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401-500년) 주요 사건
[476년 9월 4일]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폐위
- 게르만족 용병 지휘관인 오도아케르(Odoacer, 433년경~493)가 제국의 수도 라벤나(Ravenna)를 장악하고 서로마 제국(Western Roman Empire)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 460년경~507년 이후)를 공식 폐위한 뒤 스스로 '이탈리아의 왕(Rex Italiae)'을 선포하였다.
- 오도아케르는 서로마 황제의 제위 상징물인 황실 휘장을 동로마 제국(Eastern Roman Empire)의 황제 제논(Zeno, 425년경~491)에게 보내며 단일 로마 제국의 형식적 통일을 인정받고자 서방 황제 자리를 공석으로 유지하였다.
- 이 사건은 약 천 년간 지속되었던 고대 로마 제국의 서방 지배 체제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계기이자, 유럽 역사학계에서 고대(Ancient Era)의 끝과 중세(Middle Ages)의 시작을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다.
7세기(601-700년) 주요 사건
[626년 9월 4일] 당 태종 이세민의 즉위와 정관의 치 시작
- 당나라의 창건자인 당 고조(Emperor Gaozu of Tang) 이연(Li Yuan, 566~635)이 제위에서 물러남에 따라, 그의 차남이자 탁월한 군사 지도자였던 당 태종(Emperor Taizong of Tang) 이세민(Li Shimin, 598~649)이 황제 위에 공식 즉위하였다.
- 이번 즉위는 황태자 이건성(Li Jiancheng, 589~626) 일파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던 현무문의 변(Incident at Xuanwu Gate) 직후 거행된 권력 이양 절차였으며, 이세민은 즉위와 함께 연호를 정관(Zhenguan)으로 반포하였다.
- 이세민의 즉위는 3성 6부제 정비, 균전제(Equal-field system) 확립, 과거제 개선을 비롯해 동돌궐(Eastern Turkic Khaganate)을 복속시키는 군사적 성과로 이어지며 중국사 최고의 치세로 손꼽히는 '정관의 치(Reign of Zhenguan)'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10세기(901-1000년) 주요 사건
[929년 9월 4일] 렌첸 전투에서 작센 군대의 슬라브족 격퇴
- 동프랑크 왕국(Kingdom of East Francia) 소속의 작센 공작령(Duchy of Saxony) 연합군이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요충지인 렌첸(Lenzen) 요새 인근에서 슬라브족 연합군(Slavic forces)을 상대로 결정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 국왕 하인리히 1세(Henry I, 876~936)의 명령을 받은 베른하르트(Bernhard, 생몰년 미상)와 티트마르(Thietmar, 생몰년 미상) 백작 휘하의 기병 및 보병 부대는 렌첸 요새를 포위하고 있던 레다리족(Redarii)과 오보트리트족(Obotrites)의 군세를 기습 포위해 궤멸시켰다.
- 렌첸 전투(Battle of Lenzen)의 승리는 동프랑크 왕국이 엘베강(Elbe River) 동쪽 국경 지대의 안정을 확보하고, 훗날 신성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독일인들의 대규모 영토 팽창인 동방식민운동(Ostsiedlung)을 본격화하는 발판이 되었다.
13세기(1201-1300년) 주요 사건
[1260년 9월 4일] 몬타페르티 전투에서 시에나 기벨린파의 대승
- 토스카나(Tuscany) 지역 패권을 두고 시에나 공화국(Republic of Siena) 중심의 황제파 기벨린(Ghibellines) 연합군이 피렌체 공화국(Republic of Florence) 중심의 교황파 구엘프(Guelphs) 군대를 몬타페르티(Montaperti)에서 격파하였다.
- 시칠리아 국왕 만프레디(Manfred, 1232~1266)가 지원한 정예 독일 기병대와 망명 피렌체 귀족 파리나타 델리 우베르티(Farinata degli Uberti, 1212~1264)의 전술적 결단에 힘입어, 수적으로 열세였던 시에나 연합군이 피렌체 군대를 섬멸하였다.
- 이 전투의 결과로 피렌체의 구엘프 정권이 붕괴하고 기벨린 정권이 수립되었으며, 당시 벌어진 극심한 유혈 사태는 문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의 서사시 《신곡(Divine Comedy)》 지옥편에 생생히 묘사될 정도로 중세 이탈리아 정쟁사의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1282년 9월 4일] 아라곤의 페드로 3세, 시칠리아 국왕 즉위 선포
- 아라곤 왕국(Kingdom of Aragon)의 국왕 페드로 3세(Peter III of Aragon, 1239/1240~1285)가 팔레르모(Palermo) 대성당에서 시칠리아 귀족과 시민들의 추대를 받아 시칠리아 국왕 피에트로 1세(Pietro I of Sicily)로 공식 즉위하였다.
- 이번 즉위는 프랑스 앙주 가문의 압정에 저항하여 시칠리아 민중들이 봉기한 시칠리아의 만종(Sicilian Vespers) 직후 성사된 것으로,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사위였던 페드로 3세가 반란군의 공식 구원 요청을 받아들여 전격 상륙한 결과였다.
- 이 사건은 앙주 가문의 샤를 1세(Charles I of Anjou, 1226/1227~1285)를 시칠리아 섬에서 축출하여 왕국을 양분시켰으며, 아라곤 연합왕국(Crown of Aragon)이 서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유럽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15세기(1401-1500년) 주요 사건
[1479년 9월 4일] 알카소바스 조약 체결과 대서양 패권 분할
- 포르투갈의 알카소바스(Alcáçovas)에서 카스티야 왕국(Kingdom of Castile) 및 아라곤 왕국의 군주들과 포르투갈 국왕 아폰수 5세(Afonso V, 1432~1481) 및 왕세자 주앙 2세(John II of Portugal, 1455~1495) 사이에 역사적인 평화 협정이 조인되었다.
- 이 조약을 통해 4년간 이어졌던 카스티야 왕위 계승 전쟁(War of the Castilian Succession)이 종결되었으며, 이사벨 1세(Isabella I of Castile, 1451~1504)와 페르난도 2세(Ferdinand II of Aragon, 1452~1516)의 공동 왕위 정통성이 공식 승인되었다.
- 알카소바스 조약(Treaty of Alcáçovas)은 카나리아 제도(Canary Islands)를 카스티야의 영토로 인정하는 대신 아조레스(Azores), 마데이라(Madeira), 카보베르데(Cape Verde) 및 기니 남쪽 해역의 독점 항해권을 포르투갈에 양도함으로써 유럽 역사상 최초로 미개척 대서양 해양 영토를 분할한 국제 협정이 되었다.
17세기(1601-1700년) 주요 사건
[1607년 9월 4일] 백작들의 도주와 아일랜드 게일 사회의 붕괴
- 9년 전쟁(Nine Years' War)에서 잉글랜드에 패한 후 압박을 받던 얼스터(Ulster)의 티론 백작 휴 오닐(Hugh O'Neill, 1550년경~1616)과 티르코넬 백작 루아드리 오 돔날(Rory O'Donnell, 1575~1608)이 90여 명의 추종자와 함께 대륙 망명을 위해 라스멀런(Rathmullan)에서 비밀리에 배를 타고 출항하였다.
- 이 사건은 '백작들의 도주(Flight of the Earls)'로 불리며, 수세기 동안 아일랜드를 통치해 온 전통적인 게일족(Gaelic) 귀족 계급의 정치적·군사적 권력이 완전히 소멸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지도부를 잃은 얼스터 지역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출신 신교도들을 대거 이주시킨 얼스터 플랜테이션(Plantation of Ulster)이 본격화되었으며, 이는 현대 북아일랜드 분쟁의 역사적 시발점이 되었다.
[1666년 9월 4일] 런던 대화재의 최악 피해 발생과 중심지 전소
- 런던 시(City of London)의 푸딩 레인(Pudding Lane)에서 시작된 런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가 사흘째를 맞이하여 강풍을 타고 번지며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파괴를 초래하였다.
- 중세 고딕 건축의 정수였던 옛 세인트 폴 대성당(Old St Paul's Cathedral)이 화염에 휩싸여 석조 천장과 벽체가 무너져 내렸으며, 왕립거래소(Royal Exchange)와 길드홀(Guildhall)을 포함한 도심부의 상업 및 행정 중심지가 잿더미로 변하였다.
