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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4일 금요일

【2004년 11월 14일】 한국 불교의 큰 어른, 석주 스님 입적

20041114한국 불교의 큰 어른, 석주 스님 입적

 
20041114, 한국 불교계는 큰 별을 잃는 슬픔에 잠겼다. 불교 조계종 대종사이자 봉은사 조실, 그리고 조계종 총무원장과 원로의원을 역임하며 한국 불교계의 큰 어른으로 존경받았던 석주(昔珠) 스님(1909~2004)이 충남 아산시 염티읍에 위치한 온양 보문사에서 입적하였다. 법랍 81, 세수 96세로 일생을 부처님의 가르침과 중생 구제에 헌신한 스님의 영면 소식은 많은 불자와 국민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게 하였다. 석주 스님은 일제강점기 왜곡된 불교를 바로잡기 위한 '왜색불교 청산'을 주도한 선구자이자, 부처님의 말씀을 번역하고 어린이 포교에 힘쓴 '1세대 스승'으로, 그 자체로 20세기 한국 불교사의 산 역사였다.
 

어린 시절과 출가, 그리고 한국 불교의 격동기

 
석주 스님은 1909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영완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태어난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삶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어갔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오염된 조국 불교의 현실을 목도하며 출가를 결심하였다. 그는 1924년 통도사(通度寺)에서 경봉 스님(鏡峰, 1892~1982)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고, 그해 해인사에서 인곡 스님(印谷, 1860~1934)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으며 본격적인 승려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석주 스님은 이후 평생 선() 수행과 강학(講學), 역경(譯經)에 매진하였다. 그는 혼란스럽던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구도 정신으로 오직 정법을 구하는 데 전념하였다. 스님이 승려의 길을 걷던 시기는 한국 불교가 일본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왜곡되던 때였다. 스님은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며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청정 가풍을 되살리는 데 뜻을 두게 된다.
 

왜색불교 청산과 불교 개혁 운동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 불교는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대처승(帶妻僧) 문제 등 많은 폐단을 겪었다. 이에 석주 스님은 왜곡된 한국 불교를 바로잡고 전통 청정 비구승단으로 돌아가기 위한 '왜색불교 청산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1954년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한국 불교의 정화를 요구하며 왜색불교 척결에 앞장섰고, 이 운동은 '정화 운동'으로 발전하여 마침내 조계종의 '비구승 중심' 청정 가풍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스님은 이 운동을 통해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되찾고 올바른 수행 전통을 계승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스님은 또한 조계종 총무원장(7, 9), 조계종 원로의원, 대종사 등을 역임하며 한국 불교 행정의 주요 요직을 거쳤다. 그는 한국 불교의 기틀을 잡고 종단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의 리더십은 종단 내부의 화합을 도모하고 불교계의 대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조계종 내에서 일어난 여러 갈등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종단의 안정을 지키려 노력하며 '불교개혁'에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경 불사와 어린이 포교의 선구자

 
석주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대중에게 널리 퍼져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려운 한문 경전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역경 불사(譯經佛事)'에 적극 참여하여 부처님 말씀이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스님은 한국 불교계에서 '어린이 포교'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이를 실천한 선구자였다. 1970년대에는 어린 불자들이 불법(佛法)을 배울 수 있는 책을 직접 만들고, 어린이를 위한 법회와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등 어린이 불교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이러한 스님의 노력은 미래 불교의 주역인 어린이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심어주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스님은 또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웃들을 돕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빈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보살폈으며, 이러한 나눔의 정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영원한 가르침, 석주 스님의 입적

 
석주 스님은 말년까지 수행과 교화에 매진하며 한국 불교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정진하였다. 20041114일 오후 6, 스님은 충남 온양 보문사에서 모든 인연을 놓아버리고 평온하게 입적하였다. 그의 마지막은 생전의 가르침처럼 고요하고 위엄 있었다. 스님의 영결식은 1118, 부산 금정산 범어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되었으며, 수많은 불자와 추모객들이 참석하여 스님의 가르침을 기리고 마지막 길을 배웅하였다.
 
석주 스님이 남긴 유산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을 넘어선다. 그의 삶은 20세기 한국 불교의 격변 속에서 정법을 지키고, 불교를 대중과 현대 사회에 접목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왜색불교 청산, 역경 불사, 어린이 포교, 그리고 한국 불교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은 스님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운 업적들이다. 그의 법랍 81, 세수 96년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거대한 한국 불교사이자, 후대 불자들에게 깊은 깨달음과 울림을 주는 영원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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