 보호막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 이는 동년 11월 을사늑약(Eulsa Treaty)으로 직결되는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다.
1911-1920년 주요 사건
[1913년 9월 5일] 육당 최남선, 월간 아동 잡지 <아이들> 창간
- 근대 문학의 개척자이자 출판인인 최남선(Choe Nam-seon, 1890~1957)이 자신이 설립한 출판사인 신문관(Sinmungwan)을 통해 아동을 독자로 설정한 월간 교양 잡지 <아이들>을 창간하였다.
- 1911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간된 잡지 <소년(少年)>의 후속작 성격을 지닌 이 잡지는 어린 세대에게 민족정신을 계승하고 서구의 근대 문물과 기초 과학 지식을 소개하기 위해 순수 한글 구어체로 쓰였다.
- <아이들>의 발행은 방정환(Bang Jeong-hwan, 1899~1931)의 본격적인 소년 운동이 일어나기에 앞서 근대적 의미의 '어린이'라는 독자 범주를 선구적으로 발굴하고 아동문학의 발전을 선도한 선구적 계몽 활동이었다.
[1914년 9월 5일] 제1차 마른 전투 개막과 슐리펜 계획의 좌절
- 제1차 세계 대전(World War I) 서부 전선에서 프랑스 육군 총사령관 조제프 조프르(Joseph Joffre, 1852~1931)의 총반격 명령에 따라, 파리 북동부 우르크강(Ourcq River) 일대에서 미셸 조제프 모누리(Michel-Joseph Maunoury, 1847~1923) 장군의 프랑스 제6군이 진격 중이던 독일군을 기습 공격하며 제1차 마른 전투(First Battle of the Marne)가 시작되었다.
- 파리 함락을 목전에 두고 있던 알렉산더 폰 클루크(Alexander von Kluck, 1846~1934) 장군의 독일 제1군과 카를 폰 뷜로(Karl von Bülow, 1846~1921) 장군의 독일 제2군 사이에 생긴 간격을 연합군이 파고들었으며, 파리 택시를 징발해 병력을 수송하는 결사적인 작전이 전개되었다.
- 이 작전은 프랑스를 단기 결전으로 굴복시키려던 독일 제국의 슐리펜 계획(Schlieffen Plan)을 완전히 좌절시켰으며, 이후 서부 전선 전체가 4년간의 혹독한 참호전(Trench warfare) 교착 상태로 접어드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1915년 9월 5일] 반전 사회주의자들의 치머발트 회의 개막
- 제1차 세계 대전의 광풍 속에서 스위스 사회민주당 지도자 로베르트 그림(Robert Grimm, 1881~1958)의 주도로 교전국과 중립국 11개국 출신 사회주의 지도자 38명이 스위스 베른 근교 치머발트(Zimmerwald)에 비밀리에 모여 국제 반전 회의를 개막하였다.
- 망명 중이던 러시아 볼셰비키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은 자국 정부의 전쟁 예산안에 찬성한 제2인터내셔널(Second International)의 배신을 맹비난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프롤레타리아트의 내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 비록 온건파와의 이견으로 레닌의 급진적 주장이 전면 반영되지는 못했으나 '즉각적인 무병합·무배상 평화'를 촉구한 치머발트 선언(Zimmerwald Manifesto)이 채택되었으며, 이는 훗날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 Comintern)을 창설하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사상적 교두보가 되었다.
[1916년 9월 5일]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 감독의 영화 《편협》 세계 최초 개봉
- '영화 연출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David Wark Griffith, 1875~1948)의 대작 무성 영화 《편협(Intolerance)》이 뉴욕 리버티 극장(Liberty Theatre)에서 세계 최초로 상영되었다.
- 이 영화는 고대 바빌론의 함락,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16세기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현대 미국의 노동 계급 갈등이라는 4개의 시대적 비극을 인간의 편협함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어 교차 편집(Cross-cutting) 기법으로 연출하였다.
- 이전 작품 《국가의 탄생》에 쏟아진 인종주의 비판에 대응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혁신적인 카메라 워크, 클로즈업, 몽타주 기법을 집대성하며 영화를 단순한 오락에서 고유한 종합 예술로 격상시켰다.
[1920년 9월 5일] 조선일보, 사설 필화 사건으로 일제에 의한 제1차 무기정간 처분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Government-General of Chosen)는 조선일보(Chosun Ilbo)에 게재된 평안북도 수해 비판 사설을 치안 방해와 불온사상 유포로 규정하고 제1차 무기한 발행 정지 처분을 내렸다.
- 문제가 된 글은 일제의 산림 수탈과 치산치수 실패를 지적한 사설 '자연의 화(自然의 禍)' 등이었으며, 총독부는 사이토 마코토(Saito Makoto, 1858~1936) 총독의 통치 방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이유로 발행을 강제 중단시켰다.
- 이 사건은 3·1 운동 이후 일제가 표방했던 유화책인 소위 '문화통치'의 기만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으로, 식민지 조선 민족 언론의 저항 정신과 일제의 가혹한 검열 실상을 고발하는 상징적 사례가 되었다.
1931-1940년 주요 사건
[1932년 9월 5일] 프랑스령 오트볼타의 행정 분할 및 해체
- 프랑스 식민 당국이 서아프리카 식민지의 재정 적자를 감축하고 플랜테이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한다는 명분으로 오트볼타(현 부르키나파소)를 분할 해체하는 알베르 르브룅(Albert Lebrun, 1871~1950) 대통령 명의의 식민 행정령을 공표하였다.
- 이 조치에 따라 프랑스령 오트볼타(French Upper Volta) 영토는 해체되어 코트디부아르(Ivory Coast), 프랑스령 수단(French Sudan, 현 말리), 니제르(Niger) 등 인접한 3개 프랑스 식민지에 분할 편입되었다.
- 이 강제 합병은 모시족(Mossi people)을 비롯한 현지 토착민들의 자치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대규모 강제 노역을 초래하였으며, 이에 맞선 현지 지도자들의 지속적인 복원 청원 운동 끝에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7년에 이르러서야 원래의 영토 경계로 재통합되었다.
[1935년 9월 5일]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 공식 창립
- 미국의 금융인 헨리 스터기스 모건(Henry Sturgis Morgan, 1900~1982)과 해럴드 스탠리(Harold Stanley, 1885~1963)가 뉴욕주에서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법인 설립 절차를 완료하고 공식 출범을 알렸다.
-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제정된 미국의 글래스-스티걸 법(Glass-Steagall Act)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을 법적으로 금지함에 따라, 모기업인 J.P. 모건(J.P. Morgan & Co.)에서 증권 및 투자금융 부문을 완전히 분리 독립시킨 결과였다.
- 모건 스탠리는 설립 첫해부터 미국 기업 금융 시장의 20%가 넘는 주식과 채권 발행을 주관하며 급성장하였고,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현대 월스트리트 투자금융 체제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1937년 9월 5일] 스페인 내전 야네스 요충지의 국민파 함락
- 스페인 내전(Spanish Civil War)의 북부 전역(Northern Campaign)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장군 휘하의 국민파 연합군이 하루 동안의 집중적인 포격과 공습 끝에 공화파의 핵심 해안 요충지인 아스투리아스(Asturias)주 야네스(Llanes)를 점령하였다.