- 잉글랜드 국왕 찰스 2세(Charles II, 1630~1685)와 요크 공작 제임스(James, Duke of York, 1633~1701)의 지휘하에 화약으로 건물을 파괴하여 방화선(Firebreak)을 구축하는 작업이 시행되었으며, 이후 화재 진압과 런던의 근대적 석조 재건을 촉진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18세기(1701-1800년) 주요 사건
[1746년 9월 4일] 케르덴 조약 체결과 오스만-페르시아 전쟁 종결
- 아프샤르 왕조(Afsharid dynasty) 페르시아의 샤한샤 나디르 샤(Nader Shah, 1688~1747)와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의 술탄 마흐무트 1세(Mahmud I, 1696~1754)의 대표단이 케르덴(Kerden)에서 평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 조약을 통해 1743년부터 이어진 오스만-페르시아 전쟁(Ottoman–Persian War)이 공식 종결되었으며, 국경선은 과거 1639년에 맺어진 주하브 조약(Treaty of Zuhab)의 경계선으로 상호 복귀하기로 합의하였다.
- 오스만 제국은 자파르파(Ja'fari) 시아파 순례자들의 메카 및 메디나 성지 순례 안전을 보장하였고, 나디르 샤의 무리한 군사 확장이 한계에 봉착하며 서아시아의 세력 균형이 장기간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1774년 9월 4일] 제임스 쿡의 누벨칼레도니 최초 발견
- 제2차 남태평양 항해를 지휘하던 영국 해군의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 선장이 탐험선 레졸루션호(HMS Resolution)를 이끌고 항해하던 중 유럽인 최초로 미지의 섬을 목격하였다.
- 제임스 쿡은 섬의 웅장한 해안 지형과 산맥이 자신의 아버지 고향인 스코틀랜드(라틴어로 칼레도니아, Caledonia)의 고원 지대를 연상시킨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지역을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 현 프랑스령 누벨칼레도니)'로 명명하였다.
- 원주민 카낙족(Kanak people)과의 평화로운 첫 접촉과 해안선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이 발견은 태평양 해양 지리학의 공백을 메우고 향후 유럽 열강의 남태평양 진출을 가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1781년 9월 4일] 로스앤젤레스 도시의 건설
- 스페인 제국 캘리포니아 총독 펠리페 데 네베(Felipe de Neve, 1724~1784)의 명령에 따라, 멕시코 누에바에스파냐에서 모집된 스페인계, 아메리카 원주민계, 아프리카계 혼혈 정착민 44명이 공식 정착촌을 세웠다.
- 개척민들은 이 정착촌의 공식 명칭을 '천사들의 여왕 성모 마리아의 마을(El Pueblo de Nuestra Señora la Reina de los Ángeles)'로 명명하고 공동체 기반을 닦았다.
- 당시에는 황량한 개척지 군사 보급소에 불과했던 이 마을은 비옥한 농업 용지와 태평양 연안의 입지를 바탕으로 급속히 팽창하여 훗날 미국 서부 최대의 메트로폴리스인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로 도약하는 기원이 되었다.
[1797년 9월 4일] 프랑스 프륌티도르 18일 쿠데타 발발
- 프랑스 제1공화국(French First Republic) 총재정부(French Directory)의 공화파 총재 폴 바라스(Paul Barras, 1755~1829)를 비롯한 지도부가 의회 선거에서 다수를 차지한 왕당파(Royalists)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감행하였다.
-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1821)의 지원을 받은 피에르 오주로(Pierre Augereau, 1757~1816)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튈르리 궁전(Tuileries Palace)의 입법원을 포위하여 왕당파 의원들을 대거 체포하였다.
- 프랑스 혁명력으로 '프륌티도르 18일 쿠데타(Coup of 18 Fructidor)'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선거 결과가 무효화되고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절대화되면서, 부르주아 공화정의 헌정 질서가 와해되고 군사독재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1800년 9월 4일] 발레타의 프랑스군 항복과 몰타 보호령 수립
-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 함락되었던 몰타(Malta) 섬의 수도 발레타(Valletta)에서 프랑스 주둔군 사령관 클로드앙리 벨그랑 드 보부아(Claude-Henri Belgrand de Vaubois, 1748~1839) 장군이 연합군에 공식 항복하였다.
- 2년간 이어진 영국 해군의 철저한 해상 봉쇄와 현지 몰타인 반군들의 완강한 포위 작전으로 식량과 보급품이 바닥난 프랑스군은 알렉산더 볼(Alexander Ball, 1757~1809) 함장이 이끄는 영국군에 성채를 넘겨주었다.
- 이로써 프랑스의 몰타 지배가 종식되고 몰타와 고조(Gozo) 섬은 '몰타 보호령(Malta Protectorate)'으로 편입되었으며, 영국은 동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하는 결정적 해군 요충지를 영구적으로 확보하였다.
19세기(1801-1900년) 주요 사건
1811-1820년 주요 사건
[1812년 9월 4일] 해리슨 요새 포위전 발발과 재커리 테일러의 분전
- 1812년 전쟁(War of 1812) 중 현재의 인디애나(Indiana)주 테레호트 부근에 위치한 해리슨 요새(Fort Harrison)를 테쿰세 동맹(Tecumseh's Confederacy) 소속 원주민 전사 연합군이 기습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 원주민들이 요새의 주요 감시 초소(Blockhouse)에 방화하여 큰불이 일어났으나, 요새 수비대장인 육군 대위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 1784~1850)가 병마에 시달리던 소수의 병사와 정착민들을 지휘해 불길을 잡고 결사 항전을 전개하였다.
- 밤샘 방어전 끝에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하며 1812년 전쟁 개전 이래 미 육군의 귀중한 첫 육상 방어 승리를 기록하였고, 테일러는 소령으로 특진하여 훗날 제12대 미국 대통령으로 성장하는 군사적 명성을 얻었다.
[1813년 9월 4일] 앤드루 잭슨의 내슈빌 총격전 부상
- 미국 테네시(Tennessee)주 내슈빌의 호텔 인근 거리에서 테네시 민병대 소장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 1767~1845)이 훗날 미국 상원의원이 되는 토머스 하트 벤턴(Thomas Hart Benton, 1782~1858) 및 그의 동생 제시 벤턴(Jesse Benton, 1783~1843) 일파와 유혈 난투극을 벌였다.
- 장교들 간의 결투 입회 문제로 쌓인 감정이 폭발하면서 총격전이 벌어졌고, 제시 벤턴이 쏜 총탄에 맞은 잭슨은 왼쪽 어깨와 팔에 뼈가 부서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 팔을 절단할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 잭슨의 몸에 박힌 탄환은 20년 가까이 제거되지 않았으나, 이러한 치명적 원한에도 불구하고 두 거물은 훗날 화해하여 '잭슨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를 함께 이끄는 강력한 정치적 동지가 되었다.
1821-1830년 주요 사건
[1827년 9월 4일] 투르쿠 대화재와 핀란드 중심지의 이동
- 러시아 제국 핀란드 대공국(Grand Duchy of Finland)의 유서 깊은 수도이자 최대 문화 중심지였던 투르쿠(Turku)의 북부 구역에서 북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화재가 일어났다.
- 오랜 가뭄으로 건조해진 목조건물 사이로 거센 불길이 번져 도시 건물의 75% 이상이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였으며, 핀란드 유일의 고등교육 기관이던 투르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Turku) 도서관의 귀중한 중세 고문서와 국보급 사료들이 소실되었다.
- 이 대참사를 계기로 행정과 교육의 기능이 신수도 헬싱키(Helsinki)로 완전히 이전되었고, 건축가 카를 루트비히 엥겔(Carl Ludvig Engel, 1778~1840)의 주도로 화재에 안전한 현대식 격자망 도시로 재건되었다.
1831-1840년 주요 사건
[1839년 9월 4일] 주룽 전투 발발과 제1차 아편전쟁의 서막
- 청나라 광둥성 주룽(Kowloon) 해역에서 영국 수석통상감독관 찰스 엘리엇(Charles Elliot, 1801~1875) 휘하의 영국 군함들이 청나라 수군의 정크선과 해안 포대를 상대로 선제 포격을 가하며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 흠차대신 임칙서(Lin Zexu, 1785~1850)의 아편 단속 및 영국 상선에 대한 식수·식량 공급 차단 조치에 반발한 영국 함선 라른호(HMS Larne)와 무장 상선들이 봉쇄선 돌파를 시도하며 수시간에 걸친 포격전이 이어졌다.
- '주룽 전투(Battle of Kowloon)'로 명명된 이 사건은 영국과 청나라 간에 벌어진 최초의 공식 무력 충돌이었으며,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뒤흔들고 홍콩 개역으로 이어지는 제1차 아편전쟁(First Opium War)의 도화선이 되었다.
