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 27일】 민주화의 위대한 약속: 제9차 개헌과 대통령 직선제 국민투표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열망: 6월 항쟁의 결과
1987년 10월 27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국민의 주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 날, 국민들은 제9차 헌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 참여하여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헌법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1980년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격렬한 투쟁, 특히 6월 민주 항쟁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며, 권위주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화 시대를 여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이 글에서는 1987년 개헌이 이루어진 배경, 개헌안의 주요 내용, 국민투표의 의미, 그리고 이 헌법이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미친 지대한 영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독재의 그늘과 민주화의 외침: 5공화국의 위기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 들어선 전두환(全斗煥, 1931-2021년) 정권, 즉 제5공화국은 12ㆍ12 군사반란과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이라는 비극적인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간접 선거 방식인 ‘대통령 선거인단’을 통해 당선되었으며, 7년 단임 대통령제를 시행했으나, 사실상 국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권력을 장악한 군사 정권이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언론 통제, 민주화 운동 탄압 등 권위주의적인 정책이 지속되었고, 이는 국민들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19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더욱 거세졌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학생 운동, 종교계와 지식인들의 민주화 선언, 그리고 시민 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은 독재 정권에 대한 거대한 저항의 물결을 형성했다. 특히 1987년 박종철(朴鍾哲, 1964-1987년) 고문치사 사건은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경찰의 잔혹한 고문으로 한 젊은이가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이 은폐되려 하자, 전국민적인 분노가 폭발했다. 이어 이한열(李韓烈, 1966-1987년) 열사의 사망은 걷잡을 수 없는 민주화 열기를 불러왔다.
전두환 정권은 이러한 민주화 요구를 무시하고 1987년 4월 13일 ‘4ㆍ13 호헌조치(護憲措置)’를 발표하여 현행 헌법을 수호하고 개헌 논의를 금지시켰다. 이는 사실상 현행 간선제에 의한 차기 대선 실시와 정권 재창출을 시도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나 호헌조치는 국민들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했다. 1987년 6월 10일 이후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민주 헌법 쟁취’를 외쳤고, 이른바 ‘6월 민주 항쟁’이 전국을 뒤덮었다. 이러한 국민들의 직접적인 항거는 전두환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결국 당시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盧泰愚, 1932-2021년)는 6월 29일 ‘6ㆍ29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선언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수용이라는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는 독재 정권의 종언과 민주주의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여야 합의로 이룬 민주 헌법: 제9차 헌법 개정안
6ㆍ29 민주화 선언 이후, 대한민국 국회는 새로운 헌법 개정 논의를 시작했다. 이 과정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진행된 과거의 개헌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이번 개헌은 여당과 야당이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부응하여 서로 협력하고 타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개헌안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를 거치고, 여야 합의를 통해 마련된 것이었다. 1987년 10월 12일, 국회는 마침내 헌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이 개헌안은 대한민국 헌법의 아홉 번째 개정으로, 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대통령 직선제 부활 :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이 부활했다. 이는 간선제를 통해 당선된 역대 권위주의 정권들의 정당성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 주권의 원칙을 확고히 하는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
- 5년 단임제 도입 :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하여 장기 집권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권력 독재의 폐해를 방지하고자 했다.
- 대통령 권한의 대폭 축소 : 과거 대통령에게 부여되었던 비상조치권(긴급조치권)과 국회 해산권 등 초월적인 권한들이 폐지되었다. 이는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고,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의 권력 분립을 강화하는 조치였다.
- 국민 기본권의 신장 : 국민의 기본권 조항이 대폭 강화되고 확대되었다. 노동 3권 보장, 신체의 자유 및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이 보다 명확하고 광범위하게 보장되었다.
- 사법부 독립 강화 :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항들이 신설되거나 강화되었다.
이러한 개헌 내용은 대한민국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벗어나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적 합의의 결정체였다.
1987년 10월 27일: 국민의 힘으로 이룬 새 헌법
국회에서 의결된 헌법 개정안은 국민투표에 부쳐져 최종 확정 절차를 거치게 되었다. 1987년 10월 27일, 전국 각지에서 제6차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국민들이 투표소로 향했다. 투표율은 78.2%라는 매우 높은 참여율을 기록했고, 헌법 개정안에 대한 찬성률은 무려 93.1%에 달했다. 이처럼 압도적인 찬성률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민주 헌법에 대한 강력한 열망과 확고한 지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국민투표 결과는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압도적인 지지로 헌법이 개정되었다는 것은, 과거 권력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개정되었던 헌법과는 그 정당성과 민주적 기반이 확연히 달랐다. 1987년 헌법은 이제 군사 정권의 시대가 끝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만방에 선포하는 것이었다.
1987년 헌법의 역사적 의의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토대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된 제9차 헌법 개정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 권위주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주의 시대를 개막한 상징이다. 이 헌법은 전두환 정권의 독재를 종식시키고,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가는 법적,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 대통령 직선제 부활로 국민 주권 실현이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면서, 권력의 정당성이 확보되고 국민의 정치 참여 의식이 고취되었다. 이는 이후 역대 정권들이 국민적 지지 없이는 통치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 권력 분립과 견제 강화이다. 5년 단임제와 대통령 권한 축소는 행정부의 독주를 막고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 기능을 강화하여 삼권분립의 원칙을 보다 충실히 구현하도록 했다.
- 국민 기본권의 대폭적인 신장이다. 이 헌법은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더욱 폭넓게 보장함으로써 인권의 가치를 드높였다. 언론의 자유가 신장되고 집회의 자유가 확대되는 등 사회 전반의 자유로운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다.
- 현재까지 이어진 대한민국 헌법의 지속성이다. 1987년 헌법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큰 수정 없이 유지되어 왔다. 이는 이 헌법이 국민적 합의와 민주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제정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며, 그만큼 탄탄한 기초 위에 세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7년 10월 27일은 단순한 법률 개정의 날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피와 땀으로 쟁취한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약속이었다. 이 날의 경험은 민주주의가 결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가 모여 역사를 바꿀 수 있음을 후대에게 가르쳐 주는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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