- 피델 다빌라(Fidel Dávila, 1878~1962) 장군이 지휘하는 나바라 여단과 이탈리아 의용군단(CTV)의 화력 공세에 밀린 스페인 제2공화국(Second Spanish Republic) 군대는 방어선을 사수하지 못하고 서쪽 엘 마수코(El Mazuco) 산악 협곡으로 퇴각하였다.
- 야네스의 함락은 바스크 지방과 산탄데르를 연이어 상실한 공화파의 북부 고립 구역을 치명적으로 위축시켰으며, 북부 해안선 전체가 국민파의 수중에 떨어져 공화국의 해상 보급선이 완전히 궤멸되는 결정적 수순이 되었다.
[1938년 9월 5일] 칠레 세구로 오브레로 학살 참사
- 칠레 산티아고에서 호르헤 곤살레스 폰 마레에스(Jorge González von Marées, 1900~1962)가 이끄는 파시스트 성향의 칠레 국민사회주의운동(National Socialist Movement of Chile) 소속 무장 청년 당원들이 대통령궁 탈취를 노리고 기습 쿠데타를 감행하였다.
- 반란 청년들이 인근 노동자보험공단(Seguro Obrero) 빌딩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으나 칠레 군경에 포위되었고, 무기를 버리고 공식 항복했음에도 아르투로 알레산드리(Arturo Alessandri, 1868~1950) 대통령의 초강경 진압 명령을 받은 카라비네로스(경찰)에 의해 60여 명이 현장에서 집단 총살당하였다.
- 이 잔혹한 즉결 처형 사건은 칠레 사회 전역에 거대한 공분을 불러일으켰으며, 분노한 유권자들이 야당 진영으로 결집하면서 동년 10월 대선에서 좌파 인민전선(Popular Front)의 페드로 아기레 세르다(Pedro Aguirre Cerda, 1879~1941)가 승리하는 정치적 대이변을 낳았다.
1941-1950년 주요 사건
[1941년 9월 5일] 나치 독일의 에스토니아 본토 전역 점령
- 제2차 세계 대전 독소전쟁(Eastern Front of World War II)의 바르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 중 게오르크 폰 퀴흘러(Georg von Küchler, 1881~1968) 보병대장이 지휘하는 독일 국방군 제18군이 에스토니아 본토 전역에 대한 군사 점령을 최종 완료하였다.
- 독일군은 탈린(Tallinn)을 함락시키고 소련군 제8군 잔존 부대를 해상으로 패주시킨 데 이어 동북부 나르바(Narva) 국경 일대까지 잔적 소탕을 끝내며 발트해 연안의 지상 교두보를 완벽히 장악하였다.
- 본토를 탈환한 나치 독일은 하인리히 로제(Hinrich Lohse, 1896~1964)를 수반으로 하는 오스틀란트 국가판무관부(Reichskommissariat Ostland) 산하 에스토니아 총독령을 설치하고 가혹한 홀로코스트와 자원 약탈 통치를 개시하였다.
[1942년 9월 5일] 밀른만 전투 패배와 일본군의 전면 철수 명령
- 태평양 전쟁(Pacific War)의 뉴기니 전역(New Guinea campaign) 남동단 밀른만(Milne Bay)에서 연합군의 압도적인 항공 화력과 반격에 직면한 일본 제국 해군 제4함대 사령관 이노우에 시게요시(Inoue Shigeyoshi, 1889~1975) 중장이 상륙 부대에 전면 철수 명령을 하달하였다.
- 시릴 클라우스(Cyril Clowes, 1892~1968) 소장이 지휘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제7사단 민병대와 정예 여단은 늪지대와 정글 속에서 결사항전을 펼쳐 일본 해군특별육전대(SNLF)의 비행장 탈취 시도를 완벽히 분쇄하였다.
- 이 전투는 개전 이래 무패 행진을 이어가던 일본 육상 전투 부대가 연합군 지상군에게 결정적으로 패퇴하여 퇴각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연합군에게 태평양 반격에 대한 막대한 군사적 자신감을 안겨준 기념비적인 승리가 되었다.
[1943년 9월 5일] 503 낙하산보병연대의 나드잡 강하와 라에 포위
-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의 참관 아래 미국 육군 제503낙하산보병연대(503rd Parachute Infantry Regiment) 1,700여 명이 뉴기니 나드잡 비행장(Nadzab Airport) 상공에서 사상 최초의 대규모 공수 강하 작전을 감행하였다.
- 조지 케니(George Kenney, 1889~1977) 중장이 지휘하는 미국 육군 항공대(USAAF)의 정밀 폭격과 인공 연막 차단 지원을 받은 공수부대는 단 한 명의 적탄 사상자도 없이 비행장 활주로를 전격 장악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제7사단의 공수 수송로를 확보하였다.
- 살라마우아-라에 전역(Salamaua–Lae campaign)의 핵심 전환점이 된 이 작전으로 마크햄 계곡(Markham Valley)의 일본군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었으며, 뉴기니 북동부 해안에서 일본군의 전략적 방어선이 조기에 와해되었다.
[1944년 9월 5일] 런던 세 나라 망명정부의 베넬룩스 관세동맹 협정 체결
-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영국 런던에 피난 중이던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3개국 망명정부 대표들이 전후 서유럽의 경제 재건과 관세 장벽 철폐를 골자로 하는 역사적인 '베넬룩스 관세동맹(Benelux Customs Convention)' 협정에 공식 서명하였다.
- 벨기에 외무장관 폴앙리 스파크(Paul-Henri Spaak, 1899~1972), 네덜란드 외무장관 옐코 판 클레펜스(Eelco van Kleffens, 1894~1983), 룩셈부르크 외무장관 조제프 베흐(Joseph Bech, 1887~1975)는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과 대외 공동 관세율 설정을 골자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 이 협약은 전후 1948년 정식 발효되어 유럽 대륙 최초의 성공적인 초국가적 경제 협력체 '베넬룩스(Benelux)'를 탄생시켰으며, 훗날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와 유럽연합(EU)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유럽 통합의 실질적 모태가 되었다.
[1945년 9월 5일] 이고르 구젠코의 캐나다 망명과 냉전의 서막
- 캐나다 오타와(Ottawa) 주재 소비에트 연방(Soviet Union) 대사관의 군사정보국(GRU) 소속 암호 서기 이고르 구젠코(Igor Gouzenko, 1919~1982)가 109건의 일급 군사 기밀 문서를 은닉한 채 대사관을 탈출하여 캐나다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였다.
-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William Lyon Mackenzie King, 1874~1950) 캐나다 총리와 영국, 미국 수뇌부에 전달된 이 기밀 사료들은 서방의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 핵 개발 기밀을 빼돌리던 소련의 대규모 간첩 조직망을 만천하에 폭로하였다.
- 2차 대전 동맹국이었던 소련의 광범위한 서방 첩보전 실체가 명명백백히 드러나면서 미국과 영국의 대소 외교 정책이 전면 수정되었으며, 역사학계는 이 사건을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맞선 현대 냉전(Cold War)의 실질적인 개막 신호탄으로 평가한다.
[1945년 9월 5일] 아모레퍼시픽의 모태 태평양화학공업사 창립
- 기업가 서성환(Suh Sung-whan, 1924~2003) 창업자가 해방 직후 경기도 개성에서 화장품 제조 및 무역을 목적으로 태평양화학공업사(Taepyungyang Chemical Industry)를 창립하였다.
