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9세기 프랑스를 펜 끝에 담은 거인
1850년 8월 18일, 파리의 한 저택에서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거친 숨소리가 멈추었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죽음은 단순히 한 예술가의 개인적 종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19세기 중반, 감정과 환상에 침잠하던 낭만주의의 물결이 잦아들고 현실의 냉혹한 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실주의(Realism)’ 문학이 주류로 올라섰음을 알리는 세계 문학사의 위대한 이음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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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년 5월 20일 ~ 1850년 8월 18일) |
발자크는 현대 소설의 창시자이자 고전 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거장이다. 그는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이 보여준 내세의 질서에 대항하여, 지상의 인간들이 겪는 욕망과 파멸의 대서사시인 ‘인간희극(La Comédie humaine)’을 창조했다. 이는 신학적 세계관에 대한 세속적 응답이자, 인간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로 파악하려 했던 초유의 시도였다. 오늘 우리는 발자크의 서거일을 맞아, 자신의 생명을 잉크 삼아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그려냈던 이 불꽃 같은 예술가의 삶과 그가 남긴 문학적 우주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2. 법학도에서 작가로: 나폴레옹을 꿈꾼 ‘언어의 정복자’
1799년 5월 20일 프랑스 투르 지방에서 태어난 발자크의 청년기는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야망 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쟁터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소르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공증인 사무소 서기로 일하며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는 듯했으나, 그의 영혼은 이미 문학이라는 미지의 영토를 향해 있었다. 1819년, 그는 보장된 공증인의 길을 포기하고 바스티유 광장 인근의 초라한 다락방으로 스스로를 유배 보낸다.
이 시기 발자크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나폴레옹 동상 아래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새겨 넣었다. “나폴레옹이 칼로 이룬 것을 나는 펜으로 이룰 것이다.”이는 단순한 젊은 날의 허풍이 아니었다. 그는 문학을 통해 한 시대를 텍스트화하고 지배하려 했던 ‘언어의 정복자’로서의 광기 어린 집착을 보였다.
초기의 고통스러운 습작기를 거쳐 1829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최초의 작품 『올빼미 당(Les Chouans)』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같은 해 발표한 『결혼 생리학(Physiologie du Mariage)』의 성공을 통해 리얼리즘으로의 결정적 전향을 맞이한다. 낭만적 사랑의 환상 대신 생리적 현실과 풍속의 이면을 파헤치는 이 작품의 성공은, 그를 평생 ‘사회의 박물학자’로 살아가게 만든 운명적 계기가 되었다.
3. 5만 잔의 커피와 16시간의 노동: 처절한 ‘집필 노동자’의 초상
발자크의 작품 세계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방대함은 그의 초인적인, 때로는 자학적인 집필 습관에서 기인한다. 그는 스스로를 ‘글 쓰는 기계’로 규정했다. 그의 하루는 저녁 6시에 잠들어 새벽 1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촛대 여섯 자루가 다 녹아내리는 어둠 속에서 그는 오후 4시까지 무려 15~16시간 동안 쉼 없이 펜을 놀렸다. 사흘마다 잉크병 하나가 비고, 열 개의 펜이 닳아 없어질 정도의 맹렬한 기세였다.
이 지독한 노동을 지탱한 연료는 다름 아닌 커피였다. 그는 직접 부르봉, 마르티니크, 모카 원두를 구해 자신만의 비율로 블렌딩했는데, 이를 위해 반나절을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약 5만 잔, 하루 평균 50잔의 진한 블랙커피를 마셨다. 계산상으로 글을 쓰는 동안 16분마다 한 잔씩 들이킨 셈이다. 그에게 커피는 글쓰기라는 전투의 개전을 알리는 나팔 소리였으나, 이 과도한 카페인 섭취는 훗날 심비대와 심부전이라는 치명적인 대가로 돌아왔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토록 처절하게 집필에 매달린 동력 중 하나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압박’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시민 계급 출신임에도 귀족 호칭인 ‘드(de)’를 사칭하고, 화려한 마차를 굴리며 귀족 사회를 동경했다. 이러한 허영과 사업 실패로 생긴 거액의 빚은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고, 빚쟁이를 피해 문이 두 개인 집에서 뒷문으로 도망치면서도 그 결핍을 창작의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결핍이 거장을 만든 역설적인 현장이었다.
4. ‘인간희극’ 우주의 창조: 등장인물 재등장 기법의 혁명
발자크 문학의 정수는 단연 ‘인간희극’ 총서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풍속 연구, 철학적 연구, 분석적 연구의 3부로 체계화했다. 계획된 137편 중 완성된 91~97편의 작품 속에는 무려 2,000명이 넘는 인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마치 박물학자가 동물의 종을 연구하듯이 사회적 측면에서 인간의 유형인 ‘사회적 종’을 분류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여기서 발자크는 문학사상 혁명적인 기법인 ‘등장인물 재등장 기법(Character Recurrence)’을 처음으로 조직화한다. 이는 특정 소설의 주인공이 다른 소설에서는 조연이나 배경으로 등장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명의 오라스 비앙숑은 무려 29번이나 등장하며 작품 간의 세계관을 잇는다.
