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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0일 목요일

[오늘의 역사] 8월 21일


1545년 8월 21일 – 외척 세력의 정권 쟁탈전, 을사사화 발생

조선(Joseon) 명종(Myeongjong, 1534~1567) 즉위 직후, 어린 국왕의 모후인 문정왕후(Queen Munjeong, 1501~1565)의 수렴청정과 맞물려 왕실 외척 간의 권력 투쟁인 을사사화(Eulsa Sahwa)가 발생하였다. 전왕 인종(Injong, 1515~1545)의 외숙인 윤임(Yun Im, 1487~1545) 중심의 대윤(Great Yun) 파벌과, 명종의 외숙인 윤원형(Yun Won-hyeong, 1503~1565) 중심의 소윤(Small Yun) 파벌이 대립하던 중 소윤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소윤 세력은 대윤이 역모를 획책했다는 혐의를 씌워 윤임, 유관(Ryu Gwan, 1484~1545), 유인숙(Ryu In-suk, 1485~1545) 등 삼정승과 사림 세력을 대거 숙청 및 사사하였다. 이 사건으로 훈구·척신 정치가 더욱 심화되었고 사림파는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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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 8월 21일 – 헨델, 종교음악 걸작 ‘메시아’ 작곡 착수

바로크(Baroque) 음악의 거장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이 1741년 8월 21일 불후의 종교 음악 걸작인 오라토리오(Oratorio) '메시아(Messiah)'의 작곡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당시 런던에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흥행 실패와 건강 악화, 채무로 깊은 실의에 빠져 있던 헨델은 대본 작가 찰스 제넨스(Charles Jennens, 1700~1773)가 구약과 신약 성경 구절을 엮어 보낸 대본을 읽고 강렬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초인적인 열정으로 몰입하여 불과 24일 만인 9월 14일에 전 3부 총 53곡에 이르는 방대한 악보를 완성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탄과 수난, 부활, 영생을 웅장하게 노래한 이 작품은 합창곡 '할렐루야(Hallelujah)'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서양 음악사 최고의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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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8월 21일 – 프랑스 낭만주의 역사가 쥘 미슐레 출생

프랑스(France) 낭만주의 역사학의 거장이자 민중사관의 선구자인 쥘 미슐레(Jules Michelet, 1798~1874)가 1798년 8월 21일 파리(Paris)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인쇄공의 집안에서 자란 그는 국가고문서보관소 역사부장과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교수를 역임하며 사료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그는 군주나 영웅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역사를 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 바라보았으며, 고통받고 투쟁하는 ‘민중(Le Peuple)’을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재조명하였다. 17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 '프랑스사(Histoire de France)'와 '프랑스 혁명사(Histoir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를 남겼으며, 14~16세기 유럽 문화의 부흥기를 가리키는 '르네상스(Renaissance)' 개념을 학문적으로 확립하고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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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8월 21일 – 독일 시인·식물학자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사망

프랑스계 독일(Germany) 낭만주의 시인이자 식물학자인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 1781~1838)가 1838년 8월 21일 베를린(Berlin)에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혁명 당시 망명하여 프로이센(Prussia)에 정착한 그는 두 조국 사이에서 겪은 정체성 혼란과 고뇌를 독창적인 문학적 상상력으로 승화시켰다. 1814년에 발표한 대표작 중편소설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는 마귀에게 금화 주머니를 받고 그림자를 팔아넘긴 남자의 비극을 다루어 물질주의와 인간 실존의 상실을 풍자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류리크호(Rurik) 탐험대에 식물학자로 참가하여 태평양과 북극해를 항해하며 식물 세대교번 현상을 연구하는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귀중한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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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8월 21일 – 루브르 박물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도난

1911년 8월 21일 파리(Paris)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걸작 '모나리자(Mona Lisa)'가 감쪽같이 도난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박물관 유리공 출신의 이탈리아(Italy)인 빈첸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 1881~1925)는 휴관일 전날 옷장에 숨어 있다가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 액자에서 캔버스 목판을 떼어낸 뒤 작업복 속에 감춰 탈출하였다. 이 사건으로 박물관장이 사임하고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용의선상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소동이 벌어졌다. 2년 뒤 페루자가 피렌체의 미술상에게 작품을 매각하려다 체포되어 그림이 무사히 회수되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 작품으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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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8월 21일 –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상해판 창간

1919년 8월 21일 중국 상하이(Shanghai)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의 공식 기관지인 '독립신문(The Independent)' 상해판이 창간되었다. 3·1 운동(March 1st Movement) 직후 임시정부의 대내외 선전과 독립운동 이념 확산을 위해 내무총장 안창호(Ahn Chang-ho, 1878~1938)가 주도하였으며, 초대 사장 겸 편집국장으로 이광수(Lee Kwang-su, 1892~1950) 등이 참여하였다. 순한글과 국한문 혼용으로 주 3회 발행된 이 신문은 일제의 무단통치 만행을 폭로하고 국내외 독립운동 소식과 정부 시책을 알리는 언론 투쟁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일제의 집요한 탄압과 압수 속에서도 비밀 지하 유통망을 통해 국내와 만주, 미주 동포 사회로 전달되어 항일 민족의식을 결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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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8월 21일 – 덴마크 사실주의 작가 헨리크 폰토피단 사망

