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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오늘의 역사 (1926년 12월 28일): 의열단원 나석주 | 동양척식주식회사 투탄 의거 - 수탈의 심장을 쏘다

수탈의 심장을 쏘다 의열단원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투탄 의거

 

1. 서론: 일제 경제 침략의 상징을 정조준하다

 
19261228일 오후, 경성(서울) 명동 한복판에 총성과 폭음이 울려 퍼졌다. 의열단원 나석주(羅錫疇, 189224~ 19261228) 의사가 우리 민족의 고혈을 짜내던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를 공격한 것이다. 이 거사는 1920년대 중반, 일제의 감시가 극에 달했던 상황에서도 독립운동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증명한 일대 사건이었다.
 
의열단원 나석주

2. 의열단 입단과 거사의 결심

 
황해도 재령 출신의 나석주는 일찍이 3·1 운동에 참여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무장 투사였다. 그는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 입단하여, 말이나 글이 아닌 직접적인 행동으로 일제에 타격을 주기로 결심한다. 특히 그는 우리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아 가던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민족의 원수로 규정하고, 그 상징적 건물을 파괴할 계획을 세운 뒤 국내로 잠입했다.
 

3. 긴박했던 의거의 순간: 식산은행에서 동척까지

 
1228일 오후 2시경, 나석주 의사는 먼저 남대문에 있던 조선식산은행에 들어가 폭탄을 던졌다. 불행히도 폭탄은 불발되었으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인근의 동양척식주식회사로 향했다.
 
건물 안으로 진입한 그는 권총으로 일본인 간부들을 처단하고, 소지하고 있던 마지막 폭탄을 던져 건물을 타격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일제의 수탈 기구 안에서 나석주는 당당하게 항거를 이어갔다.
 

4. 자결로 지킨 독립투사의 절개

 
거사를 마친 나석주 의사는 뒤쫓아온 일본 경찰들과 시가전을 벌였다. 그는 을지로 인근에서 남은 탄환으로 경찰 수명을 사살하며 끝까지 저항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포위되자 마지막 남은 한 발의 총탄을 자신의 가슴에 쏘아 자결을 시도했다.
 
치명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그는 일본 경찰의 신문에 "나는 나석주다"라고 당당히 밝힌 뒤, 그날 저녁 병원에서 장렬하게 순국했다. 그의 나이 불과 34세였다.
 

5. 역사적 의의: 경제 수탈에 대한 준엄한 심판

 
나석주 의사의 의거는 다른 독립 투쟁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일제의 경제적 수탈 기구를 직접 타격했다는 점이다. 이는 일제가 총칼로 우리를 억압할 뿐만 아니라, 토지와 자본을 빼앗아 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고발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위축되어 있던 독립운동 진영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민중들에게는 가슴 벅찬 희망을 선사했다.
 

6. 대한민국이 기억하는 영웅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나석주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며 그의 공훈을 기렸다. 현재 그가 폭탄을 던졌던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터(현 외환은행 본점 근처)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명동을 오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그날의 뜨거웠던 용기를 전하고 있다.
 

7. 결론: 1228, 명동에 울려 퍼진 자유의 총성

 
19261228, 나석주 의사가 던진 것은 단순한 폭탄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향한 꺾이지 않는 염원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 우리 민족의 아픔을 대변했고, 수탈의 상징을 무너뜨리려 했다. 역사의 오늘, 화려한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였던 나석주 의사의 고귀한 희생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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