1861-1870년 주요 사건
[1862년 9월 4일] 로버트 E. 리의 메릴랜드 진격과 북부 침공 개시
-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중 남군(Confederate Army)의 명장 로버트 E. 리(Robert E. Lee, 1807~1870) 장군이 이끄는 북버지니아군(Army of Northern Virginia)이 포토맥강(Potomac River)을 도하하여 북군 관할인 메릴랜드(Maryland)주로 진군하였다.
- 2차 불런 전투(Second Battle of Bull Run)의 승세를 몰아 시작된 이 메릴랜드 전역(Maryland Campaign)은 버지니아의 전장 압박을 덜고, 국경주 메릴랜드의 연합 가담을 유도하며 유럽 열강의 외교적 승인을 얻어내기 위한 과감한 공세였다.
- 이 작전은 미 역사상 최악의 유혈 충돌로 꼽히는 앤티텀 전투(Battle of Antietam)로 이어졌으며,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선포하는 결정적인 정치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1870년 9월 4일] 나폴레옹 3세의 폐위와 프랑스 제3공화국 선포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Franco-Prussian War)의 스당 전투(Battle of Sedan)에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 1808~1873)가 프로이센군에 포로로 잡혔다는 충격적인 비보가 파리에 전해졌다.
- 파리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봉기하여 입법원을 점거하였고, 급진 공화파 지도자인 레옹 감베타(Léon Gambetta, 1838~1882)가 파리 시청에서 제2제정(Second French Empire)의 종말과 프랑스 제3공화국(French Third Republic) 수립을 선포하였다.
- 루이쥘 트로쉬(Louis-Jules Trochu, 1815~1896) 장군을 수반으로 하는 국방임시정부(Government of National Defense)가 급히 조직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프랑스에서 황제 및 왕정 지배 체제가 영구히 종식되었다.
1881-1890년 주요 사건
[1882년 9월 4일] 펄 스트리트 발전소 가동과 중앙 전력망 시대 개막
-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이 세운 에디슨 조명 회사(Edison Illuminating Company)가 뉴욕 로어 맨해튼에 위치한 펄 스트리트 발전소(Pearl Street Station)의 스위치를 올리고 상업 발전을 시작하였다.
- 대형 증기 기관으로 구동되는 직류 '점보(Jumbo)' 발전기를 통해 약 1평방마일에 달하는 구역에 지중 케이블망을 설치하고, 월스트리트 금융가와 뉴욕 타임스 사옥을 비롯한 59개 고객사의 백열전구 약 400개에 유료 전력을 최초로 송전하였다.
- 개별 건물마다 발전기를 두던 방식을 탈피하여 중앙 발전소에서 대규모 소비자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최초의 상업용 전력망 시스템을 성공시킴으로써 전 세계 근대 도시 문명에 본격적인 전기 시대를 열었다.
[1886년 9월 4일] 아파치족 전사 지도자 제로니모의 최종 항복
- 아메리카 원주민 전쟁(American Indian Wars)의 상징적인 항쟁 지도자였던 치리카와 아파치족(Chiricahua Apache)의 제로니모(Geronimo, 1829~1909)가 애리조나주 스켈레톤 캐니언(Skeleton Canyon)에서 미 육군에 공식 항복하였다.
- 제로니모는 불과 30여 명의 전사와 가족만을 이끈 채 멕시코 국경 산악 지대에서 수천 명의 미군 추격대를 따돌리며 수십 년간 끈질긴 게릴라전을 펼쳐왔으나, 넬슨 A. 마일스(Nelson A. Miles, 1839~1925) 장군의 끈질긴 압박과 회유 끝에 투항을 결단하였다.
- 그의 항복은 3세기에 걸쳐 이어진 북미 원주민들의 조직적인 대미 무장 저항이 사실상 종결되었음을 뜻하였으며, 이후 제로니모와 잔존 부족민들은 플로리다와 오클라호마의 수용 구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1888년 9월 4일] 조지 이스트먼의 코닥 상표 등록 및 롤필름 카메라 특허 취득
- 미국의 혁신 기업가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 1854~1932)이 짧고 독창적인 철자로 고안한 '코닥(Kodak)' 상표를 공식 등록하고, 휴대용 롤필름(Roll film) 상자형 카메라에 대한 미국 특허(제388,850호)를 부여받았다.
- 당시 사진술은 무거운 유리 건판과 독성 화학 약품을 직접 다뤄야 하는 전문가의 영역이었으나, 이스트먼은 100장의 필름이 사전 장전된 소형 카메라를 대중에게 판매하는 혁신을 선보였다.
- "당신은 셔터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합니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라는 유명한 슬로건 아래 인화 대행 서비스를 결합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스냅사진 문화를 창시하고 영화 산업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20세기(1901-2000년) 주요 사건
1901-1910년 주요 사건
[1909년 9월 4일] 청·일 간도 협약 체결과 조선의 영유권 침탈
- 청나라 베이징에서 일본 제국(Empire of Japan)의 주청 특명전권공사 이주인 히코키치(Ijuin Hikokichi, 1864~1924)와 청나라(Qing Dynasty) 외무부 회판외무대신 양돈언(Liang Dunyan, 1857~1924)이 '간도에 관한 청·일 협약(간도 협약, Gando Convention)'을 체결하였다.
-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Eulsa Treaty)으로 대한제국(Korean Empire)의 외교권을 불법 강탈한 상태에서 남만주 철도(South Manchuria Railway) 안봉선 부설권과 푸순 탄광(Fushun coal mine)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 영유권을 청나라에 넘겨주었다.
- 이 협약은 당사국인 한국을 철저히 배제한 채 도문강(두만강) 석을수를 국경선으로 획정하여 백두산정계비(Baekdusan Stele) 이래 조선의 관할 아래 있던 간도(Gando) 영유권을 유린한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으로 남게 되었다.
1911-1920년 주요 사건
[1912년 9월 4일] 알바니아 봉기 승리와 오스만 제국의 요구 수용
-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정부가 하산 프라셰리(Hasan Prishtina, 1873~1933)를 비롯한 알바니아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주도한 대규모 무장 봉기에 직면하여, 반군이 제시한 자치 및 권리 보장 요구안(14개 조항)을 전격 수용하였다.
- 봉기군은 스코페(Skopje)를 점령하는 등 발칸반도 내 오스만 제국의 행정 통제력을 와해시켰으며, 이에 위기를 느낀 아흐메트 무흐타르 파샤(Ahmed Muhtar Pasha, 1839~1919) 내각은 행정 자치, 세금 감면, 알바니아어 학교 설립 및 공용어 사용 권리를 공식 승인하였다.
- 이 사건은 오스만 제국의 유럽 영토 지배력이 붕괴 직전에 이르렀음을 대내외에 보여주었으며, 인접한 발칸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는 제1차 발칸 전쟁(First Balkan War)의 도화선이 됨과 동시에 동년 11월 이스마일 체말리(Ismail Qemali, 1844~1919)가 주도한 알바니아 독립 선언의 결정적 토대가 되었다.
[1919년 9월 4일] 시바스 회의 개막과 튀르키예 국민운동의 결집
-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연합국의 영토 분할 위기에 처한 오스만 제국에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의 소집으로 아나톨리아와 트라키아 전역의 대표들이 참석한 시바스 회의(Sivas Congress)가 공식 개막하였다.
- 앞서 열린 에르주룸 회의의 결정을 전국 단위로 확대한 이 회의는 외세의 위임통치안을 전면 거부하고, 조국의 분할될 수 없는 영토적 일체성과 민족 주권 수호를 천명한 국민헌장(Misak-ı Millî)의 기본 원칙을 최종 확립하였다.
- 무스타파 케말을 수반으로 하는 대표위원회(Heyet-i Temsiliye)가 결성되어 각지의 저항 조직을 아나톨리아·루멜리아 권리옹호협회로 통합하였으며, 이는 훗날 튀르키예 공화국(Republic of Turkey)을 건국하게 되는 튀르키예 독립 전쟁(Turkish War of Independence)의 최고 지도부를 탄생시킨 역사적 분수령이 되었다.