- 모친 윤독정(Yun Dok-jeong, 1891~1959) 여사의 동백기름 가내 수공업을 모태로 출발한 이 회사는 광복 후 극심한 물자난 속에서도 우수한 원료를 고집하며 순식물성 포마드와 '메로디크림(Melody Cream)'을 출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 서성환 회장의 창업은 황무지 상태였던 한국 뷰티 산업에 근대적 제조 공정과 독자적인 연구 개발(R&D) 체계를 선도적으로 구축하여 훗날 글로벌 뷰티 기업인 아모레퍼시픽(Amorepacific)으로 비상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1945년 9월 5일] '도쿄 로즈' 아이바 토구리의 요코하마 체포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일본 요코하마(Yokohama)에서 미국 육군 방첩대(CIC)가 라디오 도쿄(Radio Tokyo)의 대미 심리전 선전 방송을 진행했던 일본계 미국인 여성 아이바 토구리 다키노(Iva Toguri D'Aquino, 1916~2006)를 반역 혐의로 전격 체포하였다.
- 전쟁 중 도쿄에 발이 묶여 있던 그녀는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 매혹적인 목소리로 사기를 꺾는 전설적 여성 방송원인 '도쿄 로즈(Tokyo Rose)'의 실체로 지목되었으며, '고아 애니(Orphan Annie)'라는 가명으로 음악 방송을 송출했던 전력으로 인해 여론의 표적이 되었다.
- 1949년 미국 본토 재판에서 강요된 방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되었으나, 훗날 증인들의 위증이 밝혀지며 1977년 제럴드 포드(Gerald Ford, 1913~2006) 미국 대통령에 의해 완전 사면·복권되어 누명을 벗었다.
[1948년 9월 5일] 대한민국 육군 및 해군 공식 발족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국방경비법령(국령 제3호)에 따라 기존 미군정기에 창설되었던 조선경비대(Joseon Constabulary)와 해안경비대(Coast Guard)가 정식으로 대한민국 육군(Republic of Korea Army)과 대한민국 해군(Republic of Korea Navy)으로 승격·재편되었다.
- 초대 대통령 이승만(Rhee Syngman, 1875~1965)과 초대 국방부 장관 이범석(Lee Beom-seok, 1900~1972)의 주도하에 육군총사령부와 해군총사령부가 발족하였고, 손원일(Sohn Won-yil, 1909~1980) 중령이 초대 해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 이 조치로 대한민국은 외국의 군정 지휘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국가의 주권을 독자적으로 보위할 수 있는 합법적 정규 국군 체제를 완성하였으며, 이는 현대 군사 조직의 기틀을 확립한 중대한 이정표였다.
[1948년 9월 5일] 로베르 슈망의 프랑스 각료회의 의장 취임
- 프랑스 제4공화국(French Fourth Republic)의 대중공화운동(MRP) 소속 정치인이자 외무장관을 역임하던 로베르 슈망(Robert Schuman, 1886~1963)이 뱅상 오리올(Vincent Auriol, 1884~1966) 대통령에 의해 제4공화국의 각료회의 의장(총리)으로 정식 취임하였다.
- 그는 외무장관직을 겸임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처리의 중추적 협상가로 활약하였으며, 패전국 독일에 대한 가혹한 보복과 징벌적 배상 대신 유럽 공동체의 틀 안에서 경제적으로 공존하는 대독 화해 정책을 적극 주도하였다.
- 그의 외교적 통찰은 1950년 프랑스와 독일의 철강·석탄 생산을 통합 관리하자는 혁신적인 '슈망 선언(Schuman Declaration)'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유럽 통합의 토대를 마련한 '유럽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of the European Union)'로 칭송받게 되었다.
[1950년 9월 5일] 6·25 전쟁 중 낙동강 방어선의 명운을 가른 영천 전투 발발
- 6·25 전쟁의 최대 위기 국면에서 조선인민군(Korean People's Army) 제15사단이 국군 제8사단이 방어하던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기습 공격하면서 낙동강 방어선(Nakdong River Line) 최후의 공방전인 영천 전투(Battle of Yeongcheon)가 시작되었다.
- 북한군은 대구와 포항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 영천을 점령하여 부산으로 직진하려 하였고, 영천이 일시적으로 함락되자 국군 제2군단장 유재흥(Yu Jae-heung, 1921~2011) 준장은 전선의 가용 예비 병력을 총동원하여 반격 작전을 전개하였다.
- 국군은 치열한 백병전 끝에 북한군 사단을 와해시키고 9월 13일 영천을 완벽히 탈환하였으며, 이는 낙동강 전선의 붕괴를 막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는 결정적 시간과 교두보를 벌어준 승리였다.
1951-1960년 주요 사건
[1954년 9월 5일] KLM 네덜란드 항공 633편 섀넌강 추락 참사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출발하여 아일랜드 섀넌 공항(Shannon Airport)에서 급유를 마치고 뉴욕으로 향하던 KLM 네덜란드 항공(KLM Royal Dutch Airlines) 633편 록히드 L-1049 슈퍼 콘스텔레이션(Lockheed L-1049 Super Constellation) 여객기가 이륙 직후 섀넌강(River Shannon) 하구 갯벌에 추락하였다.
- 기장 아드리안 피르호프(Adriaan Viruly, 1905~1986)의 조작 속에서 랜딩 기어가 너무 일찍 접히며 양력을 잃은 데다 야간의 짙은 어둠 속에서 진흙 갯벌에 불시착하였으며, 유출된 항공유의 치명적인 독성 유증기와 밀물로 인해 탑승자 56명 중 28명이 목숨을 잃었다.
- 이 참사는 초기 대서양 횡단 상업 항공의 비행 안전 규정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기체 불시착 시 연료 탱크 격벽의 구조적 안전성과 공항 비상 수색 구조대의 신속한 해상 접근 매뉴얼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도록 만들었다.
[1956년 9월 5일] 제1대 서울특별시의회 역사적 최초 개회
- 1956년 8월 13일 전국 시·읍·면의원 선거를 통해 주민 직선으로 선출된 47명의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서울 태평로 의사당에서 제1대 서울특별시의회(Seoul Metropolitan Council) 개원식을 열고 첫 의정 활동을 시작하였다.
- 본회의를 통해 김진섭(Kim Jin-seop, 1909~1976) 의원이 초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전쟁의 참화를 딛고 수도 서울의 도시 재건과 지방 행정 감시를 위한 조례 제정 작업에 돌입하였다.
- 이는 대한민국 수도에서 지방자치제(Local Autonomy System)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제도적 실체를 갖추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 순간이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30년간 강제 중단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957년 9월 5일] 쿠바 시엔푸에고스 해군 기지 봉기와 바티스타 정권의 공습
- 쿠바 남부 항구 도시 시엔푸에고스(Cienfuegos)의 카치모 해군 기지에서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1901~1973)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디오니시오 산 로만(Dionisio San Román, 1928~1957) 중위 휘하의 청년 해군 장교들이 피델 카스트로의 7월 26일 운동(26th of July Movement) 대원들과 합세해 전격 무장 봉기하였다.
- 반군들은 도심의 경찰서와 관공서를 장악하고 시민들에게 무기를 분배하며 항전을 펼쳤으나, 바티스타 정부가 급파한 F-47 선더볼트 전투기의 무차별 도심 폭격과 정예 육군 보병 사단의 포위 공격에 밀려 궤멸당하였다.
