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3세(Constantine III, AD.?~411) : 서로마 제국 제52대 공동황제(AD.407~411)
-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콘스탄티누스(Flavius Claudius Constantinus)
- 출생 : 미상
- 사망 : 기원후 411년 9월 18일 이전
- 자녀들 : 콘스탄스 2세(Constans II), 율리아누스(Julian)
- 재위 : 기원후 407년 ~ 4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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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3세(Constantine III, AD.?~411) : 서로마 제국 제52대 공동황제(AD.407~411) |
브리튼에서 일어난 병사 황제와 서로마 제국의 몰락
5세기 초 로마 제국은 야만족의 침입과 내부 혼란으로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광대한 제국의 통제권은 점차 황제의 손을 벗어나고 있었고, 곳곳에서 제위를 찬탈하려는 인물들이 속출했다. 콘스탄티누스 3세(Constantine III)는 바로 이 격동의 시기, 변방 브리튼(Britain)에서 군대의 추대로 황제가 되어 서방 로마 제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평범한 병사에서 시작해 제국의 일부를 통치하는 황제가 되었으나, 그의 통치는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특히 그가 브리튼의 모든 가용 병력을 이끌고 대륙으로 떠난 뒤, 로마는 다시는 브리튼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서 브리튼의 로마 지배 종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콘스탄티누스 3세의 흥망성쇠와 그의 치세가 로마 제국, 특히 브리튼에 미친 영향을 자세히 살펴본다.
1. 평범한 병사의 황제 등극 (407년)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콘스탄티누스(Flavius Claudius Constantinus)의 출신과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는 평범한 로마 병사였으며, 이름은 훗날 로마의 위대한 황제가 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the Great)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406년 겨울, 반달족, 알란족, 수에비족 등 게르만 부족들이 얼어붙은 라인 강을 건너 갈리아(Gaul)로 대규모 침입을 감행하며 서로마 제국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407년 초 로마 브리튼에 주둔하던 로마군 병사들은 무능한 황제 호노리우스(Honorius, 재위 395~423)에게 불만을 품고 스스로 황제를 추대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먼저 마르쿠스(Marcus)와 그라티아누스(Gratian)라는 두 명의 황제를 추대했지만, 이들은 각각 짧은 기간 만에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세 번째 황제로 선택된 인물이 바로 콘스탄티누스였다. 병사들은 그를 콘스탄티누스 3세로 칭하며 황제로 선포했다. 이는 단순히 군사적 혼란을 넘어, 로마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얼마나 약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 갈리아 장악과 제국의 분열 (407~409년)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3세는 지체하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그는 브리튼의 모든 가용 병력을 이끌고 갈리아로 건너가 침입한 게르만족과 맞섰다. 이는 브리튼에 주둔하던 로마군의 완전 철수를 의미하며, 훗날 브리튼이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갈리아에 상륙한 콘스탄티누스 3세는 군사적 능력과 외교적 수완을 동시에 발휘했다. 그는 게르만족 침략자들과 싸우고 일부 부족과는 협정을 맺으며 혼란스러운 갈리아 상황을 안정시켰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갈리아 전역과 히스파니아(Hispania, 오늘날 스페인과 포르투갈)까지 장악했다. 그는 자신의 수도를 갈리아 남부의 아를(Arles)로 정하고, 이탈리아에 주둔하던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호노리우스는 콘스탄티누스 3세의 부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고트족 장군 사루스(Sarus the Goth)가 이끄는 군대를 파견하여 콘스탄티누스 3세를 진압하려 했다. 사루스는 초반에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콘스탄티누스 3세의 반격에 밀려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승리는 콘스탄티누스 3세의 세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3. 공동 황제로서의 인정과 아들들의 승진 (409년)
호노리우스는 콘스탄티누스 3세의 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내부의 문제와 알라리크(Alaric)가 이끄는 서고트족의 압력 등 여러 위협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409년 초, 호노리우스는 콘스탄티누스 3세를 로마 제국의 공동 황제로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로마 제국이 두 명의 정통 황제와 한 명의 찬탈 황제(콘스탄티누스 3세)가 공존하는 복잡한 권력 구도를 형성했음을 의미한다.
공식적으로 황제 칭호를 얻은 콘스탄티누스 3세는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는 자신의 장남 콘스탄스 2세(Constans II)를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승격시켜 공동 황제로 임명했다. 그는 또한 다른 아들 율리아누스(Julian)도 두었다. 콘스탄티누스 3세는 아를에 조폐국을 설치하고 자신의 이미지가 새겨진 화폐를 대량으로 주조하며, 동방 및 서방의 정통 황제들과 동등한 위치임을 과시했다.
4. 내부분열과 몰락의 시작 (409~411년)
콘스탄티누스 3세의 통치는 초반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주요 장군 중 한 명이었던 게론티우스(Gerontius)가 히스파니아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독립적인 황제를 자처했다. 게론티우스는 콘스탄티누스 3세의 차남인 막시무스(Maximus)를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웠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3세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또한, 라인 강 국경을 넘어 침입했던 반달족, 알란족, 수에비족 등이 히스파니아로 진격하며 콘스탄티누스 3세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브리튼에서도 로마 행정이 사라지면서 점차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내부분열과 외부의 위협 속에서, 호노리우스는 다시 한번 권력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411년, 그는 자신의 사령관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 훗날 콘스탄티우스 3세)가 이끄는 군대를 파견하여 콘스탄티누스 3세를 진압하도록 했다.
5. 아를의 포위와 비극적인 최후 (411년)
콘스탄티우스 장군은 먼저 게론티우스의 군대를 격파하고, 이어서 콘스탄티누스 3세가 머물고 있던 수도 아를을 포위했다. 콘스탄티누스 3세는 수개월간 아를에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군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과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조건으로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 콘스탄티우스 장군에게 투항했다.
하지만 콘스탄티우스 장군은 그라티아누스(Gratianus)에게서 받은 칙령에 따라 콘스탄티누스 3세와 그의 아들 율리아누스를 죽음으로 인도했다. 콘스탄티누스 3세는 411년 9월 18일 이전에 처형되었다. 그의 잘린 머리는 황제 호노리우스에게 보내져 그의 승리를 과시하는 상징이 되었다.
6. 브리튼의 로마 지배 종식과 아서왕 전설
콘스탄티누스 3세의 이야기는 로마 제국 서방의 쇠퇴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그의 통치는 브리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가 브리튼의 모든 가용 병력을 이끌고 대륙으로 떠난 뒤, 로마는 다시는 브리튼에 군대를 파견하거나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로써 407년은 브리튼의 로마 지배가 사실상 종식된 해로 평가된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3세는 훗날 아서왕(King Arthur) 전설과도 연결되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제프리 오브 몬머스(Geoffrey of Monmouth)의 『브리튼 열왕사(Historia Regum Britanniae)』와 같은 중세 기록에서는 그를 ‘브리튼의 콘스탄티누스 2세(Constantine II of Britain)’로 묘사하며, 그의 아들 유서 펜드래곤(Uther Pendragon)을 통해 아서왕의 할아버지가 된다는 전설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 인물이 민간 전설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영웅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콘스탄티누스 3세는 로마 제국의 통제 불능과 분열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의 짧지만 강렬했던 권력욕과 비극적인 최후는 5세기 초 로마 제국이 겪었던 혼란과 쇠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로마 제국 서방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많은 요인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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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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