1921-1930년 주요 사건
[1923년 9월 4일] 미국 최초의 경식 비행선 USS 셰넌도어호의 처녀비행
- 미국 해군(United States Navy)이 자체 기술로 건조한 최초의 전질 경식 비행선(Rigid Airship)인 USS 셰넌도어(USS Shenandoah, ZR-1)호가 뉴저지주 레이크허스트 해군 항공기지(Naval Air Station Lakehurst)에서 첫 시험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 독일의 체펠린(Zeppelin) 비행선 설계를 기반으로 제작된 셰넌도어호는 초대 함장 프랭크 R. 매크래리(Frank R. McCrary, 1879~1938) 해군 중령의 지휘 아래 안전하게 비행을 마쳤으며, 가연성이 높은 수소 대신 미국이 독점 공급하던 불연성 헬륨(Helium) 가스를 부력재로 충전한 세계 최초의 군용 비행선이었다.
- 이 비행선의 성공적 비행은 미국의 장거리 해상 초계 및 항공 공학 기술이 유럽 열강의 수준에 도달했음을 입증하였으나, 1925년 오하이오주 상공에서 돌풍을 만나 공중 분해되는 비극을 겪으며 초기 항공 기술사에서 대형 경식 비행선의 구조적 취약성을 남긴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1931-1940년 주요 사건
[1936년 9월 4일]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의 전시 거국내각 수립
- 스페인 내전(Spanish Civil War) 초기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장군의 반란군이 요충지 탈라베라데라레이나(Talavera de la Reina)를 점령하고 수도 마드리드로 진격하자, 공화파의 호세 히랄(José Giral, 1879~1962) 총리가 책임을 통감하고 내각 총사퇴를 발표하였다.
- 스페인 제2공화국(Second Spanish Republic)의 대통령 마누엘 아사냐(Manuel Azaña, 1880~1940)는 사회노동당(PSOE)의 좌파 수장이자 노동자총동맹(UGT)을 이끌던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Francisco Largo Caballero, 1869~1946)를 총리 겸 전쟁장관으로 임명하였다.
- 라르고 카바예로는 사회주의자뿐 아니라 스페인 공산당(PCE),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 무정부주의 전국노동자연맹(CNT)까지 아우른 혁신적 전시 연립정부를 구성하였으며, 분열되었던 좌파 민병대를 단일 인민정규군(Ejército Popular)으로 재편하여 결사적인 마드리드 수호 항전을 지휘하였다.
[1939년 9월 4일] 영국 공군의 대독 본토 첫 공습과 윌리엄 J. 머피의 전사
- 영국이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를 발표한 다음 날, 영국 공군(Royal Air Force, RAF) 폭격기사령부 소속 브리스톨 블렌하임(Bristol Blenheim) 쌍발 폭격기 부대가 독일 북부 빌헬름스하펜(Wilhelmshaven) 군항에 정박 중인 독일 해군 주력 함선들을 상대로 개전 후 최초의 폭격 작전을 감행하였다.
- 제107비행대대 소속의 윌리엄 J. 머피(William J. Murphy, 1916~1939) 공군 대위는 독일의 순양함 아드미랄 쉬어(Admiral Scheer)와 엠덴(Emden)을 타격하는 공격 편대를 이끌었으나, 극저고도 침투 도중 독일군의 거센 대공포화와 전투기 요격을 받아 기체가 해상으로 추락하며 승무원들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 머피 대위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사한 최초의 영국 공군 폭격기 조종사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며, 이 작전은 민간인 피해를 회피하려던 개전 초기 교전 수칙과 주간 저고도 폭격의 치명적 한계를 노출하여 향후 연합군 항공 전략이 대규모 야간 전략폭격으로 전환되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1941-1950년 주요 사건
[1941년 9월 4일] USS 그리어호 사건과 미·독 대서양 해전의 서막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공식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던 미국의 위커스급 구축함 USS 그리어(USS Greer, DD-145)호가 아이슬란드 근해 북대서양 공해상에서 독일 해군(Kriegsmarine)의 유보트 U-652함과 최초의 어뢰 교전을 벌였다.
- 그리어호는 영국 공군 해상초계기로부터 독일 잠수함의 위치를 전달받아 이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며 좌표를 교신하였고, 이에 위협을 느낀 U-652함장 게오르크-베르너 프라츠(Georg-Werner Fraatz, 1917~1943) 중위가 어뢰 2발을 발사하자 그리어호 역시 다수의 폭뢰를 투하하며 격렬히 맞대응하였다.
- 미 해군 함정에 대한 나치 독일의 직접적인 첫 공격으로 간주된 이 교전을 계기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미국 대통령은 9월 11일 대서양의 추축국 함선을 발견 즉시 격침하라는 '발포 명령(Shoot-on-sight order)'을 공식 하달하여 사실상 비공식 해상 교전 상태에 진입하였다.
[1944년 9월 4일] 영국 제11기갑사단의 벨기에 안트베르펜 해방
-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북서유럽 전선에서 쾌진격을 거듭하던 영국 육군 제11기갑사단(11th Armoured Division)이 벨기에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유럽 최대 규모의 심수항 도시인 안트베르펜(Antwerp)에 입성하여 독일군 점령으로부터 해방시켰다.
- 사단장 조지 필립 브래들리 로버츠(George Philip Bradley Roberts, 1906~1997) 소장의 지휘 아래 영국군 기갑부대는 벨기에 레지스탕스 조직인 백색 여단(Witte Brigade)의 결정적인 정보와 안내를 받아 시가지로 신속히 진입하였으며, 독일군이 미처 폭파하지 못한 최신식 항만 시설과 도크를 온전하게 보존한 채 장악하였다.
- 안트베르펜 항구의 탈환은 보급로가 수백 킬로미터나 늘어져 있던 연합군 전체의 고질적인 유류 및 물자 부족 문제를 타개할 전환점이었으나, 항구로 진입하는 스헬더강 하구를 독일군이 여전히 통제하고 있어 이후 혹독한 스헬더 전투(Battle of the Scheldt)를 치르는 배경이 되었다.
[1944년 9월 4일] 소련군 제2우크라이나전선군의 헝가리 진입
- 제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에서 로디온 말리놉스키(Rodion Malinovsky, 1898~1967) 원수가 지휘하는 소비에트 연방(Soviet Union)의 붉은 군대(Red Army) 제2우크라이나전선군(2nd Ukrainian Front) 선봉 부대가 헝가리 왕국(Kingdom of Hungary) 영내로 진입하였다.
- 소련군은 루마니아 왕국(Kingdom of Romania)을 추축국 진영에서 이탈시킨 야시-키시뇨프 공세(Jassy–Kishinev Offensive)의 여세를 몰아 카르파티아산맥을 돌파하고 트란실바니아 방면을 통해 헝가리 국경 지대로 전격 진격하였다.
- 이 진격은 나치 독일의 핵심 동맹국이던 헝가리의 방어선을 와해시키고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Miklós Horthy, 1868~1957)가 연합국과의 비밀 강화를 모색하도록 촉발하였으며, 처절한 부다페스트 공방전(Siege of Budapest)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1944년 9월 4일] 핀란드의 대소련 계속전쟁 교전 중단
-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과 사실상 연합하여 소비에트 연방과 맞서 싸우던 핀란드 공화국이 전세의 악화를 인정하고 소련에 대한 모든 군사 작전을 중단하며 단독 정전 협정에 돌입하였다.
-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Carl Gustaf Emil Mannerheim, 1867~1951) 신임 대통령이 이끄는 핀란드 지도부는 소련군의 카렐리야 대공세를 저지해 국가 붕괴를 막아낸 직후 강화를 결단하였으며, 9월 4일 아침 전선에 완전한 사격 중지 명령을 하달하였다.
- 이 조치는 9월 19일 정식 조인된 모스크바 정전 협정(Moscow Armistice)으로 이어져 3년여에 걸친 계속전쟁(Continuation War)을 공식 종결시켰으며, 핀란드는 영토 일부를 할양하고 국내 주둔 독일군을 몰아내는 라플란드 전쟁(Lapland War)을 치르는 대가로 공산화를 피하고 주권과 민주주의를 보전하였다.
[1948년 9월 4일] 네덜란드 빌헬미나 여왕의 자진 퇴위
- 네덜란드의 군주 빌헬미나(Wilhelmina of the Netherlands, 1880~1962) 여왕이 고령과 악화된 건강 문제를 이유로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공식 퇴위 문서에 서명하고 반세기 넘게 지켜온 왕위에서 명예롭게 물러났다.
- 1890년 10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장장 57년간 재위한 빌헬미나 여왕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중립 유지와 1930년대 대공황을 이끌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영국 런던에서 망명정부를 이끌며 비밀 라디오 방송인 라디오 오라녜(Radio Oranje)를 통해 조국 저항군의 불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 여왕의 퇴위로 외동딸인 율리아나(Juliana of the Netherlands, 1909~2004) 왕세녀가 왕위를 계승하여 네덜란드의 새로운 여왕으로 등극하였으며,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국민 통합을 이끈 빌헬미나의 헌신은 현대 네덜란드 입헌군주제의 정통성을 공고히 다지는 역사적 토대가 되었다.