- 잔혹한 공습과 반군 수백 명에 대한 즉결 처형은 온건파 군부와 중산층마저 바티스타 정권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으며, 쿠바 혁명(Cuban Revolution)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급격히 결집시켜 반독재 무장 투쟁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960년 9월 5일]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세네갈 초대 대통령 당선
- 프랑스로부터 완전 독립을 선언한 직후 말리 연방(Mali Federation)에서 탈퇴한 세네갈 공화국(Republic of Senegal) 의회에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저명한 시인이자 정치 사상가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Léopold Sédar Senghor, 1906~2001)가 만장일치로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 상고르는 에메 세제르(Aimé Césaire, 1913~2008)와 함께 프랑스 식민지 시절 흑인 고유의 문화적 자긍심과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문학·철학 운동인 '네그리튀드(Négritude, 흑인성)'를 주창한 세계적 문호였다.
- 그는 20년간 재임하며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들이 흔히 겪던 유혈 군사 쿠데타나 독재를 피하고 안정적인 다당제 헌정 질서와 교육 복지를 확립하였으며, 1980년 평화적으로 후임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모범적 선례를 남겼다.
[1960년 9월 5일] 카시우스 클레이(무하마드 알리) 로마 올림픽 금메달 획득
- 이탈리아 로마 팔라체토 델로 스포르트(Palazzetto dello Sport)에서 열린 1960 로마 올림픽(1960 Summer Olympics) 복싱 라이트헤비급 결승전에서 18세의 미국 대표 카시우스 클레이(훗날 무하마드 알리, Muhammad Ali / Cassius Clay, 1942~2016)가 폴란드의 백전노장 즈비그니에프 피에트시코프스키(Zbigniew Pietrzykowski, 1934~2014)를 심판 전원일치 판정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클레이는 가드를 내린 채 독창적인 스텝과 번개 같은 스피드로 상대의 펀치를 피하는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결승전 3라운드 내내 상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 이 올림픽 우승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복싱 철학을 지닌 전설적인 헤비급 챔피언의 탄생을 전 세계에 알린 서막이었으며, 훗날 흑인 민권 운동과 반전 평화주의를 상징하는 20세기 스포츠 영웅의 출발점이 되었다.
1961-1970년 주요 사건
[1968년 9월 5일] 카라라 아나키스트 대회 폐막과 국제아나키스트연맹 창설
-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전통적 자유주의 저항 거점 도시 카라라(Carrara)에서 8월 31일부터 열린 국제 아나키스트 대회(Congress of Carrara)가 엿새간의 일정을 마치고 공식 폐막하였다.
-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May 68)의 반체제 열기 속에서 소집된 이 회의에는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마르조키(Umberto Marzocchi, 1900~1979)와 프랑스의 다니엘 콘벤디트(Daniel Cohn-Bendit, 1945~)를 비롯하여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망명자, 불가리아 등 각국의 활동가들이 대거 집결하였다.
- 참가자들은 국가 권력과 자본주의 체제는 물론 소비에트식 관료주의를 배격하고, 국경을 넘는 반권위주의적 노동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국제아나키스트연맹(International of Anarchist Federations, IFA)을 공식 결성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1969년 9월 5일] 미라이 학살 책임자 윌리엄 캘리 중위 공식 기소
- 미국 조지아주 포트 베닝(Fort Benning) 군사법원에서 육군 범죄수사국(CID)이 베트남 전쟁 민간인 집단 학살의 주동자인 육군 소총 소대장 윌리엄 캘리(William Calley, 1943~2024) 중위를 공식 기소하였다.
- 캘리 중위는 1968년 3월 16일 남베트남 꽝응아이성 선띤현 미라이(Mỹ Lai) 마을에서 제23보병사단(아메리칼 사단) C중대 병력을 이끌고 비무장 부녀자와 노인, 영유아를 포함한 베트남 민간인 109명을 집단 사살한 6건의 사전 계획된 살인 혐의를 받았다.
- 군 당국은 전역을 하루 앞둔 캘리 중위를 전격 군법회의에 회부하였으며, 이후 참전 군인 론 라이든아워(Ron Ridenhour, 1946~1998)의 고발 편지와 탐사보도 언론인 시모어 허시(Seymour Hersh, 1937~ )의 폭로가 이어지며 전 세계적인 반전 평화 여론을 폭발시키는 분수령이 되었다.
[1970년 9월 5일] 미군 지상군의 마지막 대규모 공세 '제퍼슨 글렌 작전' 개시
- 베트남 전쟁(Vietnam War) 중 미 육군 제101공수사단(101st Airborne Division)과 남베트남 육군(ARVN) 제1보병사단이 남베트남 트어티엔후에(Thừa Thiên–Huế)성 산악 지대에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을 저지하기 위한 '제퍼슨 글렌 작전(Operation Jefferson Glenn)'에 돌입하였다.
- 토머스 M. 타플리(Thomas M. Tarpley, 1922~1986) 소장의 지휘 아래 연합군은 아샤우 계곡(A Shau Valley)과 구수도 후에(Huế) 주변의 적 거점 통로를 수색·차단하고 군사 시설을 파괴하여 공산군의 대규모 공세 기도를 분쇄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 13개월간 전개된 이 작전은 미군 정규 지상 전투 부대가 베트남 전선에서 직접 교전을 치른 마지막 대규모 군사 작전이었으며, 이후 미국은 지상전 통제권을 남베트남군에 전면 이양하고 철수를 가속화하는 베트남화(Vietnamization) 정책을 매듭지었다.
1971-1980년 주요 사건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 테러 참사 발발과 이스라엘 선수단 피랍
- 서독에서 열린 1972 뮌헨 올림픽(1972 Summer Olympics) 기간 중 팔레스타인 무장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 소속 테러범 8명이 올림픽 선수촌 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기습 난입하였다.
- 범인들은 현장에서 저항하던 레슬링 코치 모셰 바인베르크(Moshe Weinberg, 1939~1972)와 역도 선수 요세프 로마노(Yossef Romano, 1940~1972)를 총격 살해하고 9명의 선수를 인질로 붙잡은 뒤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수형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 서독 당국이 퓌르스텐펠트브루크(Fürstenfeldbruck) 공군기지에서 시도한 구출 작전이 치명적인 정보 부족과 저격 실패로 좌절되면서 인질 9명 전원과 서독 경찰관 1명이 사망하였고, 이 참사는 각국이 GSG-9 등 전문 대테러 특수부대를 창설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1975년 9월 5일] 맨슨 패밀리 리넷 프롬의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 암살 미수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Sacramento) 주 의사당 인근 공원에서 사이비 교주 찰스 맨슨(Charles Manson, 1934~2017)을 광신하던 리넷 프롬(Lynette Fromme, 1948~)이 제38대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Gerald Ford, 1913~2006)를 향해 권총 암살을 시도하였다.
- 붉은 수도복 차림으로 군중 사이에 대기하던 프롬은 군중과 악수를 나누며 지나가던 포드 대통령의 복부를 겨누고 45구경 반자동 권총 방아쇠를 당겼으나,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 특수요원 래리 부엔도프(Larry Buendorf, 1937~)가 전격 몸을 날려 총열을 낚아채며 제압하였다.