덴마크(Denmark)의 비판적 사실주의 소설가이자 1917년 노벨 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 수상자인 헨리크 폰토피단(Henrik Pontoppidan, 1857~1943)이 1943년 8월 21일 코펜하겐(Copenhagen) 인근 샤를로텐룬에서 사망하였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공학을 전공하다 문학에 투신한 그는 당대 덴마크 사회의 계급적 모순, 종교적 위선, 농민과 서민층의 억압적 현실을 냉철한 필치로 파헤쳤다. 대표적인 3대 연작 소설 '약속의 땅(Det forjættede Land)', '행운아 페르(Lykke-Per)', '죽은 자들의 왕국(De Dødes Rige)'을 통해 근대 덴마크의 격변과 인간 군상의 환멸을 사실적으로 포착하였다. 그는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오늘날 덴마크의 생활상을 진실되게 묘사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카를 겔레루프(Karl Gjellerup, 1857~1919)와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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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8월 21일 – 하와이, 미국의 50번째 주로 공식 편입

1959년 8월 21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미국 대통령이 하와이(Hawaii)의 연방 가입 선언서에 서명함으로써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로 공식 승격되었다. 1893년 하와이 왕국이 붕괴되고 1898년 미국 준주(U.S. Territory)로 병합된 지 61년 만에 달성된 결과였다. 앞선 6월 주민투표에서 90%가 넘는 찬성으로 주 승격을 결의하였으며, 먼저 편입된 알래스카(Alaska)와 더불어 오늘날의 50개 주 연방 체제가 최종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Stars and Stripes)에 50번째 별이 추가되었다. 태평양 중심부에 위치한 하와이 제도의 정식 편입은 미국의 군사·전략적 방위망을 공고히 하고 다문화 사회로서 미국의 외연을 크게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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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8월 21일 –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팔미로 톨리아티 사망

이탈리아 공산당(Italian Communist Party, PCI)의 총서기이자 서유럽 공산주의 운동의 거두 팔미로 톨리아티(Palmiro Togliatti, 1893~1964)가 1964년 8월 21일 소련(Soviet Union) 얄타(Yalta)에서 뇌출혈로 급서하였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와 함께 당을 창당하고 코민테른 집행위원으로 활동한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반파시즘 연립정부에 참여하며 공산당을 서유럽 최대 규모의 합법 대중정당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소련식 일당독재 모델을 지양하고 의회민주주의 틀 내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이탈리아식 사회주의의 길'과 국제 공산권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다중심주의(Polycentrism)'를 제창하였다. 그의 사후 공개된 '얄타 각서(Yalta Memorandum)'는 1970년대 '유로코뮤니즘(Eurocommunism)'의 핵심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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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8월 21일 – 중국 문화대혁명, 홍위병 베이징 대규모 집회

1966년 8월 마오쩌둥(Mao Zedong, 1893~1976)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청년 학생 조직 홍위병(Red Guards) 수십만 명이 베이징(Beijing) 톈안먼 광장(Tiananmen Square)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문화대혁명(Cultural Revolution)의 광풍을 본격화하였다. 8월 18일 첫 사열식에 이어 8월 21일을 전후해 린뱌오(Lin Biao, 1907~1971) 등 군부 지도부의 선동 속에 ‘붉은 8월’의 폭력 사태가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홍위병들은 낡은 사상·문화·풍속·관습을 타파한다는 ‘파사구(Destruction of the Four Olds)’를 내세워 사찰, 유적지, 도서관을 무차별 파괴하고 지식인과 당내 온건파 관료들을 반혁명분자로 규정하여 공개 자아비판과 폭력을 자행하였다. 이 집회는 향후 10년간 중국 사회 전체를 극심한 혼란과 비극으로 몰아넣은 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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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8월 21일 – 필리핀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피살

필리핀(Philippines)의 대표적 야당 지도자이자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Benigno Aquino Jr., 1932~1983)가 1983년 8월 21일 망명지인 미국에서 귀국하던 중 마닐라 국제공항(Manila International Airport) 계류장에서 총격을 받고 피살되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1917~1989)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 투옥과 망명을 겪었던 그는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건 귀국을 결행하였다. 그러나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자마자 경호원 복장의 괴한에게 피격당해 즉사하였다. 이 암살 사건은 마르코스 정권의 폭압성에 대한 필리핀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으며, 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 1933~2009)를 중심으로 1986년 피플 파워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을 촉발하여 독재 체제를 종식시키는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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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21일 – 제22회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막

전 세계 대학생들의 종합 스포츠 제전인 '제22회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2003 Summer Universiade)'가 2003년 8월 21일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대구 유니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하나가 되는 꿈(Dream for Unity)'을 기치로 성황리에 개막하였다. 174개국 7,0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이 대회 개회식에는 노무현(Roh Moo-hyun, 1946~2009) 대통령과 조지 킬리안(George E. Killian, 1924~2017)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회장 등이 참석하였다. 특히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Korean Unification Flag)를 들고 ‘코리아(Korea)’라는 단일 명칭으로 공동 입장하였으며, 북한(North Korea) 응원단의 대규모 참가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한반도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대한민국은 종합 3위라는 쾌거를 거두며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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