[1949년 9월 4일] 폴 로브슨의 피크스킬 2차 항의 콘서트 개최
-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세계적인 베이스바리톤 성악가이자 흑인 인권 및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폴 로브슨(Paul Robeson, 1898~1976)이 뉴욕주 피크스킬(Peekskill) 인근 골프장에서 수만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대규모 평화 콘서트를 강행하였다.
- 이 공연은 8일 전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반공 극우 단체들의 폭력 난동으로 무산되었던 사건에 굴복하지 않고 시민적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재추진된 것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진보 노동조합원들과 민권 활동가 2,500여 명이 인간 사슬을 구축해 로브슨의 무대를 결사 경호하였다.
- 공연 자체는 평화롭게 마무리되었으나 귀가하던 수많은 관람객 차량이 도로변에 매복한 폭도들의 투석과 둔기 습격을 받아 14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이는 매카시즘(McCarthyism) 광풍과 초기 냉전기 미국 사회의 인종 갈등 및 사상의 자유 탄압을 고발한 상징적 사건으로 남았다.
[1950년 9월 4일] 달링턴 레이스웨이 제1회 서던 500 개최
-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달링턴 레이스웨이(Darlington Raceway)에서 전미 스톡카 자동차 경주 협회(NASCAR) 역사상 최초의 500마일 장거리 포장 아스팔트 트랙 대회인 '제1회 서던 500(Southern 500)'이 공식 개최되었다.
- 트랙 건설자인 해럴드 브레이싱턴(Harold Brasington, 1909~1996)과 NASCAR 설립자 윌리엄 프랑스 시니어(William France Sr., 1909~1992)가 주도한 이 기념비적인 대회에는 무려 75대의 차량이 출전하였으며, 2만 5천여 명의 관중이 운집해 모터스포츠 역사상 전례 없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 6시간 38분에 걸친 극한의 승부 끝에 플리머스(Plymouth) 차량을 몰고 내구성이 우수한 타이어 전략을 구사한 조니 맨츠(Johnny Mantz, 1918~1972)가 초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며, 이 경기는 비포장 흙길 트랙 중심이었던 초기 스톡카 레이싱을 현대적인 대규모 상업 스포츠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결정적 이정표가 되었다.
1951-1960년 주요 사건
[1951년 9월 4일] 유엔군의 한국 전쟁 소련군 참전 공식 발표
- 한국 전쟁(Korean War) 중 매슈 리지웨이(Matthew Ridgway, 1895~1993) 총사령관 휘하의 도쿄 유엔군 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가 한반도 전선에 소비에트 연방(Soviet Union)의 정규 군사 인력이 직접 참전하고 있음을 언론에 공식 발표하였다.
- 유엔군은 북부 공역 '미그 앨리(MiG Alley)'에서 작전하던 미그-15(MiG-15) 전투기 조종사들의 러시아어 무선 교신 기록, 격추된 기체 부품 분석, 기술 장비 등을 바탕으로 소련군 조종사와 방공 기술진의 실전 참전을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
-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1878~1953) 서기장이 이끄는 소련은 당시 소련 제64전투비행군단(Soviet 64th Fighter Aviation Corps)을 중국 의용군으로 위장 파견하고 있었으며, 유엔군의 발표는 한국 전쟁이 미·소 초강대국의 정면충돌 양상이었음을 국제사회에 알린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1951년 9월 4일] 최초의 미국 대륙 횡단 텔레비전 생중계
-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Japanese Peace Treaty Conference) 개막식에서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의 연설 장면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륙 횡단 텔레비전 생중계(Transcontinental television broadcast)로 방영되었다.
- 통신 기업 AT&T가 미 대륙을 관통하도록 구축한 4,000km 이상의 마이크로파 중계탑 망과 동축 케이블 시스템을 가동하여 서부 해안의 현장 화면을 동부 해안과 중서부의 87개 방송국으로 실시간 송출하였다.
- 지역 단위 방송에 머물던 전파 매체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적인 동시 시청 문화를 개척함으로써 본격적인 미국 전국망 텔레비전 네트워크 시대의 개막을 알린 이정표가 되었다.
[1957년 9월 4일] 리틀록 위기 발발과 주 방위군의 등교 차단
- 미국 아칸소(Arkansas)주 주지사 오벌 포버스(Orval Faubus, 1910~1994)가 연방 대법원의 인종 분리 철폐 판결에 불복하여 주 방위군(Arkansas National Guard)을 소집하고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Little Rock Central High School)에 입학하려던 9명의 흑인 학생 '리틀록 나인(Little Rock Nine)'의 교문 진입을 물리적으로 저지하였다.
- 인종 차별주의 군중들의 폭력적 위협과 주 정부의 공권력 남용이 이어지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대통령이 연방 육군 제101공수사단(101st Airborne Division)을 파견하여 학생들의 신변을 보호하고 강제 등교를 집행하였다.
- 이 사태는 주권과 연방 사법권의 충돌 속에서 민권 수호의 법적 권위를 확립한 미국 흑인 민권 운동(American Civil Rights Movement)의 분수령이 되었으며, 이듬해 공립학교 내 인종 분리가 위헌임을 확정한 '쿠퍼 대 애런(Cooper v. Aaron)' 판결로 이어졌다.
1961-1970년 주요 사건
[1962년 9월 4일] 파동 수습 후 대한민국 증권시장 재개장
- 1962년 5월 대규모 결제 불능 사태로 문을 닫았던 명동 대한증권거래소(Korea Stock Exchange)가 국가재건최고회의(Supreme Council for National Reconstruction)와 재무 당국의 정상화 대책에 힘입어 거래를 공식 재개하였다.
- 당시 증시 마비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Park Chung-hee, 1917~1979) 의장 시절 김종필(Kim Jong-pil, 1926~2018) 중앙정보부장 등이 연루된 정치자금 조성 의혹과 투기 세력의 주가 조작이 맞물려 발발한 '1962년 증권파동'에서 기인하였다.
- 정부는 긴급 결제 자금을 투입하고 1962년 제정된 증권거래법(Securities and Exchange Act)을 토대로 불공정 거래 처벌 조항을 마련하였으며, 이날의 재개장은 한국 자본시장이 제도적 기틀을 재정비하고 신뢰 회복의 첫걸음을 뗀 계기가 되었다.
[1963년 9월 4일] 스위스 항공 306편 추락 참사
- 취리히 공항(Zurich Airport)을 이륙하여 제네바를 거쳐 로마로 향하던 스위스 항공(Swissair) 306편 소속 쉬드 아비아시옹 카라벨(Sud Aviation Caravelle) 제트 여객기가 뒤레내슈(Dürrenäsch) 인근 농경지에 추락하여 탑승객과 승무원 80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 짙은 안갯속에서 활주로 시정을 확인하기 위해 고출력 활주와 무리한 제동을 반복하던 중 휠 베어링 과열로 랜딩 기어 타이어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이륙 직후 화염이 기내 유압 파이프를 파괴하면서 조종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 희생자 중 43명이 취리히 인근의 작은 농촌 마을 훔리콘(Humlikon)의 주민이자 지방 자치위원들로 확인되어 마을의 성인 세대가 사실상 전멸하는 비극을 낳았으며, 이후 상업용 제트 여객기의 브레이크 과열 방지 장치 및 타이어 안전 규정이 대대적으로 강화되었다.
[1964년 9월 4일] 스코틀랜드 포스 도로교 공식 개통
-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Edinburgh)와 파이프(Fife) 반도를 연결하는 대형 현수교인 포스 도로교(Forth Road Bridge)가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2022) 여왕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개통식을 열고 정식 개통되었다.
- 총연장 2,514m, 주 경간 1,006m에 달하는 이 다리는 포스만(Firth of Forth)의 거센 해풍과 조류를 견디도록 첨단 강철 케이블 공법으로 시공되었으며, 개통 당시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건설된 세계 최장의 현수교로 기록되었다.
- 페리와 우회 육로에 의존하던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의 물류 및 통근 체계를 완전히 혁신하였으며, 인근의 19세기 철도교인 포스교(Forth Bridge)와 함께 스코틀랜드 20세기 토목 공학의 위대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67년 9월 4일] 베트남 전쟁 스위프트 작전 개시
- 베트남 전쟁(Vietnam War) 중 미 해병대 제1사단 제5해병연대 제3대대가 남베트남 꽝남성 퀘손 계곡(Que Son Valley) 일대에서 북베트남군(NVA) 제2사단의 대규모 병력과 조우하며 스위프트 작전(Operation Swift)을 전격 개시하였다.
