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4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대궁전에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를 타고 장장 9,300km를 달려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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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金正日, 1941년 2월 16일~2011년 12월 17일) |
이날의 정상회담은 냉전 종식 이후 급격히 냉각되었던 북러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되었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특히 양국 정상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제 구축을 반대하고 다극화된 세계 질서를 지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모스크바 선언(Moscow Declaration)'을 채택하며 국제 사회에 커다란 지정학적 파장을 일으켰다.
본 글에서는 2001년 8월 4일 모스크바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과, 비행기 대신 특별 열차를 고집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이례적인 방러 과정, 그리고 정상회담의 핵심 결과물인 '모스크바 선언'의 내용과 그것이 동북아시아 및 세계 질서에 남긴 역사적 의미를 철저한 팩트체크를 통해 상세히 조명한다.
I. 역사적 배경: 냉전 해체와 소원해진 북러 관계의 복원
2001년의 정상회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이후 요동치던 한반도 주변의 외교 지형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소련 붕괴와 북러 관계의 빙하기
냉전 시기 북한과 혈맹 관계를 유지했던 소련은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권 주도하에 대한민국(남한)과 전격적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이듬해 소련이 해체되고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러시아 연방이 출범하면서, 러시아는 자본주의 도입과 함께 친서방·친한국 노선을 걸었다.이에 큰 배신감을 느낀 북한은 러시아와의 거리를 두었고, 1961년 체결되었던 '조소 우호조약'(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 포함)마저 1996년에 폐기되면서 양국 관계는 사실상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2. 푸틴의 등장과 2000년 평양 방문
이러한 기류는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반전되었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던 푸틴은 미국의 일극 패권을 견제하고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복원하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착수했다.그 결과, 2000년 7월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구소련 포함) 국가 원수로서는 사상 최초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은 '신조약'을 체결하며 관계를 격상시켰고, 김정일 위원장은 이에 대한 답방 차원에서 이듬해인 2001년 모스크바 방문을 결정하게 되었다.
II. 시베리아 횡단열차(TSR) 대장정: 세계의 이목을 끈 24일
2001년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회담 내용 못지않게 그 이동 방식 자체가 전 세계 언론의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1. 비행기 대신 '특별 방탄 열차'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고 굳이 철도를 이용했다. 이는 그가 심각한 비행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동시에 자신의 안위를 위한 철저한 보안 유지, 그리고 이동 과정에서 러시아의 방대한 산업 시설을 직접 시찰하려는 정치·경제적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2. 9,300km, 24일간의 이례적 여정
2001년 7월 26일 방탄 설비와 최첨단 통신 장비를 갖춘 특별열차(태양호)를 타고 두만강 역을 통과해 러시아 하산에 도착한 김정일 위원장은, 무려 9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내달려 8월 3일 모스크바 야로슬라블 역에 도착했다.
- 철통 보안과 통제:열차가 지나가는 노선의 모든 일반 열차 운행이 전면 통제되었고, 기차역 인근은 철저히 봉쇄되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 현지 주민들의 엄청난 불편과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 왕복 일정: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일정을 마친 후 다시 열차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가기까지, 그의 방러 일정은 총 24일(7월 26일~8월 18일)에 달하는 유례없는 대장정이었다.
III. 2001년 8월 4일: 크렘린궁 정상회담과 '모스크바 선언'
8월 4일 정오, 크렘린궁 대궁전에서 푸틴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김정일 위원장은 환담에 이어 공식 정상회담에 돌입했다. 두 정상은 회담 직후 양국의 포괄적인 협력 방안과 국제 현안에 대한 공동의 입장을 담은 8개 항의 '모스크바 선언'에 서명했다.
모스크바 선언의 핵심적인 팩트는 다음과 같다.
1. 미국의 MD 체제 반대와 다극화 지지 (가장 중요한 외교적 성과)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을 파기하고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었다. 선언문은 1972년 체결된 ABM 조약이 세계 전략적 안정의 초석임을 강조하며 미국의 단독 패권주의를 우회적으로, 그러나 강력하게 비판했다.이는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러시아의 외교적 목표와,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북한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한 결과였다.
2. 북한 미사일 프로그램의 '평화적 성격' 천명
국제사회의 골칫거리였던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대해 러시아는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 주었다. 선언문은 "북한의 미사일 계획은 평화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북한의 주권을 위협하는 국가에 대한 대응"이라는 북한 측 주장을 그대로 명시했다. 더 나아가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에 언급했던 "2003년까지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약속을 재확인했다.
3.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 표명
북한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 철수가 필수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설명했고, 러시아 측은 이에 대해 "이해를 표명(expressed understanding)"했다. 비록 러시아가 주한미군 철수를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핵심 주장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4. 남북러 3각 경제 협력: TKR과 TSR 연결 프로젝트
경제적 측면에서 가장 돋보인 성과는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연결하는 사업에 합의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 철도망 연결을 통해 극동 지역을 개발하고 유라시아 물류의 중심지로 도약하려 했으며, 북한 역시 철도 통과 수익과 경제난 타개를 도모할 수 있는 윈-윈(Win-Win) 전략이었다.
IV. 정상회담이 남긴 지정학적 파장과 국제사회의 반응
2001년 8월 4일의 정상회담과 모스크바 선언은 당시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각국의 외교 셈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1. 북한과 러시아의 외교적 승리
-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과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러시아라는 든든한 우군을 재확보함으로써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날 돌파구를 마련했다. 전통적 우방인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의 관계도 복원하여 '등거리 외교'의 발판을 다졌다.
-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되었던 러시아의 발언권을 단숨에 회복했다. 미국의 NMD 계획을 비판하는 데 북한을 동참시킴으로써 다극화 질서 구축을 위한 국제적 여론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 한국(김대중 정부)과 미국의 엇갈린 시선
- 한국: 당시 '햇볕정책'을 추진하던 김대중 정부는 북러 관계의 정상화가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환영했다. 특히 TKR-TSR 연결 사업은 남북러 3각 협력의 핵심 과제였기에 기대를 모았다. 다만,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관련된 내용이 선언에 포함된 것에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미국: 부시 행정부는 모스크바 선언이 철저하게 미국의 MD 체제를 정조준하고 있음에 불쾌감을 표했다. 미국 주류 언론들은 김정일과 푸틴의 만남을 "불량 국가와 패권 도전국의 결탁"이라는 비판적 시각으로 보도했다.
V. 결론: 21세기 신(新)북러 밀월의 역사적 이정표
2001년 8월 4일의 모스크바 정상회담은 20세기 냉전의 유산에 갇혀 있던 북러 관계를 21세기의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재설정하는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비록 회담에서 합의되었던 철도 연결 사업이나 획기적인 경제 지원은 이후 북핵 위기의 심화와 국제 제재로 인해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지만, 양국이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여 군사·외교적 연대를 구축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깊은 족적을 남겼다.
이날 선포된 '모스크바 선언'의 다극화 연대 정신은 20여 년이 흐른 현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 더욱 노골적이고 강력한 군사적 밀월로 재현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다시금 서로의 손을 강하게 맞잡고 있는 오늘날의 지정학적 현실은, 2001년 8월 4일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남긴 궤적이 결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24일간의 열차 대장정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의 악수. 그것은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의 평화)에 균열을 내기 위해 두 북방의 지도자가 치밀하게 기획했던 21세기 신(新) 밀월의 가장 드라마틱한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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