- 당시 권총 탄창에는 실탄 4발이 장전되어 있었으나 다행히 약실이 비어 있어 탄환이 격발되지 않았으며, 프롬은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미국 대통령 경호국의 근접 거리 안전 구역 통제 프로토콜이 전면 강화되었다.
[1977년 9월 5일] 무인 성간 탐사선 보이저 1호의 역사적 발사
-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 41번 발사대에서 타이탄 IIIE 센타우르(Titan IIIE/Centaur) 로켓을 통해 태양계 외행성 탐사선 보이저 1호(Voyager 1)를 발사하였다.
- 앞서 발사된 자매선 보이저 2호보다 보름 늦게 출발하였으나 더 빠른 중력 도움(스윙바이) 궤도를 채택한 보이저 1호는 목성과 토성을 차례로 근접 비행하며 활화산 위성 이오(Io)와 짙은 대기를 지닌 타이탄(Titan)의 상세 관측 자료를 전송하였다.
-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의 주도로 인류 문명의 소리와 이미지를 담은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를 탑재한 보이저 1호는 2012년 8월 인류 피조물 최초로 태양권 덮개를 벗어나 미지의 성간 공간(Interstellar space)에 진입하였다.
[1978년 9월 5일] 중동 평화를 위한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개막
- 미국 메릴랜드주 캐톡틴 산맥에 위치한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에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 1924~)의 주재로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1918~1981)와 이스라엘 총리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 1913~1992)의 비밀 평화회담이 개막하였다.
- 언론과 외부의 시선이 차단된 상태에서 개막한 이 정상회담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극심한 적대 관계를 이어오던 양국이 마주 앉아 시나이반도의 반환 조건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립 방안을 두고 12일간의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 카터 대통령의 끈질긴 셔틀 중재 끝에 9월 17일 체결된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은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으로 이어져 아랍과 이스라엘이 맺은 역사상 최초의 공식 상호 평화 체제를 구축하였다.
[1980년 9월 5일] 당시 세계 최장 도로 터널 '고트하르트 도로 터널' 개통
- 스위스 알프스산맥의 생고타르(Saint-Gotthard) 대산괴를 관통하여 북부 우리(Uri)주의 괴셰넨(Göschenen)과 남부 티치노(Ticino)주의 아이롤로(Airolo)를 잇는 고트하르트 도로 터널(Gotthard Road Tunnel)이 정식 개통되었다.
- 총연장 16.9km에 달하는 이 터널은 10년간의 험난한 암반 굴착 공사 끝에 완공되었으며, 개통 당시 프랑스-이탈리아의 몽블랑 터널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 터널로 기록되었다.
- 겨울철 폭설로 통행이 차단되던 험준한 알프스 산길 대신 연중무휴 양방향 육상 통행을 실현함으로써 스위스 A2 고속도로의 핵심 간선망을 완성하고 서유럽과 지중해 남유럽을 연결하는 물류 혁신을 이끌었다.
[1980년 9월 5일] 문교부, 대학교육 개혁 방안으로 대학 졸업정원제 확정
-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주도한 '7·30 교육개혁 조치'의 후속 절차로 대한민국 문교부(Ministry of Education)는 입학정원을 대폭 늘리고 졸업 인원을 강제 제한하는 '대학 졸업정원제(Graduation Quota System)' 세부 시행 방안을 공식 확정하였다.
- 이 제도에 따라 전국 대학은 입학 정원을 최대 30%까지 증원 선발할 수 있게 되었으나, 재학 중 엄격한 학사 평가를 거쳐 정원의 30%를 의무적으로 탈락시켜야만 졸업장을 수여할 수 있도록 규정되었다.
- 과열 과외 방지와 면학 분위기 조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 참여를 억제하고 학내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변질되어 사회적 갈등을 낳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전면 폐지되었다.
1981-1990년 주요 사건
[1981년 9월 5일] 폴란드 자유노조(솔리다르노시치), 제1차 전국대표대회 개최
- 폴란드 그단스크(Gdańsk) 올리비아 스포츠홀에서 레흐 바웬사(Lech Wałęsa, 1943~ )가 이끄는 동유럽 사회주의권(Eastern Bloc) 최초의 독립 자치 노동조합 '솔리다르노시치(Solidarność)'의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성대하게 개막하였다.
- 전국 1천만 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대표하여 모인 892명의 대의원은 공산당의 독재를 규탄하고 경제 개혁, 언론의 자유, 노동자의 자주 경영을 요구하는 급진적 강령을 채택하였다.
- 특히 이 대회에서는 다른 공산권 국가의 노동자들에게도 자유노조 설립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하여 소련을 극도로 긴장시켰으며, 훗날 1989년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의 연쇄 붕괴를 촉발한 역사적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1981년 9월 5일] 영국 그린햄 커먼 여성 평화 캠프의 결성
- 영국의 여성 평화운동가 앤 페티트(Ann Pettitt, 1948~ )가 이끄는 단체 '지구의 생명을 위한 여성들(Women for Life on Earth)' 소속 36명의 여성들이 웨일스 카디프에서 버크셔주 그린햄 커먼 공군기지(RAF Greenham Common)까지 190km를 행진해 도착하였다.
- 참가자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이중결정에 따라 기지 내에 핵탄두를 장착한 미국의 BGM-109G 그리폰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이 배치되는 것에 반대하며 기지 정문 울타리에 천막을 치고 비폭력 장기 농성에 돌입하였다.
- 이 캠프는 전 세계 수천 명의 여성이 자발적으로 합류하는 '그린햄 커먼 여성 평화 캠프(Greenham Common Women's Peace Camp)'로 성장하였으며, 2000년 철거될 때까지 19년간 냉전기 반핵 평화 운동과 에코페미니즘의 세계적 상징으로 존속하였다.
[1984년 9월 5일]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처녀비행(STS-41-D) 성공 및 착륙
-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세 번째 실전 우주왕복선인 디스커버리호(Space Shuttle Discovery, OV-103)가 6일간의 첫 우주 임무(STS-41-D)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기지에 안전하게 착륙하였다.
- 헨리 하츠필드(Henry Hartsfield, 1933~2014) 선장을 비롯한 6명의 승무원은 궤도 체류 중 상업 통신위성 3기(SBS-4, Syncom IV-2, Telstar 3-C)를 궤도에 배치하고, 31m에 달하는 대형 접이식 태양전지판(OAST-1) 전개 실험을 완수하였다.
- 발사 직전 세 차례의 카운트다운 중단 위기를 극복하고 첫 임무를 완수한 디스커버리호는 이후 허블 우주망원경 발사와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 등 총 39회의 우주 비행을 무사히 수행한 최다 비행 셔틀로 자리매김하였다.
[1984년 9월 5일] 서호주주의 사형제 완전 폐지와 호주 전역 사형 철폐
- 오스트레일리아 서호주주(Western Australia) 의회가 가결한 '사형 폐지 법률 수정안(Acts Amendment Abolition of Capital Punishment Act 1984)'이 주 총독의 공식 재가를 얻어 발효되면서 주 형법상 남아 있던 모든 사형 조항이 폐지되었다.
- 서호주주는 1964년 연쇄 살인범 에릭 에드가 쿡(Eric Edgar Cooke, 1931~1964)의 교수형 집행 이후 실질적인 사형 집행을 중단해 왔으나, 형법전에 반역죄와 중대 해적죄에 대한 법정형으로 사형이 명문화되어 있었다.