- 통신 기지를 복구하고 적 수색 격멸 임무를 띠고 투입된 해병대는 고지대에 매복해 있던 북베트남군의 기습에 포위되어 치열한 근접 백병전과 항공 화력 유도전을 벌였다.
- 격전 첫날 부상당한 해병대원들을 구호하고 영적 위로를 건네다 적탄에 전사한 가톨릭 군종신부 빈센트 R. 카포단노(Vincent R. Capodanno, 1929~1967) 해군 대위가 사후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훈하였으며, 미군은 막대한 인명 피해를 무릅쓰고 계곡의 전략적 통제권을 지켜냈다.
[1970년 9월 4일]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 당선
- 칠레 대선에서 사회당과 공산당 등 좌파 정당들의 연합체인 인민연합(Unidad Popular)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08~1973)가 36.6%를 득표하며 1위를 기록,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칠레 헌법에 따라 의회 인준 투표를 거쳐 취임하였으며, 이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 역사상 자유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수반의 탄생을 의미하였다.
- 아옌데는 구리 광산 국유화와 토지 개혁 등 급진적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심각한 경제 혼란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 육군참모총장의 1973년 군사 쿠데타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다.
1971-1980년 주요 사건
[1971년 9월 4일] 알래스카 항공 1866편 추락 참사
- 앵커리지(Anchorage)를 출발해 주노(Juneau) 공항으로 접근 중이던 알래스카 항공(Alaska Airlines) 1866편 보잉 727-100 여객기가 해발 760m 높이의 칠캣 산맥(Chilkat Mountain Range) 산비탈에 충돌하여 탑승자 111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조사 결과 짙은 안개와 폭우 속에서 조종사들이 결함이 있는 지상 항행 무선 신호(VOR)를 수신하여 기체의 실제 위치를 하강 안전 지점보다 공항에 더 가깝다고 오판한 조종 불능 지상 충돌(CFIT) 사고로 규명되었다.
- 이 참사는 당시 미국 항공 역사상 단일 기체 사고로 최악의 인명 피해를 기록하였으며, 연방항공청(FAA)이 항공 무선 항법 시설의 점검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지상접근경고장치(GPWS) 장착 의무화를 가속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72년 9월 4일] 마크 스피츠의 올림픽 7관왕 대기록 달성
- 서독에서 열린 1972 뮌헨 올림픽(1972 Summer Olympics)에서 미국의 수영 선수 마크 스피츠(Mark Spitz, 1950~ )가 남자 400m 혼계영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단일 올림픽 대회 사상 최초로 7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스피츠는 자유형 100m, 자유형 200m, 접영 100m, 접영 200m와 계영 3개 종목 등 자신이 출전한 7개 종목 모두에서 기존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전무후무한 기량을 선보였다.
- 그의 단일 대회 7관왕 기록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마이클 펠프스(Michael Phelps, 1985~ )가 8관왕을 달성하기 전까지 36년간 깨지지 않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세계 스포츠사에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1972년 9월 4일] 미국 최장수 퀴즈쇼 '더 프라이스 이즈 라이트' 첫 방송
- 미국 CBS 방송망을 통해 일상 상품의 가격을 맞히는 방송 프로그램인 《더 프라이스 이즈 라이트(The Price Is Right)》가 전설적인 진행자 밥 바커(Bob Barker, 1923~2023)의 진행으로 첫 전파를 탔다.
- 방청객 중에서 무작위로 도전자를 지명하는 "컴 온 다운!(Come on down!)"이라는 고유의 유행어와 소비재 가격을 맞히는 독창적인 게임 방식을 도입하여 미국 낮 시간대 시청률 1위를 확고히 지켰다.
- 2007년 드루 캐리(Drew Carey, 1958~ )로 진행자가 교체된 이후에도 반세기 넘게 방영을 이어가며 9,000회 이상의 방송을 기록, 미국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연속 방영된 대표적인 게임 쇼로 자리 잡았다.
[1975년 9월 4일] 중동 평화를 위한 시나이 제2차 잠정 협정 체결
- 스위스 제네바에서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의 교전국이었던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정부 대표들이 미국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1923~2023) 국무장관의 셔틀 외교 중재하에 시나이 잠정 협정(Sinai Interim Agreement / Sinai II)에 정식 조인하였다.
-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군은 시나이반도 서부의 전략적 요충지인 기디 고개(Gidi Pass)와 미틀라 고개(Mitla Pass), 아부루데이스(Abu Rudeis) 유전을 이집트에 반환하고, 양측 사이에 유엔 긴급군(UNEF II) 완충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 양국이 군사 분쟁 대신 평화적 대화를 통해 영토 갈등을 해결하기로 공식 천명한 이 협정은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과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 조약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중동 평화 프로세스의 실질적 발판이 되었다.
[1977년 9월 4일] 샌프란시스코 골든 드래곤 레스토랑 학살 사건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Chinatown)의 유명 음식점 골든 드래곤(Golden Dragon)에 중국계 청소년 갱단 조 보이스(Joe Boys) 소속 무장 괴한 3명이 난입하여 무차별 총기 난사를 자행하였다.
- 이 범행은 경쟁 조직인 와칭(Wah Ching) 갱단 수뇌부를 암살하기 위해 감행되었으나, 표적 인물들은 부상을 입지 않았고 식사 중이던 무고한 민간인 관광객과 식당 종업원 등 5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상을 입었다.
- 대도시 도심에서 벌어진 잔혹한 총기 참사를 계기로 샌프란시스코 경찰국(SFPD)은 아시아계 갱단을 전담하는 특수수사반(Gang Task Force)을 즉각 신설하였으며, 미국 전역의 도심 폭력조직 수사 지침이 강화되었다.
[1980년 9월 4일] 북한의 휴전선 11개 지역 대남비방방송 전격 재개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 군사분계선(MDL)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11개 거점에서 대한민국을 겨냥한 대형 고출력 확성기 비방 방송을 전격 재개하였다.
- 이번 조치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July 4 South-North Joint Communiqué)에 따라 상호 비방 방송을 중지하기로 했던 신사협정을 북한 측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으로, 김일성(Kim Il-sung, 1912~1994) 정권이 심리전 공세를 대대적으로 전환한 사건이었다.
- 전두환(Chun Doo-hwan, 1931~2021) 대통령의 취임 직후 감행된 이 도발은 신군부 정권의 정통성을 공격하고 남북 대화 분위기를 급속히 냉각시켜 휴전선 일대의 군사적 대치와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1980년 9월 4일] 보건사회부의 전국 호화묘지 일제 정리 방침 발표
- 대한민국 보건사회부(Ministry of Health and Social Affairs) 천명기(Cheon Myeong-gi, 1930~2000) 장관이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계층 간 위화감 해소를 위해 전국의 호화 분묘를 전면 조사해 일제 정리하겠다는 특단의 행정 대책을 발표하였다.
- 정부는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Cemetery and Burial Act) 시행령을 엄격히 적용하여 분묘 1기당 점유 면적 한도(30㎡ 이내)를 철저히 단속하고, 비석과 상석 등 호화 석물 규격을 제한하며 기준을 초과한 묘지의 소유주에게 자진 개장(改葬) 및 축소를 명령하였다.
- 이는 전두환(Chun Doo-hwan, 1931~2021) 신군부 집권 초기에 단행된 사회정화운동(Social Purification Movement)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으며, 권력층과 부유층의 과시적 장례 관행을 억제하고 화장(Cremation)과 공원묘지 중심의 근대적 장사 문화를 유도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1981-1990년 주요 사건
[1985년 9월 4일] 탄소 동소체 벅민스터풀러렌(C60)의 최초 발견
- 미국 라이스 대학교(Rice University) 연구실에서 영국의 해럴드 크로토(Harold Kroto, 1939~2016)와 미국의 리처드 스몰리(Richard Smalley, 1943~2005), 로버트 컬(Robert Curl, 1933~2022) 공동 연구진이 탄소 원자 60개로 결합된 구형 케이지 분자를 처음으로 합성하고 확인하였다.
- 레이저로 흑연을 기화시키는 분광 실험 도중 규명된 이 분자는 건축가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 1895~1983)의 지오데식 돔 및 축구공 구조와 일치하는 정오각형과 정육각형 결합 구조를 지녀 '벅민스터풀러렌(Buckminsterfullerene, C60)'으로 명명되었다.