조영철 교수를 비롯한 비평가들은 이 기법이 독자에게 ‘입체적 진화’의 경험을 제공한다고 분석한다. 독자들은 여러 작품을 넘나들며 인물의 과거와 현재, 몰락과 성공을 목격하게 되고, 이는 현대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나 ‘시리즈물’의 원형이 되었다. 개별 소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벽화를 완성하는 이 구조는 문학이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하나의 완결된 우주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5.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 욕망의 파리 사회를 향한 도전
‘인간희극’ 유니버스로 들어가는 가장 완벽한 입문서이자 사실주의의 정점으로 꼽히는 작품은 『고리오 영감』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한 청년이 순수를 잃고 비정한 사회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다룬 ‘수련소설(Bildungsroman)’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여기서 수련소설이란 주인공이 사회적 경험을 통해 내면적으로 성장하거나 변모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 유형을 의미한다.
소설 속에서 부성애의 전형인 ‘고리오 영감’은 두 딸의 허영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어주고 비참하게 몰락한다. 이를 지켜보는 가난한 귀족 청년 라스티냐크는 파리 상류 사회의 비정함을 목격한다. 이때 보제앙 부인과 보트렝이라는 두 명의 냉혹한 스승은 그에게 진실을 가르친다. “파리에서는 성공이 전부이며 힘의 열쇠다”, “당신들은 한 단지 속의 거미들처럼 서로 잡아먹어야 한다”는 그들의 조언은 라스티냐크를 출세주의자로 변모시킨다.
소설의 마지막, 고리오 영감의 쓸쓸한 장례식을 마친 라스티냐크가 페르-라셰즈 묘지 언덕에서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외친 한마디, “이제부터 파리와 나의 대결이다!”는 문학사상 가장 강렬한 선전포고다. 이는 개인의 순수함이 거대한 사회적 욕망 체계에 굴복하고 그 시스템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하는 서늘한 자각의 순간을 상징한다.
6. 리얼리즘의 승리: 보수주의 작가가 그려낸 혁명의 진실
발자크에 대한 비평 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엥겔스가 언급한 ‘리얼리즘의 승리’다. 발자크 개인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왕당파였으며 귀족 계급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는 작가로서의 ‘예술적 정직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사랑한 귀족 계급의 무능함과 필연적 몰락을 가차 없이 묘사했다.
김동수 평론가를 비롯한 학자들은 발자크가 객관적 관찰을 통해 귀족과 부르주아가 뒤섞여 계급 상승을 꾀하던 왕정복고 시대의 독특한 사회상을 정확히 포착했다고 평가한다. 졸라(Zola)는 발자크를 ‘저도 모르는 민주주의자’라 칭송했고, 루카치(Lukács)는 그가 세계관의 심층에서 현실의 본질을 포착했다고 보았다. 발자크는 자신의 정치적 편견을 뛰어넘어, ‘물화(Reification, 인간의 행위나 가치가 사물처럼 취급되는 현상)’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발흥과 돈의 전능함을 확대되고 과장된 진실로 형상화했다. 이러한 확대는 단순한 왜곡이 아니라 현실의 본질을 상징으로 끌어올리는 예술적 도구였다.
7. 최후의 순간: 가공의 인물을 부르며 떠난 길
발자크의 임종은 그가 창조한 허구의 세계가 현실보다 더 실재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18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열렬히 구애했던 폴란드의 한스카 부인과 1850년 마침내 결혼했지만, 5개월 만에 평생의 과로로 인해 무너졌다.
죽음 직전, 고통 속에 신음하던 발자크는 실제 의사가 아닌 자신의 소설 속 명의를 애타게 찾았다. “오라스 비앙숑을 불러줘! 그만이 나를 구할 수 있어!”이는 가상과 실재가 완전히 용해된 예술가의 마지막 절규였다. 그에게 ‘인간희극’은 단순한 종이 위의 글자가 아니라, 자신이 창조하고 살아갔던 진짜 현실세계였던 것이다.
장례식에서 빅토르 위고는 그를 ‘혁명적 작가’라 칭송하며 추도했다. 발자크의 리얼리즘은 훗날 도스토옙스키를 거쳐 현대의 범죄 대서사시인 영화 『대부』에까지 그 자취를 남겼으며, 오늘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와 같은 거대 세계관 구축의 원류가 되었다.
8. 결론: 오늘날 우리에게 발자크는 무엇인가
발자크가 세상을 떠난 지 170여 년이 지났지만, 그의 문학이 여전히 서늘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가 해부했던 ‘돈’과 ‘욕망’, 그리고 ‘신분 상승’이라는 테마가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가장 절실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변모하는지 예리하게 꿰뚫어 본 그의 통찰은 ‘So What?’이라는 현대적 질문에도 명쾌한 답을 준다. 우리는 여전히 발자크의 무대 위를 걷고 있는 셈이다.
그는 비록 빚과 허영, 커피 중독 속에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 고통의 용광로에서 ‘인간희극’이라는 불멸의 보석을 길어 올렸다. 현실이 아무리 비정할지라도 그것을 직시하고 기록하는 정직함이 예술을 어떻게 위대하게 만드는지 발자크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다. 오늘, 이 거장이 남긴 거대한 우주 속으로 한 번쯤 발을 들여놓아 보기를 권한다. 그곳에서 마주할 비릿한 욕망의 얼굴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자화상일 것이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은 오늘도 전 세계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상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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