- 이 조치로 서호주주는 호주 6개 주 중 가장 마지막으로 사형 제도를 공식 철폐한 관할 구역이 되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전체가 잔혹한 극형 제도를 전면 소멸시키고 보편적 인권 기준을 완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6년 9월 5일] 파키스탄 카라치 공항 팬암 항공 73편 피랍 참사
- 인도 뭄바이를 출발해 파키스탄 카라치(Karachi)와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려던 팬암 항공(Pan Am) 73편 보잉 747 여객기가 카라치 진나 국제공항 계류장에서 아부 니달 조직(Abu Nidal Organization) 소속 테러범 4명에게 장악당하였다.
- 공항 보안요원으로 위장 침투한 테러범들은 기내를 점거하고 미국 시민 승객들을 표적 처형하려 했으나, 22세의 수석 승무원 니르자 바놋(Neerja Bhanot, 1963~1986)이 기장의 신속한 비상 탈출을 도와 항공기 강제 이륙을 막고 승객들의 여권을 은닉하였다.
- 16시간 대치 끝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자 테러범들이 무차별 난사를 시작하였고 바놋 승무원을 비롯한 승객 20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부상을 당하였으며, 승객들을 지키다 희생된 바놋은 인도 최고 무공훈장인 아쇼카 차크라(Ashoka Chakra)를 수훈하였다.
[1986년 9월 5일] 소비에트 연방, 비밀 핵실험 프로그램에 따른 대규모 지하 핵폭발 실시
- 냉전기 핵무기 경쟁이 지속되던 가운데 소비에트 연방(Soviet Union) 정부가 지하 핵실험 부지에서 고위력 탄두의 성능 검증 및 지하자원 개발 연구를 목적으로 대규모 지하 핵폭발(Underground Nuclear Explosion)을 단행하였다.
- 과거 일부 언론과 자료에서 '발트해 연안 핵폭발'로 잘못 전해지기도 하였으나, 팩트체크에 따르면 이는 카스피해 북부 아스트라한 가스전 개발을 위한 평화적 핵폭발(PNE) 또는 주요 핵실험장에서의 지하 핵실험이 북유럽 관측소의 지진파 감지로 혼동되어 전파된 것이었다.
- 이 핵실험은 같은 해 4월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에 대한 유럽 전역의 공포가 극에 달해 있던 시점에 감행되어 국제적인 외교 비판과 반핵 평화 운동을 크게 고조시켰다.
[1987년 9월 5일] 대한민국 방송심의위원회, 금지가요 500여 곡 방송 해제 조치
- 6·29 민주화 선언(June 29 Declaration) 이후 조성된 사회적 민주화 조치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방송심의위원회(Broadcasting Deliberation Committee)는 군사정권 시절 억압되었던 대중가요 500여 곡에 대해 방송 금지 조치를 일제히 해제하였다.
- 해금된 곡 중에는 저항 정신과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여 금지되었던 가수 김민기(Kim Min-gi, 1951~2024)의 '아침이슬', 한대수(Han Dae-soo, 1948~ )의 '물 좀 주소', 송창식(Song Chang-sik, 1947~ )의 '고래사냥' 등 다수의 명곡이 포함되었다.
- 이 조치는 유신 체제 이래 국가 권력이 대중음악과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강제로 검열·통제하던 암흑기를 종식시키고, 한국 현대 대중문화의 르네상스를 여는 결정적인 법적·제도적 계기가 되었다.
[1989년 9월 5일] 조훈현 9단, 제1회 응씨배 세계 프로 바둑 선수권 대회 우승
- 대한민국 바둑의 국수(國手) 조훈현(Cho Hun-hyun, 1953~) 9단이 싱가포르에서 거행된 제1회 잉씨배(Ing Cup) 세계 프로 바둑 선수권 대회 결승 5번기 제5국에서 중국의 최고수 녜웨이핑(Nie Weiping, 1952~) 9단을 꺾고 종합 전적 3 대 2로 정상에 올랐다.
- 타이완의 금융 재벌 잉창치(Ing Chang-ki, 1917~1997)가 창설한 이 대회는 4년마다 열리는 '바둑 올림픽'으로 불렸으며, 당시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일본과 중국의 정상급 기사들을 제치고 무명에 가까웠던 한국 바둑이 거둔 기적 같은 쾌거였다.
- 조훈현의 우승은 변방에 머물던 한국 바둑을 단숨에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시켰으며, 김포공항에서 서울 시내까지 카퍼레이드가 열릴 정도로 범국민적인 바둑 붐을 일으켜 이창호(Lee Chang-ho, 1975~)로 이어지는 바둑 황금기를 개막시켰다.
[1990년 9월 5일] 스리랑카 육군의 동부 대학교 민간인 집단 연행 및 학살
- 스리랑카 내전(Sri Lankan Civil War) 발발 중 동부주 바티칼로아(Batticaloa)의 동부 대학교(Eastern University) 반타루물라이 캠퍼스 난민 수용소에 피난해 있던 타밀족 민간인들이 스리랑카 육군 병력에 의해 대거 강제 연행되었다.
- 분쟁 지역을 피해 대학교 시설에 은신하고 있던 무고한 주민과 청년 158명이 트럭에 강제로 실려 인근 군 기지로 압송된 뒤 비밀리에 살해당하는 참극이 발생하였다.
- 현장 구호 단체와 대학 관계자들의 즉각적인 증언과 석방 호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들은 전원 실종 처리되었으며, 이 사건은 스리랑카 공권력이 비무장 타밀족 소수 민족을 표적으로 자행한 대표적인 전쟁 범죄로 규탄받았다.
[1990년 9월 5일]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서울 본회의 역사적 개최
-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의 행정부 수반이 직접 마주 앉은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Inter-Korean Prime Ministerial Talks) 본회의가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공식 개최되었다.
- 남측 수석대표인 강영훈(Kang Young-hoon, 1922~2016) 국무총리와 북측 단장인 연형묵(Yon Hyong-muk, 1931~2005) 정무원 총리가 판문점을 거쳐 서울에서 공식 회담을 가졌으며, 군사적 긴장 완화와 다방면의 교류·협력 방안을 두고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 비록 당장의 핵심 쟁점에서는 현격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으나 최고위급 당국자 간 대화 채널을 공식 제도화하였으며, 이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결정적 주춧돌이 되었다.
[1990년 9월 5일] 대한민국-오스트레일리아 범죄인인도조약 체결
- 대한민국 정부와 오스트레일리아(Commonwealth of Australia) 정부가 호주 캔버라에서 양국 간 형사 사법 공조 강화를 위한 범죄인인도조약(Extradition Treaty)을 공식 체결하였다.
- 최호중(Choi Ho-joong, 1930~2015) 외무부 장관과 마이클 더피(Michael Duffy, 1938~ ) 호주 법무부 장관이 서명한 이 조약은 자국 또는 상대국에서 1년 이상의 자유형에 처할 수 있는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인물의 상호 인도를 제도화하였다.
- 이 조약 체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초국가적 국제 범죄와 도피 사범에 대한 실질적인 사법 처벌 공조 체계가 확립되었으며, 대한민국의 국제 형사 사법 외교 네트워크가 한층 고도화되는 발판이 되었다.