- 흑연과 다이아몬드에 국한되었던 탄소 동소체 영역을 확장한 이 발견으로 연구진은 199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탄소 나노튜브(Carbon Nanotube)와 그래핀(Graphene)으로 이어지는 나노기술(Nanotechnology)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다.
[1989년 9월 4일] 동독 라이프치히 월요 시위와 평화 혁명의 시작
- 동독(East Germany) 라이프치히(Leipzig)의 성 니콜라이 교회(St. Nicholas Church)에서 크리스티안 퓌러(Christian Führer, 1943~2014) 목사의 인도로 열린 기도회 직후, 1,200여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진출하여 비폭력 반체제 시위를 벌였다.
- 시위 참가자들은 슈타지(Stasi) 비밀경찰의 탄압 위험 속에서도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라는 구호를 외치며 여행의 자유, 반대 세력의 합법화, 공산당 독재 타파와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였다.
- 매주 월요일마다 이어진 이 '월요 시위(Monday demonstrations)'는 수십만 명이 동참하는 대규모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번져나갔으며, 끝내 동독 정권을 무너뜨리고 베를린 장벽(Berlin Wall) 붕괴와 독일 통일을 이끌어낸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1990년 9월 4일] 서울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개막과 분단 후 첫 총리 회담
- 분단 45년 만에 남북한 행정부 수반이 한자리에 마주하는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South-North High-Level Talks)에 참석하기 위해 북측 정무원 총리 연형묵(Yon Hyong-muk, 1931~2005)을 단장으로 한 90명의 대표단이 판문점(Panmunjom)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였다.
- 서울 힐튼호텔(Hilton Hotel) 등에서 남측 국무총리 강영훈(Kang Young-hoon, 1922~2016)과 북측 연형묵 총리가 마주 앉아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의 해소와 다방면에 걸친 교류 및 협력 방안을 공식 의제로 상정하였다.
- 이 회담은 당국 간 상호 체제 인정과 긴장 완화를 모색하는 역사적인 첫걸음이었으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이어진 협상은 훗날 분단사상 최초의 공식 합의 문서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Inter-Korean Basic Agreement)' 체결로 이어지는 결정적 교두보가 되었다.
1991-2000년 주요 사건
[1994년 9월 4일] 파리 IOC 총회 태권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 프랑스 파리 팔레 드 콩그레에서 열린 제10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 총회에서 한국의 전통 무예 태권도(Taekwondo)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Sydney Olympics)의 정식 경기 종목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총재이자 IOC 부위원장이었던 김운용(Kim Un-yong, 1931~2017)의 스포츠 외교력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 1920~2010) IOC 위원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전 세계 위원들의 만장일치 표결로 통과되었다.
- 이로써 태권도는 전 세계인이 겨루는 보편적 올림픽 핵심 스포츠로 공인받았으며, 대한민국 정부와 체육계는 이 역사적인 날을 기리기 위해 매년 9월 4일을 '태권도의 날(Taekwondo Day)' 법정기념일로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1994년 9월 4일] 세계 최초의 완전 해상 공항 간사이 국제공항 개항
- 일본 오사카만(Osaka Bay) 남동부 해상 5km 지점에 축조된 대규모 인공섬 위에 지어진 간사이 국제공항(Kansai International Airport)이 정식 준공을 마치고 첫 상업 운항을 개시하였다.
- 기존 도심 내 이타미 공항(Itami Airport)의 소음 민원과 확장 한계를 타개하고자 1987년 착공된 이 사업은 이탈리아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 1937~ )가 유선형 여객 터미널을 설계하고 혁신적인 해상 토목 공법을 총동원하였다.
- 연약 지반의 부등침하와 지진, 태풍의 위협을 극복하고 24시간 운영 체제를 갖춘 세계 최초의 해상 인공섬 국제공항으로 자리매김하며 오사카와 교토 등 간사이 광역 경제권을 세계와 잇는 중심 거점으로 부상하였다.
[1995년 9월 4일] 오키나와 미군 여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발발
- 일본 오키나와현(Okinawa Prefecture) 북부에서 주일 미군 소속 해병대원 로드리고 하프(Rodrico Harp, 1974~ ), 켄드릭 레뎃(Kendrick Ledet, 1974~ )과 해군 수병 마커스 길(Marcus Gill, 1973~ ) 등 3명이 문구점에서 귀가하던 12세 일본인 여초등학생을 렌터카로 납치하여 성폭행하였다.
- 미·일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한계로 인해 일본 경찰이 기소 전까지 범인들의 신병을 인도받지 못하자, 분노한 8만 5천여 명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총궐기 집회를 열고 미군 기지 철수와 불평등 조약 개정을 격렬히 요구하였다.
- 이 사건은 일본 내 반미 기지 여론을 극대화하였으며, 빌 클린턴(Bill Clinton, 1946~ ) 미국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함께 미·일 특별행동위원회(SACO)가 구성되어 후텐마 기지(MCAS Futenma) 반환 논의가 촉발되는 등 양국 관계에 중대한 정치적 파장을 낳았다.
[1998년 9월 4일]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구글 법인 설립
-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컴퓨터 과학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 1973~ )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1973~ )이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위치한 수전 워치츠키(Susan Wojcicki, 1968~2024)의 차고에서 '구글(Google Inc.)'을 공식 법인으로 설립하였다.
- 두 창립자는 웹페이지 간의 상호 하이퍼링크를 분석해 정보의 신뢰도와 순위를 매기는 혁신적인 '페이지랭크(PageRank)' 알고리즘을 개발하였으며, 10의 100제곱을 의미하는 수학 용어 '구골(Googol)'에서 착안하여 회사 이름을 명명하였다.
-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 창립자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 1955~ )의 10만 달러 초기 투자를 기반으로 출범한 구글은 검색 시장을 장악하며 글로벌 IT 생태계를 주도하는 최대 규모의 빅테크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1999년 9월 4일] 첨단 방송통신위성 무궁화 3호의 성공적 발사
- 대한민국 한국통신(Korea Telecom, 현 KT)의 제3세대 상용 통신위성인 무궁화 3호(Koreasat 3)가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센터(Guiana Space Centre in Kourou)에서 유럽의 아리안 4(Ariane 4) 로켓에 실려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 미국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사가 제작한 무궁화 3호는 동경 116도 정지궤도에 안착하였으며, 초고속 위성 인터넷과 광대역 멀티미디어 방송을 가능케 하는 최첨단 Ku 밴드 및 Ka 밴드 중계기를 탑재하였다.
- 김대중(Kim Dae-jung, 1924~2009) 정부 시기 국가 IT 인프라 확충 정책과 맞물려 통신 서비스 영역을 한반도를 넘어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장함으로써 한국 위성 통신 산업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1999년 9월 4일] KBS 스탠드업 공개 코미디 《개그콘서트》 첫 정규 방송
- 한국방송공사(Korean Broadcasting System, KBS) 제2텔레비전을 통해 대학로(Daehangno) 소극장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안방극장으로 옮겨온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Gag Concert)》가 첫 정규 방송 전파를 탔다.
- 대학로 무대에서 기반을 닦은 백재현(Baek Jae-hyun, 1970~), 심현섭(Shim Hyun-seop, 1970~), 김미화(Kim Mi-hwa, 1964~) 등이 방청객과 직접 호흡하는 방식을 도입하였으며, 코너 '사바나의 아침' 등이 선풍적인 유행어를 낳으며 큰 호응을 얻었다.
- 닫힌 스튜디오 녹화 형태였던 기존 방송 코미디의 틀을 깨고 수많은 신인 희극인을 배출하는 등용문으로 기능하며 20년 넘게 방영된 대한민국 최장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21세기(2001-2100년) 주요 사건
2001-2010년 주요 사건
[2001년 9월 4일]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세계기록유산 등재
- 고려 우왕 3년(1377년) 청주 흥덕사(Heungdeoksa Temple)에서 간행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Baegun Hwasang Chorok Buljo Jikji Simche Yojeol)》(약칭 직지)이 《승정원일기(Seungjeongwon Ilgi)》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공식 등재되었다.
- 고려 승려 백운화상 경한(Baegun Gyeonghan, 1298~1374)의 저작을 인쇄한 이 고문서는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Park Byeong-sen, 1928~2011) 박사의 연구를 통해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소장본이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선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다.