1991-2000년 주요 사건
[1991년 9월 5일] 환경처,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확정 공포
-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공해 문제가 국가적 현안으로 대두되자 대한민국 환경처(Ministry of Environment)는 대기오염 물질 배출을 근본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대기환경보전법(Clean Air Conservation Act) 시행규칙'을 최종 확정하여 공포하였다.
- 권이혁(Kwon E-hyock, 1923~2020) 환경처 장관의 지휘하에 마련된 이 규칙은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과 아황산가스 등의 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Emission Standards)을 대폭 강화하고, 무연휘발유 보급 확대와 자동차 배출가스 검사를 의무화하였다.
- 이 조치는 개발 위주의 국가 경제 정책 기조 속에서 맑은 공기와 생태계 보전을 중시하는 환경 복지 개념을 실질적인 행정 집행 단계로 끌어올린 환경 행정사의 획기적 전환점이었다.
[1991년 9월 5일] 국제노동기구(ILO) 제169호 원주민 및 부족민 협약 발효
-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가 1989년 제76차 총회에서 채택한 '독립국가의 원주민 및 부족민에 관한 협약(제169호 협약)'이 노르웨이와 멕시코의 공식 비준을 거쳐 국제법적 효력을 발생시켰다.
- 이 협약은 기존 1957년 제107호 협약의 동화주의적 접근을 공식 폐기하고, 원주민 부족의 독자적인 정체성과 사회·문화적 관습의 존속 권리를 천명하며 조상 대대로 살아온 전통 토지 및 천연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법적으로 보장하였다.
- 또한 개발 사업 진행 시 원주민들의 자유롭고 사전 고지된 동의(FPIC)를 거치도록 규정함으로써, 전 세계 원주민과 소수 부족의 기본 인권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하고 구속력 있는 국제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1996년 9월 5일] 3등급 허리케인 프랜의 미 동부 해안 상륙과 참사
- 대서양에서 발생한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 허리케인 프랜(Hurricane Fran)이 최고 시속 185km(115마일)의 강풍을 동반한 사피어-심프슨 3등급 허리케인의 위력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케이프 피어(Cape Fear) 인근에 상륙하였다.
- 중심 기압 954hPa의 세력을 유지하며 내륙으로 진입한 프랜은 광범위한 폭풍 해일과 집중호우를 동반하여 주도 롤리(Raleigh)와 버지니아주 일대의 산림을 쓰러뜨리고 광범위한 전력망 단절과 홍수를 일으켰다.
- 이 재해로 인해 동부 해안 일대에서 27명이 목숨을 잃고 3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미국 연방비상관리국(FEMA)의 재난 대비 프로토콜과 광역 수해 복구 지원 체계가 전면 점검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 9월 5일] 투발루, 국제연합(UN) 제189번째 회원국 가입
- 남태평양의 작은 산호초 군도 국가인 투발루(Tuvalu)가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55차 유엔총회 개막일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를 거쳐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제189번째 정식 회원국으로 승인되었다.
- 이오나타나 이오나타나(Ionatana Ionatana, 1938~2000) 총리가 이끈 투발루 정부는 국가의 가장 큰 재정 자산이었던 국가 최상위 인터넷 도메인 '.tv'의 판매 수익을 바탕으로 유엔 가입 분담금을 충당하여 국제 외교 무대에 정식 등장하였다.
- 투발루의 유엔 가입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Climate Change)와 해수면 상승(Sea Level Rise)으로 국토 침몰 위기에 직면한 전 세계 군소 도서국가들의 절박한 생존 위기를 국제 사회의 최우선 의제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1세기(2001-2100년) 주요 사건
2001-2010년 주요 사건
[2005년 9월 5일] 인도네시아 만달라 항공 091편 주택가 추락 참사
-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메단의 폴로니아 국제공항(Polonia International Airport)을 이륙해 자카르타로 향하던 만달라 항공(Mandala Airlines) 091편 보잉 737-200 여객기가 이륙 직후 인근 번화가 주택가로 추락하였다.
- 항공기 양력을 확보하는 플랩과 슬랫이 제대로 전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륙을 강행하다 실속을 일으켰으며, 공항 담장을 뚫고 활주로 인근 도로변 가옥과 차량들을 덮치며 대형 폭발 화재로 이어졌다.
- 탑승자 117명 중 승객과 승무원 100명이 사망하고 지상에 있던 민간인 49명이 목숨을 잃어 총 14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탑승자 중 리잘 누르딘(Rizal Nurdin, 1953~2005) 북수마트라 주지사가 순직하는 비극을 낳았다.
[2006년 9월 5일] 파키스탄 정부와 부족 민병대 간 와지리스탄 협정 체결
- 파키스탄 북서부 국경 지대의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미란샤(Miranshah)에서 페르베즈 무샤라프(Pervez Musharraf, 1943~2023) 정부와 북와지리스탄의 탈레반 부족 지도자들이 '와지리스탄 협정(Waziristan Accord)'에 공식 서명하였다.
- 협정에 따라 현지 부족 반군은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는 테러 공격을 중단하고 외국인 알카에다 조직원을 추방하기로 합의하였으며, 정부군은 군사 작전을 중단하고 검문소를 철거하며 군사 작전 피해를 보상하기로 약속하였다.
- 그러나 무장 단체의 은신처를 용인했다는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였고, 반군들이 협정을 악용해 국경 지대에서 재무장과 테러 공세를 재개하면서 수개월 만에 협정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2007년 9월 5일] 고산 연구원, 대한민국 최초 탑승 우주비행사 공식 선발
- 과학기술부는 3만 6천 명이 넘는 국민적 경쟁을 뚫고 러시아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Gagarin Cosmonaut Training Center)에서 훈련을 받던 최종 후보 중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 출신의 고산(Ko San, 1976~ )을 한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공식 선발하였다.
- 정부는 다면 평가와 러시아 연방우주국(Roscosmos)의 비행 적합 판정을 종합하여 고산을 정규 탑승 우주인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이소연(Yi So-yeon, 1978~ ) 연구원을 예비 우주인으로 발표하였다.
- 비록 2008년 3월 훈련 규정 준수 문제로 인하여 최종 탑승자가 이소연으로 전격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이 선발은 대한민국이 유인 우주 탐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기초 기술과 우주 과학 인프라를 축적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2009년 9월 5일] 5인조 다국적 걸그룹 f(x),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통해 공식 데뷔
- 에스엠 엔터테인먼트(SM Entertainment)가 기획한 5인조 다국적 다재다능 걸그룹 에프엑스(f(x))가 MBC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에서 데뷔 디지털 싱글 '라차타(LA chA TA)'의 무대를 선보이며 가요계에 공식 데뷔하였다.
- 팀은 리더 빅토리아(Victoria, 1987~ )를 비롯하여 엠버(Amber, 1992~ ), 루나(Luna, 1993~ ), 설리(Sulli, 1994~2019), 크리스탈(Krystal, 1994~ )로 구성되었으며, 수학 공식 기호 'f(x)'처럼 멤버 각자의 다채로운 재능과 매력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활동을 표방하였다.
- f(x)는 전형적인 걸그룹의 문법에서 벗어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일렉트로 팝 장르를 개척하였으며, 세련된 아트워크와 현대적인 퍼포먼스로 K-팝 음악의 예술적 지평을 한 단계 넓혔다는 평론계의 높은 찬사를 받았다.
2011-2020년 주요 사건
[2012년 9월 5일] 튀르키예 아피온 군 탄약고 폭발 사고
- 튀르키예 서부 아피온카라히사르(Afyonkarahisar)에 주둔한 터키 육군 제500 병참탄약대대 무기고에서 야간 군수품 점검 및 수류탄 재배치 작업 도중 원인 미상의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 수류탄과 중화기 탄약 수천 발이 연쇄 유폭을 일으키며 견고한 무기고 콘크리트 건물이 산산조각 났고 파편이 수 킬로미터 밖 민가까지 날아들며 화재가 번졌다.
-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터키군 부사관과 사병 25명이 전원 산화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참사 이후 군 당국의 취약한 탄약 취급 절차와 안전 불감증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게 일어 무기고 안전 규정이 전면 재정비되었다.
[2014년 9월 5일] 우크라이나 정부-친러시아 반군, 제1차 민스크 협정 서명
-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쟁(War in Donbas)의 유혈 사태를 종식하기 위해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우크라이나 정부, 러시아, 돈바스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하에 제1차 민스크 협정(Minsk Protocol)에 서명하였다.
- 페트로 포로셴코(Petro Poroshenko, 1965~ )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1952~ ) 러시아 대통령의 사전 합의를 바탕으로 체결된 이 의정서는 즉각적인 양측 휴전, 중화기 철수, 포로 교환 및 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에 대한 특수 자치 지위 부여를 명시하였다.
- 그러나 협정 체결 직후에도 전선에서는 포격전과 국지전이 끊이지 않아 영구적 평화 정착에 실패하였고, 결국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동유럽 안보 위기의 전초전이 되었다.
[2014년 9월 5일]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 선임
- 대한축구협회(KFA)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이후 물러난 홍명보(Hong Myung-bo, 1969~) 감독의 후임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설적 선수 출신인 울리 슈틸리케(Uli Stielike, 1954~)를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하였다.
-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초기 수비 조직력을 가다듬으며 2015년 AFC 호주 아시안컵(2015 AFC Asian Cup)에서 27년 만의 결승 진출과 준우승을 견인하여 '갓틸리케'라는 찬사와 함께 전폭적인 국민적 신뢰를 얻었다.
- 그러나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과정에서 단조로운 전술과 경기력 난조, 불화설을 노출하며 2017년 6월 카타르전 패배 직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으며, 한국 축구사에서 명암이 극명하게 교차한 외국인 지도자로 기록되었다.
[2019년 9월 7일] 제13호 초강력 태풍 '링링', 한반도 강타 및 서해안 통과
- 9월 5일 오키나와 해상을 지나 한반도를 향해 시속 150km가 넘는 역대급 강풍을 동반하고 북상한 제13호 태풍 링링(Lingling)이 9월 7일 서해안을 따라 북진하여 황해도 옹진반도에 공식 상륙하였다.
- 일부 초기 보도에서는 전라도 상륙으로 와전되기도 하였으나 팩트체크에 따르면 태풍은 전라도 내륙에 상륙하지 않고 서해 바다를 관통하여 북상하였으며, 반경 내에 들어간 흑산도에서 역대 5위 기록인 순간 최대풍속 초속 54.4m의 기록적인 폭풍을 쏟아부어 전라도와 서해안 전역에 극심한 시설물 파손과 정전 피해를 입혔다.
- 이 태풍으로 한반도 전역에서 4명이 숨지고 14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4천여 건이 넘는 시설물 피해가 발생하는 등,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상 중에도 세력을 잃지 않는 슈퍼 태풍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경고하였다.
[2020년 9월 5일] 방탄소년단(BTS), 'Dynamite'로 미국 빌보드 핫 100 1위 달성 (차트 기준일)
- 대한민국의 7인조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미국 빌보드(Billboard)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Hot 100)'의 2020년 9월 5일 자 공식 차트에서 대한민국 가수 역사상 최초로 대망의 1위에 올랐다.
- RM(Kim Nam-joon, 1994~ )을 비롯한 7명의 멤버가 발표한 디스코 팝 장르의 이 곡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친 전 세계인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발매 첫 주 차트 진입과 동시에 1위로 직행하는 역대 43번째 '핫 샷 데뷔(Hot Shot Debut)'를 기록하였다.
- 이는 1963년 일본의 사카모토 큐 이후 아시아 가수로서 무려 57년 만에 달성한 빌보드 싱글 차트 제패였으며, 영미권 백인 중심의 팝 음악 시장에서 K-팝이 주류 문화의 정점에 도달했음을 세계만방에 입증한 찬란한 문화사적 쾌거였다.
2021-2030년 주요 사건
[2021년 9월 5일] 기니 군사 쿠데타 발발과 알파 콩데 대통령 억류
- 서아프리카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Conakry)에서 특수부대 사령관 마마디 둠부야(Mamady Doumbouya, 1980~) 대령이 이끄는 군 병력이 대통령궁을 무력 진입하여 83세의 알파 콩데(Alpha Condé, 1938~) 대통령을 체포하였다.
-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의 둠부야 대령은 성명을 발표해 만연한 부패와 경제 파탄, 헌법을 개정해 3선 연임을 강행한 콩데 대통령의 독재를 규탄하며 헌법 효력 정지와 내각 및 국회 해산을 선언하였다.
- 아프리카연합(AU)의 강력한 회원국 자격 정지 제재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국가화해발전위원회(CNRD)를 구성해 정권을 완벽히 장악하였으며, 둠부야가 과도 정부 대통령에 취임하며 기니는 군정 체제로 전환되었다.
[2022년 9월 5일] 리즈 트러스의 영국 보수당 대표 당선 확정
-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1964~ ) 총리의 사임으로 치러진 영국 보수당(Conservative Party) 당대표 경선 결과 외무장관 리즈 트러스(Liz Truss, 1975~ )가 전 재무장관 리시 수낵(Rishi Sunak, 1980~ )을 꺾고 신임 대표로 당선되었다.
- 트러스는 전당대회 당원 투표에서 57.4%(81,326표)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42.6%(60,399표)를 얻은 수낵 후보를 누르고 당선을 확정지으며 마거릿 대처와 테리사 메이에 이어 영국의 세 번째 여성 총리 자리를 확정지었다.
- 이튿날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서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2022) 여왕의 공식 임명을 받아 취임한 트러스는 공격적인 감세 정책을 추진하다 극심한 파운드화 폭락과 금융 혼란을 초래하며 45일 만에 단명 사임하는 정치적 굴곡을 겪었다.
[2022년 9월 5일] 중국 쓰촨성 루딩현 규모 6.8 강진 참사
- 중국 쓰촨성(Sichuan Province) 간즈 티베트족 자치주 루딩현(Luding County)에서 현지 시각 낮 12시 52분경 리히터 규모 6.8(진원 깊이 16km)의 강력한 내륙 천발 지진이 발생하였다.
- 다두허(Dadu River) 협곡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대규모 산사태와 낙석이 잇따라 도로와 가옥을 덮치고 전력과 통신망이 두절되었으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성도 청두(Chengdu)와 충칭(Chongqing) 시내 고층 건물까지 흔들리는 강력한 진동이 감지되었다.
- 이 지진으로 최소 93명이 숨지고 25명이 실종되었으며 400여 명이 부상을 입었고,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이 대거 투입되어 험난한 고립 산간 지대에서 긴급 수색 구조 작전을 전개하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