- 인류 지식 보급과 출판 인쇄술의 역사를 새로 쓴 한국 인쇄 문화의 찬란한 정통성을 세계에 천명한 쾌거였으며, 청주시 등에서는 이 뜻깊은 등재일을 기리기 위해 매년 9월 4일을 '직지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2001년 9월 4일] 바다를 테마로 한 도쿄디즈니씨 공식 개장
- 일본 지바현(Chiba Prefecture) 우라야스시 도쿄 디즈니 리조트(Tokyo Disney Resort) 단지 내에 세계 최초로 바다와 해양 설화를 주제로 조성된 테마파크 도쿄디즈니씨(Tokyo DisneySea)가 일반에 문을 열었다.
- 오리엔탈랜드(Oriental Land Company)가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Walt Disney Imagineering)과 협력하여 약 3,350억 엔의 사업비를 투입해 건립하였으며, 지중해 항구와 신비의 섬 등 7개의 정교한 테마 포트(Theme port)로 구성되었다.
- 기존의 아동 중심 테마파크와 차별화하여 성인 관람객을 배려한 고급 다이닝과 대규모 수변 수상 쇼를 선보여 개장 307일 만에 관람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전 세계 테마파크 역사상 최단기간 흥행 기록을 세웠다.
[2002년 9월 4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아메리칸리그 20연승 신화
- 미국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가 오클랜드 콜리시엄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 12-11 극적인 끝내기 승리를 거두며 아메리칸리그 역대 최다인 20연승 기록을 달성하였다.
- 11-0으로 앞서다 9회 초 11-11 동점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으나, 단장 빌리 빈(Billy Beane, 1962~)의 세이버메트릭스 철학으로 영입된 대타 스코트 해티버그(Scott Hatteberg, 1969~)가 9회 말 통렬한 끝내기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 저비용 구단이 데이터 통계 분석을 통해 막대한 재정의 명문 구단들을 꺾고 승리할 수 있음을 증명한 '머니볼(Moneyball)' 혁신의 정점으로 평가받았으며, 이 기록은 2017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22연승을 달성할 때까지 15년간 리그 최고 기록으로 남았다.
[2007년 9월 4일] 독일 자우얼란트 이슬람 테러 세포 조직원 검거
- 독일 연방범죄수사청(BKA)과 대테러 특수부대 GSG-9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자우얼란트(Sauerland) 오버슐레도른의 한 가옥을 급습하여 알카에다(Al-Qaeda) 계열 이슬람 지하드 연맹 소속 테러리스트 3명을 체포하였다.
- 개종 독일인 프리츠 겔로비츠(Fritz Gelowicz, 1979~ )와 다니엘 슈나이더(Daniel Schneider, 1986~ ), 튀르키예계 아뎀 일마즈(Adem Yılmaz, 1978~ )는 대량의 과산화수소를 이용해 차량 폭탄을 제조한 뒤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Frankfurt Airport)과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Ramstein Air Base)를 폭파하려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 독일과 미국 정보 기관의 치밀한 공조 감시 작전 끝에 대량 인명 살상 기도를 사전에 저지하였으며, 독일 내 자생적 이슬람 극단주의 위협에 대응하여 국가 차원의 폭발물 원료 유통 통제와 정보망을 대폭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9월 4일] 뉴질랜드 남섬 캔터베리 강진 발생과 비상사태 선포
- 뉴질랜드 남섬 캔터베리(Canterbury) 지방의 중심 도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서쪽 40km 지점 다필드(Darfield) 인근 깊이 10km 지점에서 새벽 4시 35분경 규모 7.1(초기 발표 7.2)의 강진이 발생하였다.
- 지표 파열과 심각한 액상화(Liquefaction) 현상으로 시내의 유서 깊은 석조 건축물들이 대파되고 수도와 전력망이 끊기자 밥 파커(Bob Parker, 1953~2024) 크라이스트처치 시장과 존 키(John Key, 1961~) 총리는 피해 지역에 국가 비상사태를 긴급 선포하였다.
- 다행히 철저한 내진 규정과 인구 밀집 지역 외곽 발생으로 직접적인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지반 단층을 심각하게 자극하여 185명의 인명 참사를 초래한 이듬해 2011년 2월 크라이스트처치 지진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2011-2020년 주요 사건
[2017년 9월 4일]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KBS·MBC 동시 총파업 단행
- 전국언론노동조합(National Union of Mediaworkers) 소속 KBS본부와 MBC본부 조합원 수천 명이 9월 4일 0시를 기해 공영방송의 공정성 수호와 방송 독립을 요구하며 사상 초유의 동시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 노조원들은 보도 검열과 인사 탄압 등 공영방송의 위기를 초래한 적폐를 청산할 것을 주장하며 고대영(Ko Dae-young, 1960~ ) KBS 사장과 김장겸(Kim Jang-kyom, 1961~ ) MBC 사장 등 경영진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였다.
- 이 파업으로 양사의 정규 뉴스 축소와 주요 예능 프로그램 결방 등 수개월간의 방송 파행이 이어졌으나, 이후 경영진 퇴진과 방송 공공성 회복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로 기록되었다.
[2020년 9월 4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사상 최장수 교황 기록 경신
- 가톨릭 교회의 제265대 명예교황인 베네딕토 16세(Pope Benedict XVI, 1927~2022)가 93세 4개월 16일의 나이에 도달하며, 1903년 선종한 교황 레오 13세(Pope Leo XIII, 1810~1903)의 수명을 넘어서 역사상 가장 오래 생존한 교황으로 기록되었다.
-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Joseph Ratzinger)인 그는 정통 신학을 수호하며 교회를 이끌다 2013년 고령과 건강 쇠약을 이유로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약 600년 만에 교황직을 자진 사임하여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사임 이후 바티칸 내 '교회의 어머니(Mater Ecclesiae)' 수도원에 머물며 기도와 저술에 전념하였으며, 2022년 12월 31일 향년 95세로 선종하기까지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장수 교황으로서의 독보적인 생애를 남겼다.
2021-2030년 주요 사건
[2022년 9월 4일] 캐나다 서스캐처원주 원주민 거주지 연쇄 흉기 난동 참사
- 캐나다 서스캐처원(Saskatchewan)주의 원주민 자치구역인 제임스 스미스 크리 네이션(James Smith Cree Nation)과 인근 마을 웰던(Weldon)의 13개 장소에서 연쇄 흉기 난동이 발생하여 10명이 살해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범인 마일스 샌더슨(Myles Sanderson, 1990~2022)은 범행 과정에서 공범이었던 동생 데이미언 샌더슨(Damien Sanderson, 1991~2022)마저 살해하고 도주극을 펼치다 캐나다 연방기마경찰(RCMP)에 추격전 끝에 체포되었으나 직후 약물 중독으로 숨졌다.
-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대량 살인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 1971~ ) 총리의 공식 조의 표명과 함께 소외된 원주민 공동체의 치안 불안 및 범죄자 조기 가석방 심사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전면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3년 9월 4일] 서이초 순직 교사 49재와 '공교육 멈춤의 날' 전국적 추모
- 서울서이초등학교(Seoul Seoi Elementary School)에서 학부모 악성 민원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난 신규 교사의 49재를 맞아, 전국 10만여 명의 교사들이 연가와 병가를 내고 국회와 교육청 앞에 결집해 '공교육 멈춤의 날(Day to Halt Public Education)' 추모 집회를 거행하였다.
-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현장 교원들은 자발적으로 검은 옷을 입고 모여 무너진 교육 현장을 고발하고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권을 보호할 실질적 대책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 이 시민적 연대 행동은 거대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장하는 이른바 '교권 보호 5법(교원지위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교육기본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이끌어내는 전환점이 되었다.
[2024년 9월 4일] 조지아주 애팔래치 고등학교 총기 난사 참사
- 미국 조지아(Georgia)주 배로 카운티 윈더(Winder)의 애팔래치 고등학교(Apalachee High School)에서 14세 재학생 콜트 그레이(Colt Gray, 2010~)가 반자동 소총을 난사하여 교사 2명과 학생 2명이 목숨을 잃고 7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 범인은 교내에 배치된 학교 전담 경찰관(SRO)과의 대치 직후 항복하여 현장에서 구속되었으며, 사법당국은 미성년자에게 흉기를 선물하고 방조한 혐의로 범인의 아버지 콜린 그레이(Colin Gray, 1970~)까지 살인 혐의로 전격 입건하였다.
- 과거 연방수사국(FBI)의 온라인 테러 예고 조사 경력에도 불구하고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치안 공백이 드러났으며, 미성년자의 총기 난사 범죄에 대해 부모에게 직접적인 형사 책임을 묻는 미국 사법 체계의 중대한 선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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